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백문제 해결 위해 노력한 흑인탐정

[불멸의 탐정들 18] 데릭 스트레인지

등록 2008.01.09 10:33수정 2008.01.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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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데릭 스트레인지가 등장하는 2001년 작품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데릭 스트레인지가 등장하는 2001년 작품 ⓒ 황금가지

▲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데릭 스트레인지가 등장하는 2001년 작품 ⓒ 황금가지

데릭 스트레인지가 활동하는 곳은 미국의 워싱턴DC(디시)다. 스트레인지는 디시에 '스트레인지 탐정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건 지 25년이 되었다. 이 간판은 돋보기 무늬를 이용해서 독특하게 고안한 글씨로 장식되어 있다.

 

누군가는 스트레인지에게 '왜 돋보기 그림을 이용했어요?'라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 스트레인지는 '내가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이거든'이라고 대답한다. 데릭 스트레인지는 50대 중반의 흑인이고, 이 사무소를 다른 두명과 함께 운영해간다.

 

데릭 스트레인지는 미혼이다. 이제 누군가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접은 상태다. '그레코'라는 이름의 개를 한마리 키우고 있고, 한물간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시간보내는 것을 즐긴다.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시간을 내서 요양소에 있는 늙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함께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은 중년 여성 제닌 베이커, 젊은 청년 론 라티머다. 제닌과 스트레인지는 연인 사이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하기도 한다.

 

사무소를 운영하는 25년 동안 스트레인지는 많은 일들을 해왔다. 어떤 특정인의 뒷배경을 조사하고, 보험사기를 캐내기도 했다. 간통사건을 조사하고 변호사 대신에 증인을 면담하고, 돈받고 법원에서 증언을 하기도 한다. 돈 떼어먹고 달아난 사람을 추적하고 실종된 사람을 찾아주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과격한 일과는 거리가 멀다. 형사사건이나 살인사건 같은 일은 그동안 취급해오지 않았다. 그런 일들은 자신의 능력 밖이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2001년 작품인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에서, 이런 일들을 하는 대가로 시간당 30달러를 받는다. 교통비를 비롯한 각종 비용은 별도로 청구된다.

 

현대화된 장비를 사용하는 흑인 사립탐정, 데릭 스트레인지

 

1950년대에 활약했던 마이크 해머가 일당으로 하루에 50달러를 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동안 물가와 인건비가 오르긴 많이 오른 모양이다. 게다가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스트레인지가 사용하는 장비도 많이 현대화 되었다. 삐삐와 휴대폰은 기본이다.

 

스트레인지는 소형 플래시와 각종 연장세트를 허리에 차고 다닌다. 쌍안경과 음성인식 테이프 리코더, 망원렌즈가 장착된 캐논 카메라, 적외선 안경 그리고 비디오카메라까지 차 안에 넣고 다닌다. 그런 장비들을 모두 유지해가려면 돈이 들어가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이렇게 시대가 변한만큼 탐정활동을 하는 방식도 변했다. 예전의 탐정들은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고 온갖 증언과 증거를 모으면서 일했다. 2000년대는 휴대폰과 인터넷의 시대다. 탐정일도 인터넷을 이용해서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프로그램에 특정인의 사회보장번호를 넣고 돌리면 웬만한 정보는 모두 얻을 수가 있다. 현재주소와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현 직장과 전 직장,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주소까지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인지는 구시대 사람이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보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생생한 정보를 얻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창녀와 마약쟁이들은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정보원이다. 택배기사와 육체노동자들도 괜찮다. 이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약간의 돈이 필요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인지는 거리에서 활동하기에 적합한 체격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185cm의 키에 90kg 가까운 몸무게가 나간다. 한때 경찰일을 했었기 때문에 경찰의 걸음걸이가 그대로 남아있다. 매일 집의 지하에서 샌드백을 두들겨서인지 체격도 탄탄하다. 50대 중반이 될때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겪어와서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박이지 않는다.

 

스트레인지는 복잡한 살인사건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것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대도시가 그렇듯이, 스트레인지가 살고있는 디시도 마찬가지로 범죄율이 높다. 밀레니엄이 시작된 첫 6개월 간 살인사건은 33%, 강간사건은 200%나 증가했다. 반면에 살인사건 해결율은 최하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콜롬비아 구역의 살인사건 중 2/3가 미제로 남았고, 해결율은 31%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인지 탐정사무소로 살인사건과 관련된 의뢰가 들어오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살인범들은 시내에서 판을 치고 있는데 경찰력이 부족하다면 사립탐정이라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 데릭 스트레인지도 그렇게 살인사건을 의뢰받는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다. 사건의 뒤에는 마약이 있고 성매매가 있다. 그리고 마약과 성매매를 아우르는 커다란 조직이 있다. 데릭 스트레인지는 경찰의 도움도 별로 없이 이런 조직과 맞설 수 있을까.

 

조직범죄와 인종문제로 골치아픈 워싱턴DC

 

a <지옥에서 온 심판자> 데릭 스트레인지가 등장하는 2002년 작품

<지옥에서 온 심판자> 데릭 스트레인지가 등장하는 2002년 작품 ⓒ 황금가지

▲ <지옥에서 온 심판자> 데릭 스트레인지가 등장하는 2002년 작품 ⓒ 황금가지

또 다른 문제는 인종 문제다. 스트레인지가 살고있는 디시에도 흑인들이 많다. 자신이 흑인이라서 그런지 스트레인지는 흑인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곳에 사는 흑인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직업도 없다.

 

이곳에서 자라고있는 흑인아이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 남자아이라면 마약조직에 속해서 폭력을 배우게되고, 여자아이라면 성매매조직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스트레인지는 이런 환경에 분통을 터뜨린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개 엉뚱한 곳에 신경쓰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왜 흑인배우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지 않냐고 말하는 흑인들에게 스트레인지는 코웃음을 친다. 흑인을 위한 교육시설 부족에 비가 새는 지붕, 15년 된 교과서… 이런 문제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 흑인아이들도 똑같은 텔레비젼을 보고 똑같은 광고를 보면서 성장한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된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손에 넣을까.

 

이 지점에서 아이들의 선택은 갈리게 된다. 조직으로 들어가서 냉혹하고 잔인하게 변해가는 아이들이 있고, 정당한 방식을 통해서 다른 방법으로 기회를 얻으려는 아이들도 있다. 사회의 빈부격차가 심해져가는 것처럼, 이렇게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깊어져 간다.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에서 스트레인지는 한 전직경찰과 만나게 된다. '테리 퀸'이라는 이름의 백인이고, 스트레인지보다 25살이 적은 청년이다. 퀸은 순찰 중에 한 흑인을 쏘아 죽인 적이 있다. 그 사건 때문에 결국 경찰복을 벗고 이제는 헌책방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시민으로 변한 사람이다.

 

퀸은 스트레인지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정당하다고 말한다. 총기사용에 관한 규정을 지켰고, 상대방이 먼저 총으로 위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스트레인지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다. 상대가 흑인이기 때문에 퀸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퀸이 흑인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면, 그 흑인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스트레인지는 말한다.

 

흑백 파트너, 데릭 스트레인지와 테리 퀸

 

이렇게 만난 이들의 관계는 미묘하게 발전해간다. 만날 때마다 흑백문제로 조금씩 설전을 벌이고 갈등을 겪으면서도, 이들은 서로를 믿는 파트너로 변해간다. <지옥에서 온 심판자>에서는 이들이 함께 동네의 흑인아이들을 모아서 풋볼을 가르치고 백인아이들과의 시합을 주선하기도 한다.

 

스트레인지는 풋볼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정정당당한 플레이와 동료에 대한 애정을 가르친다. 스트레인지 팀의 아이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장비는 엉망진창이고 유니폼은 누더기 꼴이다. 백인팀의 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조롱하고 비웃는다. 하지만 스트레인지는 그런 문제에 신경쓰지 말라고 팀원들에게 말한다. 백인 코치가 백인 아이들에게 '상대방을 무조건 까부수라'고 주문할때, 스트레인지는 흑인 아이들에게 '네 형제를 보호해라'고 말한다.

 

스트레인지의 풋볼팀을 모든 사람들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 한 흑인은 스트레인지에게 '그런 식으로 세상을 구원할 겁니까'라고 묻는다. 스트레인지는 여기에도 신경쓰지 않는다. 비뚤어지려는 아이를 한명이라도 잡아서 풋볼팀에 넣고, 아이들에게 페어플레이와 협동심을 가르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이처럼 흥미로운 중년의 흑인 탐정을 만든 작가는 미국의 조지 펠레카노스다. 데릭 스트레인지처럼 워싱턴 토박이고 첫소설을 쓸때까지 바텐더, 주방장, 접시닦기, 건설인부 등 온갖 일들을 해왔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이 데릭 스트레인지와 그 주변인물들을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데릭 스트레인지는 영화, 그중에서도 오래된 서부영화를 좋아한다. 스트레인지가 돌아다니는 워싱턴의 뒷골목도 마치 서부영화의 한장면같다. 총과 마약을 든 무법자들이 거리를 휩쓸고 있고, 시비걸만한 사람을 찾아서 눈을 크게 뜨고 걷고 있는 흑인들도 있다.

 

그 거리를 걸으면서 스트레인지는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타락해버린 소년소녀들을 생각하고,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풋볼팀의 소년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도시를 주름잡고 있는 흑인 갱단을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인종문제 그리고 그와 밀접한 가난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수백년 동안 쌓여온 앙금이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데릭 스트레인지가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인지 모른다. 하지만 스트레인지의 말처럼, 책임을 나누려고 한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 희망이다. 60살을 바라보는 늙은 탐정이 지치지 않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것도 그 희망 때문일 것이다.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조지 펠레카노스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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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경찰을 죽이다

#추리소설 #데릭 스트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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