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비룡산 휘감아 350도 돌아가네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29] 경북 예천 회룡포와 장안사

등록 2008.01.03 20:19수정 2008.01.3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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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낙동강 물줄기인 내성천이 비룡산을 따라 흐르는 회룡포예요. 전망대 위에서 보는 이 풍경은 철따라 그 모습이 매우 남달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랍니다. ⓒ 손현희



경주 김씨, 열한 집만 산다는 작은 마을이 섬처럼 떠 있는 경북 예천 용궁면 대은리 회룡포 마을을 보려면, 매우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야 해요. 들머리부터 위를 올려다보니, 끝은 뵈지 않고 오르막이라서 처음부터 기가 질리더군요. 또 회룡포 전망대 가는 길에는 '장안사'라는 절 집이 붙어 있었어요.


산아래 주차장에서 윗도리를 벗고 몸을 가볍게 한 뒤에 천천히 올라갑니다. 우리가 다녀본 절 집들은 거의 이렇게 높은 곳에 있었으니 이젠 즐기면서 가기로 했어요. 아니, 아예 오르막길 훈련한다고 생각하며 간답니다. 올라갈수록 차츰 더 가팔라지는 길에서 내리지 않고 끝까지 가보려고 온갖 애를 쓰며 천천히 발판을 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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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가는 길 회룡포는 나라가 평안하기를 바라며 세웠다는 '장안사'와 붙어 있어요. 길을 따라 매우 가파른 오르막이라서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꽤 힘들었지요. 그러나 한 번도 안 내리고 모두 타고 올라왔답니다. ⓒ 손현희



거의 꼭대기에 올라설 무렵, 저기 위에서 어떤 아저씨가 냉큼 사진기를 꺼내더니, 온힘을 다해 올라가는 우리를 보고 사진을 찍는 게 아니겠어요?

"어이쿠! 이거 내리고 싶어도 못 내리겠네."

사진까지 찍으면서 놀라워하는 아저씨를 보니, 아무리 힘들어도 내릴 수가 없었어요.


"아이고! 대단하십니다."
"네. 안녕하세요. 길이 꽤 가파르네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우리를 보고 저마다 놀라는 눈치였어요. 더구나 구미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더욱 그랬지요.

내성천 물줄기가 350도 휘감아 도는 회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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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오르는 길 회룡포 마을을 더욱 잘 보려면 이 계단을 따라 또 올라가야 해요. ⓒ 손현희


꼭대기에 올라서서 보니, 산비탈에 자리 잡은 장안사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전각들을 한눈에 모두 볼 수 있는데, 그 풍경이 매우 남다르고 멋스러웠어요.

오른쪽으로는 장안사가, 왼쪽으로는 회룡포 전망대로 가는 길이 있어 다시 왼쪽으로 올라갑니다.

너른 마당에는 우리처럼 회룡포 마을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전망대까지는 여기서부터 다시 계단을 올라가야 해요.

정자 가까이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사진으로만 봐왔던 회룡포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어요.

비룡산을 따라 낙동강 줄기인 내성천이 흐르는데, 마을을 가운데로 두고 마치 용이 나는 것처럼 이 물줄기가 350도를 휘감아 돌아 흐른다고 해서 ‘회룡포’라고 한 대요.

아랫마을인 향석리에 산다는 아저씨 한 분이 구경하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와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회룡포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어요.

"내가 여기에서 60년을 살았는데, 젊었을 때만 해도 저 아래 산을 타고 댕기믄서 나무도 하곤 했는데, 요새는 난도 못 올라가겠더라고…."

본디 이곳 이름이 '의성포'였는데 가까운 곳에 '의성'이 있어 자칫하면 의성에 있는 마을이라 잘못 알 수 있다고 해서 ‘회룡포’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리고 저 마을 들머리에다가 나무로 만든 용 한 마리를 세워두었는데, 누군가 몹쓸 사람이 그만 모가지를 싹둑 잘라갔다고 하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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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마을을 내려다보며... 아저씨 한 분이 회룡포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회룡포와 어우러진 뒷모습이 꽤 멋지죠?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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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나무틀에 쓴 낙서 2007.6.25 권OO 대박난다! 라고 쓴 낙서가 퍽 재미있어요. 낙서를 한 건 좀 그렇지만... ⓒ 손현희


여기 회룡포처럼 물길이 빙 둘러 흐르는 물돌이동이 몇 곳이 더 있는데, 안동 하회마을과 영주 무섬마을, 또 강원도 정선에도 동강 물줄기가 휘감아 도는 물돌이동이 있다고 해요. 그 가운데에도 이 예천 회룡포는 350도를 휘감아 도는 곳이라서 더욱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무엇보다 철을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을 보는 재미도 매우 남다르다고 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면 더욱 멋스럽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이 아저씨 말고도 이곳 얘기를 들려주던 분이 몇 있었는데, 저마다 낯모르는 이한테도 이것저것 자기가 아는 대로 회룡포 마을 이야기를 해주어서 퍽 재미있게 들었답니다. 하나같이 친절한 모습에 무척 고마웠지요.

나라가 평안하기를 바라며 세운 절 집, 장안사

아름답고 멋스런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내려와서 이번에는 장안사 절 집으로 들어섰어요. 이곳은 신라 경덕왕(759년) 때 운명조사가 처음 세웠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나라가 평안하기를 바라며 이름난 산에다가 '장안사'라는 절을 세 곳이나 세웠다고 해요. 금강산에 하나, 경남 양산에 하나, 그리고 여기 예천 비룡산에다가 세웠지요.

"아! 어쩐지 '장안사'라는 절집 이름을 많이 들어본 거다 했는데, 그랬구나!"

학교 다닐 때, 성악콩쿨대회에 나가 불렀던 금강산에 있는 '장안사'라는 노래가 있었지요.

장하던 금전벽우/ 찬 재 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곡-홍난파, 노랫말-이은상)


금강산에는 가본 적은 없지만, 이 노랫말로도 금강산 장안사에는 절터만 남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그런데 그것과 함께 세운 예천 '장안사'에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와서 밟고 서 있다는 게 스스로 대견스럽기까지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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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절집은 비룡산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어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퍽 멋스러워요. 그런데 하필 이 때, 역광이라서 사진이 제대로 안 살았네요. 아, 그리고 이 사진에 있는 아저씨가 자전거 타고 오르막 올라올 때 우리를 찍었던 분이에요. 이것저것 장안사에 얽힌 얘기도 해주셨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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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들머리엔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범종각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전각들이 있어요. 꽤 아늑한 풍경이었답니다. 마음을 씻고 가기엔 딱 알맞은 곳이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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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장안사 마당에 걸어 놓은 등불 ⓒ 손현희


소박해 보이는 절 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범종각이었어요. 이 범종에는 매우 남다른 얘깃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텔레비전에 소개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지난 2005년 8월 12일부터 한 주 동안 이 범종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단맛이 나는 어떤 물질이 방울방울 맺혔다가 밑으로 흘러내렸다고 해요. 이걸 먹으려고 벌떼가 몰려왔다고도 하는데, 불가에서는 범종에 이런 일이 생기면 매우 좋은 징조로 여긴다고 한 대요.

글쎄요, 나는 어떤 기적 같은 건 잘 믿지 않으니 뭐라 할 순 없지만 이 절 집에서는 퍽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답니다.

나그네여 발걸음을 바르게 하소서

이밖에도 여러 전각들이 저마다 비룡산 산비탈과 잘 어우러져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모양이 퍽 아늑했어요. 누구나 여기에 오면 마음을 깨끗하게 씻고 돌아갈 듯했답니다.

또 하나, 오랫동안 내 발걸음을 붙잡았던 글귀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절집 구석구석 붙여 놓은 글 가운데 전망대 올라가는 길 어느 나무에 붙여놓은 글이었어요. 조선시대 휴정스님이 쓰셨다는 '나그네'라는 이 글이었어요.

눈길을 걷는 나그네여
발걸음을 바르게 하소서
그대 남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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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휴정스님- 어디를 가든지 내가 남긴 발자국이 다른 이한테는 이정표가 된다는 생각을 해야겠어요. 살다보면, 매우 고마운 발자국이 있지요. ⓒ 손현희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산길에 들어섰는데, 잘 가다가 그만 길이 끊어져서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어요. 틀림없이 이정표를 보고 길을 따라 왔는데, 눈앞에 펼쳐진 건 길 대신에 무릎까지 제 멋대로 자라난 잡풀 뿐이었어요.

느닷없이 길이 없어져서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풀을 헤치고 얼마쯤 가다보니, 누군가 나무둥치에 매듭을 묶어 놓았어요. 매듭이 있는 쪽으로 몇 군데 더 똑같은 끈이 묶여 있는 게 보였지요. 그걸 따라 앞으로 나가서 가까스로 길을 찾았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 누군지 알 수 없으나 그 매듭을 묶어놓은 사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휴정스님이 쓴 이 글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새겼지요. 어디를 가든지, 또 무엇을 하든지, 내 발자국 하나라도 매우 조심해서 남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키우는 강아지조차 순박한 회룡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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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마을 뿅뿅다리 회룡포 마을로 가려면 이 뿅뿅다리를 건너야 해요. 차도 갈 수 없고 오직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너야 하지요. ⓒ 손현희



회룡포 쉼터에서 늦은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산 위에서 보았던 육지 속에 있는 섬마을인 회룡포 마을에도 들렀어요. 마을로 들어가자면, 넓은 모래밭을 지나 내성천을 건너야 해요.

그런데 자동차는 갈 수 없고 오직 걸어서만 갈 수 있는데,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이 뽕뽕 뚫린 철판으로 만든 '뿅뿅다리'를 건너야 한답니다. 마침 반대쪽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드넓은 모래밭과 냇물, 다리가 어우러져 한 폭 그림 같은 풍경이었어요.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이 다리를 건너갔는데, 겨울이라 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가운데쯤 가서 밑을 내려다보니 아찔하더군요. 그래도 다리를 건너는 일이 퍽 재밌고 신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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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마을 강아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조차도 순하고 착해요. 아마 집임자를 닮았겠지요? 소박하게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이라는 걸 이 강아지를 보고 느꼈답니다.(언젠가 절집 앞을 지나다가 사나운 개를 만났을 때, 개임자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요. 아마 그래서 꼬리치며 반가워하던 이 강아지가 더욱 예뻤는지도 모릅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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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 마을 안에는 바깥에서 온 사람들을 생각해서 만들어 놓은 듯 보인 변소가 있었어요. 나무집으로 예쁘게 지었는데, 안에는 매우 깔끔하게 청소를 해두었더군요. ⓒ 손현희



마을 안에는 아까 전망대에서 보았던 감빛, 푸른빛 지붕들을 이고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요. 논에는 닭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고, 강아지도 여럿 만났는데, 무척 평화롭게 보이는 이 마을 풍경처럼 무척 순하고 착했어요. 우리를 보고 꼬리를 치며 "앙앙! 앙앙!" 하고 짖는 게 매우 귀여웠어요. 강아지를 보면서도 비닐집 몇 채와 텃밭을 가꾸면서 소박하게 농사를 짓고 사는 이곳 사람들의 순박한 삶을 보는 듯했어요.

여느 시골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곳이지만 마을 한복판에 예쁘게 지어놓은 '공중화장실'이 눈길을 끌었어요. 아마도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생각해서 만든 듯했는데 청소도 자주 하는 듯 하도 깨끗해서 기분이 참 좋았답니다.

회룡포 전망대와 장안사 구경을 마치고 배고픈 걸 참으며 마을까지 구경한 뒤에, 회룡포 쉼터에서 살가운 아주머니 정까지 듬뿍 먹고는 이젠 곧장 20km 남짓 달려서 예천읍내로 들어갑니다. 오늘(12월 23일)은 예천읍에서 하루를 묵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명봉사에서 용문사까지 이르는 임도를 탈 계획이에요.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3~24일에 다녀온 얘기입니다.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회룡포 #장안사 #회룡포마을 #비룡산 #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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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이 기사는 연재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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