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7km를 지나 최종 목적지를 20km 남겨두고

[천진난만하게JH, 산티아고 가는 길 39] 리바디소 데 바이소에서 페드로조까지

등록 2008.01.28 14:48수정 2008.01.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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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30일 월요일, 날씨 맑음, 순례 38일째.
리바디소 데 바이소에서 페드로조까지, 20km.
오전 7시 출발, 오후 1시 30분 도착.


새벽 여섯 시, 이른 아침 채비에 바쁜 식당 안이 부산스럽다. 눈을 뜨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잤니?’ 에어 매트리스의 바람을 빼 가방에 접어 넣으며 호르케가 묻는다. 여전히 인기척이 분명한 옆자리를 돌아보니 곤히 잠든 이는 웬 육중한 몸집의 아저씨, 이게 무슨 일이지?


“산티랑 세바스랑 밤늦게까지 얘기하다가 그냥 밖에서 자 버렸어. 재미있긴 했는데 지금은 침낭이며 옷이 전부 이슬에 젖어서 좀 낭패네.”

잠도 다 깨지 못해 몽롱한데 꼭 뭐에 맞은 듯 멍하다. 어젯밤 작은 미동에도 불안하기만 해 뜬 눈으로 밤을 새웠던 상대가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였다니, 원효대사는 선잠에 들이킨 해골 물에 깨달음을 얻었다는데, 나는 밤새도록 들판에서 자고 있던 이를 옆자리에 끌어와 안절부절 못했다.

느릿느릿 자리를 개고, 빌렸던 매트리스를 돌돌 말아 아가타에게 전했다. 몇 번을 괜찮다고 하는 것을 말려 작은 선물을 함께 건넸다. 대충 짐 정리가 되어 오늘은 언니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호르케 네는 바에서 식사하고 출발하겠다고 한다.

a 새벽안개 속에서 산티아고 가는 길

새벽안개 속에서 산티아고 가는 길 ⓒ JH


앞길을 내다볼 수 없는 부연 안개를 헤치며 드문드문 들판에 구름처럼 몸을 동그랗게 하고 잠든 양떼들을 지나갔다. 곧 밝아오는 아침햇빛에 시야가 맑아졌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걷고 ‘아르주아(Arzua)'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마을이었다. 인도를 따라 일렬로 걸어가다 노천에 테이블을 늘어놓고 영업을 하는 작은 바에서 아침을 먹자고 졸라 짐을 풀었다. 허름할 줄 알았던 실내에는 오리엔탈 스타일의 벽지, 천장에는 새장이 달려 있고, 벽 한쪽을 따라 물이 흐르고 있었다.

빵집에서 갓 배달되어 진열장에 들어온 크로와상 한 개씩, 그리고 구미에 맞는 음료를 골랐다. 오늘의 음료는 테 콘 레체(밀크티), 따뜻한 홍차 한 주전자에 우유 작은 컵이 딸려왔다. 설탕을 있는 대로 들이붓고 ‘걷기 위한 당분 보충용이야’라고 납득시키며 한 모금 들이키는데 벽에 걸린 대형PDP TV로부터 뉴스가 흘러나온다. 언니들이 “지금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보도하고 있는데?” 하며 시선을 주시한다. 간간이 ‘꼬레아 델 수르’, 그리고 절박한 목소리로 “플리즈, 세이브 어스”를 외치는 여성 피랍자의 육성이 들렸다.


지금쯤 한국에서는 엄청난 이슈로 매일매일 미디어의 간판을 장식하고 있겠지, 한국인들의 피랍소식은 정은 언니를 만나고서 알게 된 것 같다. 언니가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그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전말에 대해 알지 못했고, 그런 사건을 내 입으로 서툴게 재단질 한다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시골동네 작은 마을과 흙길, 숲길만 걸어다니다 보니 세상소식과는 멀기만 하다. 생장피드포르를 떠나고 며칠 후 그 곳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테러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다른 순례자를 통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피랍단체 역시 몇 명의 희생자를 내고 한국에 도착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극성도 정도가 있지’ 라며 그들에 대한 평가를 마치고 말았던 나는, 과연 누가 극성이고 누가 점잖은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라는 이유로 스페인을 걷고 돌아온 나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하다 참변을 당하고 돌아온 그들…. 나를 바라보며, 과연 나 자신은 ‘하느님의 뜻’을 들먹이며 내 뜻을 세우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이것들은 모두 훗날의 생각일 뿐, 당시에는 그저 시끄러운 TV 소리가 성가시고 귀찮기만 해서 ‘저것만 없으면 그런 일이 생긴 줄도 모르고 그냥저냥 걷는 일밖에는 없는데’하며 구시렁댔다. 미디어가 사건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건을 사방으로 ‘흐르게’ 하고 그 흐름 속에 잘게 조각난 사실을 담아 세상에 흩뿌리는지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부옇게 일어난 사건과 사고의 파고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지 모른다.

한 시간 채 못 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쨌든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며, 벽에 걸린 TV를 잠시 응시하고는 길 위에 올랐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길 위에 올라서면, 세상의 소란과 싸움, 죽고 사는 문제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같은 길을 가는 순례자들을 벗 삼아 묵묵히 걷는 일밖에는 없다.

a 머리묶고 치마입은 여성순례자 길 위의 순례자 표지

머리묶고 치마입은 여성순례자 길 위의 순례자 표지 ⓒ JH

걷다 무심코 지나가던 표지판 앞에서 “이것 봐, 치마 입은 순례자는 처음 봤어.” 하며 언니가 손짓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순례자들이 검은 펜으로 순례자 사인에 치마를 입히고 포니테일을 그려 넣었다. 사진 한 장을 찍고 웃었다. 시원스럽게 뻗은 유칼립투스 나무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앉아서 쉬기 좋은 널찍한 바위 하나를 만났다. 짐을 풀고 다리를 쉬는데 몰리나세카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독일 순례자 세나와 인드라를 다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곧 산티아고네. 우리는 금방 독일로 돌아가야 해. 또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사진 한 장 찍자.”

언니들에게 부탁해 나란히 서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너 혹시 조지 만났니?”, 하기에 조지는 대체 누구지 하고 생각하는데 “리에고 데 암브로스에서 같이 만났던 스페인 애. 스페인 어로는 뭐라고 하더라…. 우리는 그냥 조지라고 부르는데”, “호르케 얘기구나?” 했더니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 요즘 일정이 맞아 같이 걷고 있다고 했더니 “만나면 안부 전해주렴. 우리가 걔 보고 싶어 한다고 말야. 재미있는 애야” 하면서 서로 웃는다. 알았다고 하고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우리도 풀어두었던 신발끈을 다잡고 다시 걸었다.

때마침 뒤쪽에서 희한한 소리가 들린다. “이~햐!” 하는 외침은 마치 들판에서 소를 부리거나 양떼를 몰 때에나 낼만한 느낌이었다. 다름 아닌 호르케와 산티, 세바스였다. “아까 그 소리는 뭐니?” 하고 묻자 “세바스가 가르쳐 준 거야. 남부 시골 사람들이 곧잘 하는 소리래. 웃기지 않아? 그래서 우리끼리도 서로를 확인하는 구호로 써먹고 있어. 너도 해 봐!” 하며 시험 삼아 또 “이~햐!” 하는데 “그게 뭐야, 됐어” 고개를 저었다. “해 봐! 그래야 우리도 너를 알아볼 수 있지” 뜸을 들이다 참 소심하게 “이-햐” 그리고 키득거렸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카메라를 건네면서 자기들이 찍은 비디오를 하나씩 보여준다. 느릿느릿 걷는 순한 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카미노 식(式) 산 페르민’을 연출한 것, 갈리시아 비석 앞에서 환호하는 모습, 포르토마린을 빠져나오는 길에 내가 찍었던 그들의 눈물겨운 재결합(?), 그리고…, 어제 리바디소에서 내가 언니들과 물장구를 치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반대쪽 강에서 찍었지. 너희도 재미있게 노는 법을 잘 알던데? 메일로 보내줄게.”

까르르 웃음소리와 물 튀기는 소리가 카메라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어제는 스페인 친구들과 어울려 바쁜 줄만 알았더니 언제 또 이런 건 다 찍었는지. 곧 언니들과 호르케 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걷는데, 또다시 뒤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합창소리다.

“낭패다, 보이스카웃이야!”

아르주아의 순례자 숙소 앞에서 진을 치던 소년소녀들이 줄을 맞춰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쩌렁쩌렁 그들의 합창에 온 숲이 진동한다. 순간 저 녀석들이 숙소에 먼저 닿기라도 하면 오늘 밤도 땅바닥에서 자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너희는 먼저 서둘러. 우리가 막아볼 테니까!” 하는데 대체 뭘 어떻게 막겠다는 건지, 뜬금없는 모험정신이었다. 어찌 되었건 여기서 지체해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에 달리듯 걸었다.

걷다 나타난 작은 바를 보니 이쯤에서 세나와 인드라가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바 안으로 쏙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니 노천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방금 호르케 만났어. 잘하면 너희랑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보이스카웃들이 밀려드는 중이라 나는 먼저 갈게. 커피 잘 마시고!”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마치 승전보를 전하는 마라톤이라도 하는 양 소식을 전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a 산티아고 가는 길 마을에 걸린 안내표지

산티아고 가는 길 마을에 걸린 안내표지 ⓒ JH


한바탕 소란을 치르고, 길은 침묵으로 접어든다. ‘아르카 오 피노(Arca O Pino)’를 지나 한 시간 정도를 더 걸어 오늘의 목적지인 ‘페드로조(Pedrouzo)’에 닿았다. 널찍한 도로를 따라 트럭과 자동차들이 재빠르게 스쳐갔다. 지난 38일 동안 염원하던 산티아고까지 자동차를 잡아타면 도로를 따라 고작 10분이다. 그러나 목적지의 기쁨은 내일로 아껴두고,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짐을 풀기로 했다.

이제 겨우 한 시 반, 벌써 숙소 주변이 부산한 걸 보니 자리가 많이 줄어들었나 보다. 수속을 마치고 배정받은 침대 안쪽으로 건장한 청년들이 진을 치고 있다. 상체를 드러낸 채 침대에서 뒹굴다 비좁은 통로를 따라 “잠깐만” 하며 이제 가방을 내려놓은 우리를 스쳐 가는데 “몸짱이네” 이런 얘기들을 하며 눈을 어디로 둬야 할지 난감해 했다. 이곳 샤워실은 퍽 불친절해 칸막이도 없는 샤워실을 지나야 남자 화장실이 나온다. 어떻게 씻어야 하나 고민하던 스페인 여성 순례자가 “너희도 같은 여자니까 알겠지만…” 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넨다. 서로 샤워할 동안 앞에서 문지기를 해 주자는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

몸을 씻고 순례자들의 옷이 빼곡한 빨랫줄에서 빈틈을 찾아 빨래를 널었다. 언니들과 함께 숙소를 나서 휘적휘적 슬리퍼를 끌고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두 개의 식당이 나란하게 붙어 있어 어디로 갈까 한참 고민하다 무작정 한 곳으로 쏙 들어갔다. 메뉴는 없다기에 일품요리를 시켰더니 눈앞에 나온 것이 마요네즈에 버무린 샐러드 두 볼, 생 노른자가 날 것 그대로인 달걀프라이 두 개, 팬에 구운 닭 가슴살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느끼함에 온몸이 미끌거린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인심이 박한 건지, 식당을 잘못 고른 것인지, 메뉴 찍기에 실수를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시장이 반찬인지라 신나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때에 이제 도착한 호르케와 산티, 세바스가 심상찮은 분위기로 식당으로 들어온다. 표정들이 하나같이 좋지 않다. 말을 걸어볼까 하다 나중에 숙소에서 얘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조용히 식당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하다, “오늘 저녁은 저희 만들어 먹어요. 오래간만에 식당에 집기들도 있으니까 괜찮겠죠? 그리고 마지막 밤이니까… 맥주 파티해요!” 가볍게 라면이라도 해 먹어볼 생각으로 상점에 들러 파스타며 이것저것 장을 봐 왔다. 언니들과 길 위에서 요리하고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습한 침대 매트리스 위에 판초 우의를 깔아도 답답하기만한 실내가 버거워 노트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리셉션을 지나가다 버럭 화를 내며 오스피탈레라와 말싸움을 하는 호르케를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에 깜짝 놀라 근처에서 가만 있다가 소란이 잦아들자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니?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우린 오늘 여기서 못 자겠어. 지금 출발할까 하는 중이야.”
“지금? 산티아고까지 간다고? 벌써 네 시가 넘었는데 지금 출발하면 너무 늦잖아.”
“우리는 겨우 침대를 받아 자리를 잡았지만 이상하더라고. 120개가 넘는 침대가 있는데 겨우 두 시에 꽉 찼다니, 알고 보니 아침에 이탈리아에서 온 보이스카웃 인솔자가 차를 타고 와서 일행들을 위한 침대를 예약했다더군! 오스피탈레라도 그냥 눈감고 봐준 거야. 말이 되니? 규칙 위반이잖아.”

언제나 웃고 경쾌하고 즐겁기만한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 애한테 이렇게 딱 부러지는 원칙, 혹은 쓸데없는 호승심이 있을 줄 몰랐다.

“그래도 너희들은 모두 침대를 구했잖아. 겨우 오늘 하루 지내고 떠날 곳인데 그렇게 날카롭게 굴 필요 있을까? 오히려 네가 손해잖아. 무엇보다 네 몸 망가지는 거고.”

“손해? 그렇게 생각하니? 하지만 이건 분명 잘못 된 거야. 그리고 지금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또 되풀이될지도 모를 일이지. 이건 내 나름의 의사표현이고 옳지 못함에 대한 대응방식이야. 날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이건 우리들, 스페인 사람들의 문제야.”

그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사나운 눈으로 산티와 세바스와 함께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 다리를 모으고 앉아 글을 조금 적어보려 했지만 도저히 집중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커튼을 제치다 봉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난감해져 뽀르르 방으로 돌아갔다. 퀘퀘한 숙소의 습기와 견딜 수 없는 침대의 눅눅함…, 나 역시도 할 수 있다면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숙소 바깥에서 햇빛을 쬐며 두리번거리다 방금 도착한 세나와 인드라를 만났다. 그녀들 역시 숙소를 돌아보고 “자리가 있어도 여긴 정말 못 있겠다”며 자기들은 팬션을 찾아 더 걸어갈 생각이라고 한다. 리바디소 가는 길에 만났던 독일에서 온 마이카 역시 이곳을 스쳐 산티아고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두 손을 흔들며 “먼저 가” 하고 인사를 전했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에도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가, 어느새 저녁시간의 허기가 짙게 느껴졌다. 언니들과 함께 부산스러운 식당에서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준비했다. 스토브 한 쪽에 곰솥 같은 냄비를 얹고 가득한 물에 생쌀을 부어 연신 국자로 저으며 쌀을 끓이는 이들의 요리가 신기했다. 이것도 쌀을 요리하는 하나의 방법이구나, 제법 먹음직스러운 온갖 요리들이 바글바글 끓는 가운데 우리가 만드는 해물라면 파스타가 알싸하게 매콤한, 그리운 향기를 풍기며 익어간다. 더불어 퀘소 치즈를 총총 썰어 넣은 과일샐러드에 바닐라 요거트 소스를 곁들였다. 그리고 부지런히 완성된 요리들을 식당으로 옮겼다.

저녁 한 끼에 땀을 쏙 뺐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의자에 앉으니 (언제나처럼) 생각보다 푸짐한 끼니가 되었다. “이 한 상이 최후의 만찬이네요”, 우리는 사진을 찍고 오래간만의 매운맛을 즐기며, 산티아고를 앞두고 마지막 저녁을 나누었다. 때마침 적당히 맥주가 차가워져 잔 몇 개와 술병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저마다 술잔을 기울이며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잔을 채우며 “이제 겨우 시작인 것 같은데”, “언제 산티아고까지 오나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 아쉬움을 토로했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산을 넘기고 서로의 얼굴마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기만한 돌바닥에 앉은 듯 기댄 듯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스코틀랜드의 켄과 줄리아는 벌써 꽤 술이 오른 듯했다. “한국에 가 본 적이 있지. 좋았어” 하며 주정처럼 낮게 주절거리는데 이 아저씨와도 오늘이면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마음에 조용히 앉아 말벗해 주었다.

곧 냉장고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던 조각케익이 떠올라 “우리 그걸로 입가심해요!” 하며 후다닥 부엌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오자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힘을 주었던 윤소 언니의 두 눈에 눈물이 번져 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동갑 언니들의 깊은 이야기가 오고갔나 보다. 어쩔 줄 모르고 그저 옆에 둔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어쩌면 호르케의 화, 그리고 윤소 언니의 눈물, 은아 언니의 담담함, 나의 멍함은 지난 한 달, 매일 손꼽아 기다려왔던 그곳을 앞에 두고 벅차오르는 감정에 대한 저마다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곧 숙소 문이 잠길 시간이 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들어왔다. 방에서 호르케를 다시 만났다. “잠깐만 얘기할 수 있어?” 하기에 이미 잠에 빠진 순례자들 사이로 살금살금 걸어 방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세시 쯤 일어나기로 했어. 그리고 새벽에 걸어서 산티아고에 갈 생각이야.”
“세 시? 지금 열한 시야. 너 어제도 풀섶에서 거의 못 잤잖아. 네 시간 가지고 되겠어?”
“어차피 마지막 날이잖아. 어떻게든 될 거야.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쉴 수 있잖아.”
“난 모르겠어. 왜 그렇게 너희가 서두르는지. 그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걱정돼서 그래.”

“걱정? 그거 네 특기였지! 마음은 고마워. 그렇지만 이건 누구 때문에, 누굴 위해서 하는 게 아니야. 한 번쯤 밤에 걸어보고 싶었어. 내일이면 마지막이니까 오늘밖엔 기회가 없어. 때마침 오늘 밤은 만월이야. 다 짐작해둔 게 있어서 그래. 빛도 충분하니 그렇게 위험하지 않을 거야. 게다가 우리 세 사람이 같이 걸으니까 충분히 안전해.”
“어휴, 너희들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강요하는 건 아냐. 너에겐 한국 친구들도 있으니까. 어쩌면 네 말대로 위험할 수도 있어. 한밤중에 걷는 건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고. 그리고 너희는 걷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여행할 곳들이 많으니까 무리하지 않는 게 좋아. 그저 내일 일어났을 때 아무 이야기도 없이 우리가 사라져 있으면 네가 실망할 것 같아서 얘기해 주고 싶었어. 어쨌든 산티아고에선 만날 수 있잖아. 그렇지?”

나는 “그렇지만…” 말을 흐리고 오랜 시간 그의 앞에서 복잡한 채로 서 있었다. 그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나도 착실하게 ‘내일 먼저 떠날 수도 있다’고 내게 인사를 하고 있다. 언제나 그가 ‘함께 걷자’고 하면 ‘괜찮으면 그렇게 하자’ 하고는 말 한마디 없이 빈 침대를 두고 내빼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나 그래 왔다….

그는 한 밤의 길을 걸어 함께 산티아고에 닿자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걷고 싶었다. 지금 당장 출발한다고 해도 짐을 싸들고 나설 수 있었다. 눅눅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방에서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위험하다든가 쓰러진다는 얘기는 모두 내 전매특허인 ‘걱정’의 세계 안에서만 일어날 일임도 이제는 알고 있다. 38일을 이어오던 걸음의 마지막 날을 앞둔 밤이었다.

“나는 좀 말렸으면 좋겠네. 무리야, 무리. 좋은 경험일 수도 있지만 정말 우린 이 길만 걷고 끝이 아니잖아. 당신도 아직 한 달이나 여행이 남아 있고…. 잘 생각해 봐. 우리는 천천히 갈 테니까.”

언니들은 침대에 누워 보조등을 끄며 그들의 강행군에는 동참하지 않겠다고 한다. 곧 일행들과 작전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 호르케가 침대 위로 풀쩍 뛰어오르려는 것을 잡아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잘 모르겠지만 이따가 너 일어날 때 깨워 줘. 확신은 못 하겠어. 적어도 인사라도 하고 싶어”, 그러자 자기 모바일을 꺼내 “세시 반에 알람 맞춰두었으니까 너도 들을 수 있을 거야. 내가 깨워줄게. 같이 안 걸어도 괜찮으니까, 잘 자” 하고 침대로 휙 하니 올라간다.

위쪽 벽에서 퍼져 나오는 보조등의 빛을 바라보며 잠들지 못하고 고민했다. 곧 미동과 함께 등이 꺼지고, 모두가 잠든 암흑의 순례자 숙소에서 홀로 눈을 뜬 채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꿈꾸듯 걷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몇 방울의 눈물을 길 위에 떨구며 757킬로미터를 지나왔다. 그리고 순례의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앞으로 20킬로미터를 남겨두고 있었다.
#산티아고가는길 #카미노데산티아고 #스페인 #도보여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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