'-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0)

― ‘만의’처럼 쓰면 뜻이 두루뭉술하다

등록 2007.11.07 18:37수정 2007.11.0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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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자기만의 세계

 

... 아이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려 하는 것이고, 그 세계를 비밀로 남기려 한다...  - 안드레아 브라운 <소비에 중독된 아이들>(미래의창, 2002) 39쪽

 

토씨 ‘-의’를 덜어내야 좋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에서 토씨 ‘-의’를 빼고 “자기만 세계”라고 쓰면 어색합니다. 이때는 ‘-만’까지 덜어내야 어울립니다.

 

 ┌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려 한다
 │
 │→ 자기 세계를 가지려 한다
 │→ 자기만 있는 세계를 가지려 한다
 │→ 자기만 즐기는 세계를 가지려 한다
 │→ 자기만 노는 세계를 가지려 한다
 └ …

 

우리 말에서 움직씨나 그림씨가 남달리 발돋움했음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거나 글 쓸 때 이런 우리 말 모습을 제대로 살리는 분이 드물어요. 알맞게 움직씨와 그림씨를 쓰면 될 텐데, 토씨 ‘-의’를 넣어서 일본말 흉내를 냅니다. 아니, 자기 스스로는 일본말 흉내를 내는 줄 모르겠지요. 어릴 적부터 교과서와 신문방송과 책에서 보고 들은 대로, 또 부모들이 잘못 쓴 엉터리 말을 배우면서 저절로 길들어 버렸을 테니까요.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엉터리로 길들지 않은 말을 쓰고 있을까요. 이 땅에 뿌리박은 말을, 누구한테나 즐겁고 살가운 말은 누가 쓰고 있을까요.

 

어릴 적 제 둘레에 있던 분들 말씨는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분들 가운데에는 신문이나 책을 많이 읽는 분이 얼마 없었고, 당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배운 말을 고스란히 자기 딸과 아들에게 가르쳐 주는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거의 모두였지 싶습니다.

 

텔레비전을 볼 때에나 잘못된 말에 물들었으나, 텔레비전이 없이 사는 사람도 제법 많았습니다. 이러한 분들이 저한테 가르쳐 주고, 제가 동무들하고 나누던 말을 헤아려 보면 토씨 ‘-의’가 들어간 말은 거의 없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던 말씨는 “나의 아버지”, “나의 형”이었지만, 이 말을 쓸 때마다 얼마나 어색하던지. 동무들 가운데에도 “나의 형”, “나의 언니”라 말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 말도 참 낯설게 들려서, 저는 꼬박꼬박 “우리 형”, “우리 어머니”처럼 말했습니다.

 

학교와 집에서 쓰는 말, 또 동무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말이 자꾸 헷갈리고 오락가락해서 괴롭기도 했습니다.

 

부모님보고 “내 방 좀 만들어 줘요”하고 말하면 말했지, “나만의 방 좀 만들어 줘요”하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세계”라고 말하면 말했지, “자기만의 세계”란 말도 안 썼습니다. “내 방이야” 하고 말하지 “나만의 방이야” 하고 말하지 않거든요. 보기글에서도 “내 세계”로 쓴다면 한결 낫겠군요.

 

‘-만’을 붙여서 앞말을 힘주어 나타내고 싶을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란 말은 이런 느낌이 짙어요. 그렇다면 “자기 세계를 어떻게 더 자기 혼자만 가꾸느냐”를 말에 담아내야지, 괜히 어설프거나 두루뭉술하게 ‘-의’를 붙여서는 안 좋습니다. “자기만 있는”지, “자기만 사”는지, “자기만 생각하”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하는지 밝혀 주어야 좋습니다.

 

한글로 죽 적어 놓는다고 해서 우리 말을 제대로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글자로만, 그러니까 겉보기로만 한글이나 우리 말이 아니라, 속으로도 알뜰하고 넉넉히 한글과 우리 말이 되도록 말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자기 줏대와 얼을 갖춰야지 싶고, 자기 생각을 튼튼하게 다져야 좋습니다.

 

ㄴ. 혼자만의 업적

 

... 대개는 자신의 과거 경력을 과대포장해서 투쟁과 수난이 저 혼자만의 업적인 양 자기선전을 늘어놓는다...  - 한승헌 <그날을 기다리는 마음>(범우사, 1991) 23쪽

 

‘대개(大蓋)는’은 ‘으레’나 ‘흔히’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過去) 경력(經歷)”은 “자기가 그동안 한 일”이나 “자기가 걸어온 길”로 다듬으면 좋아요. ‘업적(業績)’은 ‘일’로 풀 수 있습니다.

 

 ┌ 혼자만의 업적인 양
 │
 │→ 혼자만 한 일인 양
 │→ 혼자 이루어낸 양
 │→ 혼자서 다했다는 듯이
 └ …

 

움직씨를 써서 받쳐 주어야 할 자리에 토씨 ‘-의’를 넣었습니다. 보기글에서는 ‘하다-이루다-다하다’ 같은 말을 넣어야 알맞습니다. ‘힘쓰다-애쓰다’ 같은 말을 넣어도 되고요.

 

 “혼자만의 오해였나요?”라고 하는 자리라면, “혼자 잘못 생각했나요?”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이었나?”라고 하는 자리라면 “혼자 하는 생각이었나?”로 고칠 수 있고요. ‘혼자’ 뒤에 ‘-만’을 붙여서 “혼자만 생각했나?”처럼 고쳐도 좋습니다.

 

ㄷ. 나만의 책

 

... 나만의 책... -이세 히데코/김정화 옮김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청어람미디어, 2007) 54쪽

 

나라밖 책을 한국말로 옮길 때 “나만의 (무엇)”처럼 옮기는 일이 있습니다. 이때 나라밖 책에서는 어떤 말로 적었을지 궁금합니다.

 

 ┌ 나만의 책
 │
 │→ 내 책
 │→ 나만 가진 책
 │→ 나한테만 있는 책
 │→ 나한테만 하나 있는 책
 │→ 나한테만 있는 하나뿐인 책

 │→ 내가 좋아하는 책
 └ …

 

요즈음은 ‘나 + 만의’로 옮기지만, 지난날에는 어떠했을까요. 우리가 “나만의 무엇”이라 말한다면, 무엇이 나한테 어떻다는 이야기일까요.

 

나만 가질 수 있는 책일까요. 나한테만 있는 책일까요. 나 하나만 생각해서 만든 책일까요. 어쩌면 이 모두를 아울러 ‘나만의’에 담는다고 말할 분이 있겠네요.

2007.11.07 18:37ⓒ 2007 OhmyNews
#우리말 #우리 말 #토씨 ‘-의’ #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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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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