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만난 우리들의 부처님

수안보 지역 불교 문화재

등록 2008.01.04 19:58수정 2008.01.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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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수안보 미륵리절터 전경 북향하고 있는 특이한 절이다. 뒤쪽의 고개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용한 하늘재이다. 미륵리절은 하늘재를 지키는 군사적 역할도 겸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안보 미륵리절터 전경 북향하고 있는 특이한 절이다. 뒤쪽의 고개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용한 하늘재이다. 미륵리절은 하늘재를 지키는 군사적 역할도 겸했던 것으로 보인다. ⓒ 신병철

▲ 수안보 미륵리절터 전경 북향하고 있는 특이한 절이다. 뒤쪽의 고개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용한 하늘재이다. 미륵리절은 하늘재를 지키는 군사적 역할도 겸했던 것으로 보인다. ⓒ 신병철

새해 첫날 친구들과 수안보에 놀려갔다. 수안보에 뭐 볼거리가 있을까? 지난해 마지막날 수안보온천에서 몸을 깨끗이 했다. 새해 아침에 부처님 만나기 위하여 목욕재계한 셈이 되었다. 아침을 에둘러 먹고 미륵리절터로 향했다.

 

정확한 이름을 몰라 그냥 미륵리사지라고 말하는 이 절(이후 미륵사)은 특이하게도 북쪽을 향하고 있다.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이곳에서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송계계곡에 자리하여 남쪽을 보고 있는 덕주공주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란다. 미륵사 유적들이 모두 고려때의 모습이고 덕주사의 불상들도 모두 고려 이후에 만든 것이므로 신빙성은 없다.

 

가장 높은 곳에 돌부처 한 분이 곱상하게 서 있다. 석불이 보고 있는 북쪽만 열고 나머지 주변은 돌로 쌓았다. 앞쪽에 기둥을 세운 주춧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앞쪽을 목조건물로 보호하고 주변을 돌로 막은 반 석굴의 법당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불상은 크게 다섯개의 돌을 조각하여 포개놓았다. 왼손에 뭔가를 감싸쥐고 있다. 가슴 앞에서 양손을 모으고 있다. 둥그스러운 얼굴은 순박하다. 다소곳한 표정이 사람들 마음을 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소박한 고려 미륵불 중에 하나다.  

 

결코 오만하지 않고 수수하면서도 누구와도 쉽게 어울릴 것같은 우리들의 미륵부처같다. 친구들은 저마다 호감이 가는 미륵불에게 들리지 않게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 있었다. 이 미륵부처님께는 거대한 소원보다는 조그마하면서도 소중한 소원을 빌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소원이 무엇일까? "올해는 좀더 많은 사람과 푸근한 정을 나누도록 도와주소서"이 정도면 될까?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처모습을 국왕으로 여겼다. 국가 차원에서 불상을 새겼고, 그 수준은 대단하였다. 선종으로 부처나 미륵을 자처한 지방세력이 연합한 나라가 고려였다. 불교가 지방으로 저변이 확대되었다. 고려때부터 불상은 지방화했고, 조각의 수준은 형편없어졌다. 소박하고 단순하며 괴량감이 들기도 한다. 수안보 미륵불은 그 중에서도 소박하고 곱상한 아름다움을 지닌 대표적 부처님으로 통한다.  

 

a 미륵리절터 석불입상과 석등 및 석탑 북쪽을 향하여 남북일직선상에 자리잡고 있다. 석불이 가장 북쪽에 있다.

미륵리절터 석불입상과 석등 및 석탑 북쪽을 향하여 남북일직선상에 자리잡고 있다. 석불이 가장 북쪽에 있다. ⓒ 신병철

▲ 미륵리절터 석불입상과 석등 및 석탑 북쪽을 향하여 남북일직선상에 자리잡고 있다. 석불이 가장 북쪽에 있다. ⓒ 신병철

얼굴부위를 뺀 온몸이 세월을 견디면서 이끼옷을 입었으나, 얼굴은 너무나 깨끗하다. 머리에 갓을 썼기 때문일까? 갓을 쓴 불상에도 이끼가 낀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한다면 갓 때문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의 신통력이 통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신비로운 부처님의 능력에 의존하고픈 사람들이 이 부처님 앞에 와서 머리를 조아린다.

 

부처님이 서 있는 곳이 아마도 중심 법당이었을 것이다. 법당 앞으로 석등과 석탑이 차례대로 북쪽으로 서 있다. 바로 앞에 있는 석등은 통일신라 석등 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긴 중간의 간석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아래 위로 연꽃으로 장식했다. 균형잡힌 석등이기는 하나 상대석에서 보듯이 어쩐지 세련미가 떨어지고 있다.

 

석등 뒤쪽의 5층 석탑은 통일신라 양식의 고려때 석탑 모양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다. 2중 기단이 필요 이상으로 거대해졌고, 지붕돌의 길이가 짧다. 5층으로 변화를 나타내보았으나, 새로운 양식으로 개발되지 못한 고려식 통일신라 석탑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석탑은 동쪽으로 조금 가면 서 있는 삼층석탑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a 미륵리절터 고려식 석등 신라양식에서 벗어난 고려식 네모 석등이다. 높지는 않으나 푸근하고 앙증맞은 느낌마저 든다. 대좌의 연꽃과 화사석의 화창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미륵리절터 고려식 석등 신라양식에서 벗어난 고려식 네모 석등이다. 높지는 않으나 푸근하고 앙증맞은 느낌마저 든다. 대좌의 연꽃과 화사석의 화창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신병철

▲ 미륵리절터 고려식 석등 신라양식에서 벗어난 고려식 네모 석등이다. 높지는 않으나 푸근하고 앙증맞은 느낌마저 든다. 대좌의 연꽃과 화사석의 화창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신병철

그러나 석탑과 석등 중간 돋쪽에 있는 또 하나의 석등은 완전히 고려화했다. 자그마한 규모에 다정다감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화사석은 네개의 기둥으로 대신했다. 전체 몸매가 네모다. 중간 간석 중간에는 거꾸로 된 하트모양의 안상을 만들고 그 안에 꽃을 새겼다.

 

상대석과 화창의 네기둥과 그 위의 지붕이 아래쪽의 둥근 연꽃과 어울려 푸근한 멋을 풍기고 있다. 화창에 불을 밝혀 석등으로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다. 모양 자체가 그냥 환한 불을 보듯 했다. 미륵부처님의 푸근하고 곱상한 감정은 이 석등에서 다시 한번 되새김질되고 있었다.

 

푸근하고 온화한 부처님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덕주사의 부처님을 만나보기로 했다. 우리의 소원도 다양하니 여러 부처님을 만나 다양한 소원을 빌어야 뭔가 통할 것 같았다. 덕주사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산에 오른다. 먼저 올랐다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새해 처음 만나는 사람같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강요해본다. 돌아오는 화답 역시 밝기 그지없다.

 

a 덕주사 마애불 남향한 큰 바위에 온몸을 새겨넣었다. 굳게 다문 입과 반쯤 감은 눈으로 해탈의 높은 경지와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덕주사 마애불 남향한 큰 바위에 온몸을 새겨넣었다. 굳게 다문 입과 반쯤 감은 눈으로 해탈의 높은 경지와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 신병철

▲ 덕주사 마애불 남향한 큰 바위에 온몸을 새겨넣었다. 굳게 다문 입과 반쯤 감은 눈으로 해탈의 높은 경지와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 신병철

1시간쯤 월악산 정상으로 향하여 올라가면 덕주사 마애불이 나타난다. 남향한 큰 바위에 큼직하게 부처님을 새겨넣었다. 머리꼭대기에는 탑모양의 조상물을 올려놓아 마치 모자처럼 보이게 하였다. 손은 가슴앞에서 아미타여래의 수인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왼쪽 위에 최근에 지은 절이 극락전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 마애불이 아미타부처님이란 뜻이다.   

 

반듯한 코와 큰 귀 그리고 굳게 다문 입과 반쯤 감은 눈이 네모진 얼굴과 함께 근엄하면서도 해탈의 높은 경지 그리고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엄청난 노력과 봉사의 이타행으로 모든 중생들을 극락세상으로 이끌어갈 아미타부처님의 경지인가 보다. 높은 원력이 저절로 묻어나오고 있어, 친구들은 저절로 고개 숙이는 듯 했다. 이런 부처님께는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까? "모두가 자신이 차지한 위치에서 주인으로 행세할 수 있는 한 해가 되도록 도와주소서" 이쯤이면 될까? 

 

산에서 내려온다. 아래쪽 덕주사에 또 부처님이 한분 계신다. 약사전에 계신 병든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부처님 약사불이다. 큼직한 얼굴에 조그마한 손, 갑옷같은 윗옷 등이 조금은 조잡하다. 그럼에도 험상궂으나 퉁명스러운 친근감을 지닌 부처님이다. 왼손에는 약함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설법수인이다. 오른손바닥이 바깥으로 표현되어 있으니 조금은 한심한 조각이다.

 

a 덕주사 약사불 큼직한 머리, 불균형 몸매, 갑옷같은 옷, 바깥으로 보이는 손바닥... 애초부터 조각기법이 없었다. 고려나 조선시대 지방화한 불상의 전형을 보인다. 화려한 후불탱화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덕주사 약사불 큼직한 머리, 불균형 몸매, 갑옷같은 옷, 바깥으로 보이는 손바닥... 애초부터 조각기법이 없었다. 고려나 조선시대 지방화한 불상의 전형을 보인다. 화려한 후불탱화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신병철

▲ 덕주사 약사불 큼직한 머리, 불균형 몸매, 갑옷같은 옷, 바깥으로 보이는 손바닥... 애초부터 조각기법이 없었다. 고려나 조선시대 지방화한 불상의 전형을 보인다. 화려한 후불탱화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신병철

반면에 후불탱화는 매우 화려하다. 최근에 그려 건 것으로 보인다. 색깔과 내용이 앞에 앉아있는 약사불과 매우 대조적이다. 조잡하고 자연스럽고 투박하기 짝이 없는 불상과 화려하고 세련된 후불탱화로 한쪽이 모자란 것을 다른 쪽이 채워주고 있다.

 

이런 부처님께는 무슨 소원을 빌어야 어울릴까 또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우리 모두 아픈 사람이 없는 한해가 되어주고, 가난하여 치료 못받는 사람이 없는 한해가 되어 주소서" 이쯤이면 너무 큰 소망일까?

a 시골 한동네 초등학교 동기생의 새해여행  나이 50이 넘은 시골 한 동네 동기생 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새해여행을 떠나 많은 부처님을 만났다. 그리고 소원을 빌었다. "내년에도 만나자고"

시골 한동네 초등학교 동기생의 새해여행 나이 50이 넘은 시골 한 동네 동기생 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새해여행을 떠나 많은 부처님을 만났다. 그리고 소원을 빌었다. "내년에도 만나자고" ⓒ 신병철

▲ 시골 한동네 초등학교 동기생의 새해여행 나이 50이 넘은 시골 한 동네 동기생 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새해여행을 떠나 많은 부처님을 만났다. 그리고 소원을 빌었다. "내년에도 만나자고" ⓒ 신병철

새해 첫날 만난 우리들의 부처님 덕분에 초등학교 동기 한 시골동네 친구들은 온갖 소원을 다 빌어보았다. 정치색이 달라 술마신 밤에는 고성을 돋워 싸우기도 했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소원에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모든 소원을 뭉뚱그러 한마디로 "내년에도 여행가서 부처님 만나자"

2008.01.04 19:58ⓒ 2008 OhmyNews
#미륵리사지 불상 #덕주사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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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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