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성을 '변'에서 '박'으로 바꿨습니다

성씨 때문에 괴로웠던 40년... 자식 성을 바꿀 수밖에 없는 이유

등록 2008.03.25 16:56수정 2008.03.2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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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께.


수고 많으십니다. 저는 1학년 4반에 박현근(구 변현근) 또, 6학년 5반에 박해림(구 변해림) 아버지 되는 변창기입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서신을 드림은 다름 아니오라 제 자식들의 '성씨' 문제 때문입니다. 이미 보고를 받으셨겠지만 저는 이번에 제 사랑스런 자식들의 성씨를 아버지 성씨인 변씨에서 어머니 성씨인 박씨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저의 혐오스런 성씨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들마저 놀림감이 되고 참담하게도 그것이 되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 성씨를 바꾸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제 성씨 때문에 아이들이 놀림감 된다니...

a  사진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대법원 본관.

사진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대법원 본관.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해 말경 어느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2008년부터 호적법이 바뀜에 따라 자녀 성씨를 바꿀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월 8일 울산 법원에 '자녀 성과 본 변경' 민원을 올렸습니다. 그후 지난 2월 1일 오후 3시경 판사님의 재판 심의를 거쳐 지난 3월 6일 법원으로부터 성씨 변경을 허가 한다는 판결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문으로 구청에 찾아가 호적에 성씨를 변경하고 서류를 준비해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제출, 드디어 자식들의 성씨를 바꾸기에 이르렀습니다.

판사님이 그러시더군요.

"개인적으로 아이들 성을 엄마의 성으로 바꾸는 것에 반대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시고 한번더 심사숙고 할 의향은 없습니까?"

그 말에 저는 대답했습니다.

"태어나서 40년 넘게 심사숙고 했고, 결혼후 10년 넘게 깊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입니다. 아비된 입장에서 혐오스런 성씨가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 되는 거 같아서 괴롭습니다. 제발 바꾸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판사님은 같이 참석한 딸(해림이)에게도 묻더군요. 왜 바꾸고 싶냐구요. 딸도 친구들이 자꾸 놀려 싫다고 하더군요.

어린 시절부터 마흔 넘은 이 때까지 제 별명은

제가 성씨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어려서부터 입니다. 저는 친일군인 통치권자가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한지 10년이 지난 후 국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때는 반공을 국시로 삼은 친일 군부 박정희씨가 국가권력을 강압에 의해 통치하던 암울했던 시절이었지요.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보다는 권력유지와 연장에 골몰한 통치수단으로서 주입식 위주 교육이 판치던 때였지요. 생명의 존엄성보다는 사상과 이념이 다른 상대방은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된다고 교육받았습니다.

제 이름은 '변창기'입니다. 이름 가운데 '창'자만 빼면 '변기'가 되지요. 저는 제 성씨와 이름 때문에 어려서부터 많은 놀림을 받으며 자랐답니다. 그 외에도 똥씨·변똥·변소·변기통·변태 등 이름이 응용되어 혐오스런 여러가지 별명들로 불리워 질 때 마다 저는 쥐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고픈 심정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청년 시절을 거쳐 결혼하고 이제는 40줄이 넘은 이 나이에도 제 별명은 사라지지 않고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6학년이 된 딸 해림이도 마찬가지였고 올해 1학년에 입학한 아들 현근이도 똑같은 놀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성씨에 대한 놀림이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엄마, 친구들이 자꾸 똥이라 그래."
"아빠, 친구들이 변태라고 자꾸 놀려."

그렇게 말하면서 딸과 아들은 엄마 성씨로 바꾸면 안되냐고 저에게 울먹거리며 물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랑스런 자식들의 고통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정서폭력' 예방할 인권교육 부탁드립니다

a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문 위의 '정의의 여신상'.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문 위의 '정의의 여신상'.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폭력엔 다양한 유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몸폭력·언어폭력·성폭력 등. 이 3가지 폭력에 대해서는 학교마다 많은 예방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성과 이름에 대한 놀림이나 신체적 특성에 대한 놀림 등에 대해 언어폭력을 넘어 '정서폭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권과 맞물려 있는 '정서폭력'에 대하여는 예방교육이 실시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서폭력으로 인해 평생을 괴로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가 또 없으란 법이 없지 않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정서폭력 예방 차원에서라도 인권교육을 강화·보강시켜야 할 것입니다. 인권교육이 선행되지 않고는 저같은 피해자는 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때마다 그들도 저처럼 법정에다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특성이 존중되는 인권교육이 절실합니다. 그래야 저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교육 #따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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