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커뮤니케이션에 벌써 빨간불?

[지역언론 별곡 225] 쇠고기 파문과 대통령 화법①

등록 2008.05.03 14:49수정 2008.05.0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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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을 통해 정보나 의견을 주고받는 행위가 커뮤니케이션이다.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행위다. 여기서 상징은 언어적 요소뿐만 아니라 몸짓과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까지 포함한다.

 

언어를 이용하여 자유롭게 의사를 교환하는 지금의 입장에서 볼 때 손짓과 몸짓, 그리고 표정에 의존했던 원시인들이 얼마나 불편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언어의 발명이 인류가 이룩한 첫 번째 커뮤니케이션 혁명으로 간주되는 이유다.

 

그런 커뮤니케이션은 현대에 이르러 타인의 지도력과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평가수단으로 이용되곤 한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에 내재된 과장과 왜곡, 부정직한 화법은 과거와 달리 요즘은 생명력이 짧다. 인터넷 네트워크가 너무 촘촘해졌고 독자와 시청자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디어 수용자의 정보화 수준이 정치인들의 의식수준을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들불처럼 번지는 축산농가, 네티즌 분노...왜?

 

온-오프라인에서 쇠고기 파문이 거세다. 파문이 거세질수록 대통령의 언행이 네티즌들과 축산 농민들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다.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에 빨간불이 켜진 것일까. 임기 내내 직설화법으로 참모들은 물론 국민을 곤혹스럽게 했던 전임 대통령의 불안한 화법을 연상케 한다.

 

분노를 넘어 탄핵 서명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도 그러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확대되는 양상이 심상치 않다. 네티즌들과 시민단체들은 연휴 동안 촛불행사를 비롯해 각종 집회를 전국 단위로 계획하고 있다. 쉬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2일 밤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이 밝혀졌다. 취임한 지 3개월도 안 된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운운하는 섬뜩한 구호들이 난무했다. 이날 오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주최로 '광우병 수입 반대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온라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 1000만 명 서명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60여개 온-오프라인 단체들이 연대하면서 청계천 외에 인천, 대전·충청, 광주·전라, 부산·경상, 강원·제주·대구 등으로 권역별로 나눠 전국적인 집회를 준비 중이라고 카페에 공지됐다. 이들 행사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에 동참하는 정치권 인사와 시민사회단체 회원, 연예인 등도 자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최측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불매서명운동 등 수입 반대를 위한 다양한 행사를 펼칠 거라 계획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움직임은 '유전자 조작 옥수수 수입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농민단체, 생활협동조합 등의 활동과 이어지면서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서울 일간지 '쇠고기 파문' 현상 두 부류 보도

 

시름에 젖은 지방의 축산 농가들을 대변하려는 듯 지역의 방송과 신문사 기자들의 농촌 취재열기가 뜨겁다. 가뜩이나 지방은 조류독감 확산으로 축산 농가들이 공포에 떨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마당이다. 지역 일간지들의 최근 1면과 사설은 '시름에 젖은 축산농가'와 '보호대책 시급'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런데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부 신문들은 지방의 시름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색깔론으로 덧씌우기 하느라 바쁘다. 대부분 지역신문이 토요일에 발행되지 않은 가운데 3일자 서울 일간지들은 두 부류로 갈렸다. '광우병 소 수입 반대'를 외치는 성난 시민들과 '미국산 쇠고기 괴담은 근거 없다'는 정부 측 입장을 대변하는 쪽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한겨레>는 "1만여명 합창 '광우병 소 수입 반대!'"란 제목의 현장기사에서 청계광장에 1만여 명 이상 모인 시민들이 "이명박 반대", "광우병 소 수입 반대" 등을 외치며 질서 있게 촛불 문화제를 벌인 모습을 크게 부각했다. 사설에서도 이명박 대통령 화법을 지적했다."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광우병 공포'"란 제목의 사설에서 <한겨레>는 대통령 발언이 화를 키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협상은 전 정권의 약속에 따른 것', '문제가 있으면 안 사 먹으면 된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 한 말을 해 논란을 키웠다. 시민들이 이런 이유로 분노를 표출하는데 이 대통령은 정치 논리가 광우병 불안을 키운다고 화살을 돌리고 있다. 정부는 쇠고기 협상의 진상을 밝히고 재협상을 통해 검역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경향, 한겨레 "대통령 화법 적절치 못했다"

 

<경향신문>도 궤를 함께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문제가 있다’는 의제를 1면에 부각시켰다. ‘이명박식 언행·인식이 국민 분노 키웠다‘라는 제목에서 뉘앙스가 묻어난다. 쇠고기 파문 와중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준 대응과 언행은 되레 민심의 분노를 확산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게 기사의 골자다.

 

이 기사는 “국민 건강권과 직결된 사안을 단순히 산업·교역의 관점에서만 판단한 데다, 정책결정 책임에 대한 자각도 부족했다”며 “그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신뢰 위기’로도 평가된다”고 해석했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에 대해 시종 장사·시장의 논리로 접근했다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기사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화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이렇게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소 키우시는 분들 보상을 하면 숫자가 적으니까 또 될 것이고, 도시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고기를 먹는 거는 그렇다’면서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 일반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방일 수행기자단 간담회)이라고 말했다. 축산 농가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축산농가도 한우를 고급화해야 한다. 그러면 장사가 잘된다'(24일 제1야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회동), '10년 안에 4만달러 되면 수입 쇠고기 먹느니 한우 고급을 먹겠다는 사람 많아질 것이다. 한국에서 제일 비싼 소가 3300만원인데 일본에서는 1억원까지 한다'(26일 경기 포천 한우농가 방문)는 식의 ‘장사 논리’를 되풀이했다."

 

이 대통령의 화법은 적절치 못했다는 의도가 짙게 묻어난다. 이는 민심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지적도 눈에 띈다. 대통령 커뮤니케이션 기능에 고장이 난 걸까. <경향>은 이렇게 우려했다. 

 

“사실 이 대통령의 ‘책임회피’성 발언은 그보다 뿌리가 깊다. '한·미 쇠고기 협상은 이미 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측과 합의해 개방을 약속한 사안’(지난달 24일 국정과제 보고회)이라는 언급으로 ‘설거지’ 논쟁을 불러온 것이 대표적이다. 당장 ‘참여정부가 하려던 협상은 검역주권 등을 확실히 지키는 내용이었다’는 통합민주당의 반박은 제쳐두고,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결정에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자신의 판단은 없었다는 것을 자인인 셈이다.”

 

“광우병 괴담 촛불시위” 시각 다른 보수신문 

 

그러나 이날 <동아> <조선> <중앙>의 시각은 달랐다. 지면에서 묻어났다. 가장 흥분한 쪽은 <동아일보>다. 이날 1면에서 정부측 입장을 대변한 것은 그렇다 치자. 상관조정기능을 수행해야 할 사설에서조차 이념적 색깔로 덧씌우기를 하며 정부입장을 두둔했다.

 

‘반미 반이로 몰고 가는 광우병 괴담 촛불시위‘라는 사설 제목만 봐도 누구를 감싸고 누구를 폄훼하려는지 알 수 있다. “어젯밤 ‘이명박 탄핵 투쟁연대’ 주최로 열린 시위에서 1만여 참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으로 비난하면서 ‘탄핵’ 구호를 외쳐댔다”고 시작한 이 사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반미 감정을 증폭시킨 ‘효순 미선 양 촛불시위’처럼 번지는 양상”이라고까지 비유했다.

 

더 가관인 것은 “출범한 지 두 달 남짓한 정권을 타도하자고 외치는 ‘광우병 괴담’의 발신지는 지상파 방송의 일부 프로그램”이라며 “이들 프로그램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내용을 충격적인 영상과 함께 사실인 것처럼 교묘히 포장해 시청자들의 광우병 공포를 자극했다”고 방송사를 비하했다.

 

이 사설은 인터넷까지 공격했다. “인터넷 공간은 여과되지 않은 표현으로 괴담을 확산시켰다”며 일련의 네티즌 주장과 발언들을 ‘황당한 발언의 난무’로 치부해버렸다. 그러더니 사설 말미에선 “국정 쟁점에 대한 무기력하고 굼뜬 대응자세를 보고 있자면 왜 그들이 장관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답답해진다”며 “장차관들이 마른 땅만 밟으려 하다 보면 일부 세력의 불순한 선동에 민심이 흔들리게 된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이대통령 “혁신도시 일률 추진 옳지 않다”’란 기사를 포함한 이날 <동아>의 기사에서는 지방의 절박한 실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던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기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중앙일보>도 이날 1면 ‘정부 “미국산 쇠고기 안전”’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전날 정부가 발표한 담화문 내용을 부각시켰다. 5면 “한국인나 미국인이나 똑같은 쇠고기 먹는다”는 제목은 매우 자극적이다. 타는 농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 ‘미국산 쇠고기의 오해와 진실’이란 분석기사에서 <중앙>은 “도축 때 위험물질 부위 제거하면 광우병 걸린 소라도 안정하다”고 했다.

 

<조선일보>도 이날 네티즌들의 반응과 함께 "젤리·과자·기저귀도 위험하다는 건 낭설"  등의 기사에서 정부가 해명한 내용을 부각시켜 보도했다. 이처럼 이날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쇠고기 파문을 바라보는 시각이 두 부류로 엇갈렸다. 서울지역 발행신문을 구독하는 지방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 ‘엉큼 화법’에 국민심기 불편”

 

그러나 이날 쇠고기 현상을 다룬 신문들 가운데 가장 눈여겨 볼 의제는 <경향>의 대통령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기사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화법은 많은 지적을 받아 왔다. 대선과정에서 ‘5.18사태’, ‘안창호씨’ 발언 등 크고 작은 말 실수를 해온 때문이다. 당선 이후에도 농어민 단체와의 간담회에서 한 ‘쌀국수’ 발언, 대불공단의 ‘전봇대’ 발언 등 거침없는 그의 화법이 결국 쇠고기 파문을 키운 것과 무관치 않다.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 1월 30일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칼럼 ‘전봇대, 쌀국수 그리고 공영방송’에서 이 대통령의 화법을 이렇게 우려했다.

 

“권력자의 거침없는 발언과 이를 감시하기는커녕 눈도장 찍고 줄서기 급급한 언론과 관료. 그래서 더 기고만장해지는 권력자의 말씀. 그것은 아무리 근거가 있더라도 마치 배고플 때 먹는 사탕과 같다. 기분은 좀 풀릴지 모르지만 허기는 결코 채워지지 않을 테니까.”

 

<고뉴스> 김성덕 기자는 지난 26일 ‘이명박 대통령의 ‘엉큼 화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 대통령이 사태의 본질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거나 때로 이를 숨기는 이른바 ‘엉큼 화법’을 자주 구사해 국민들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 출범과 함께 ‘강부자’ ‘고소영’ 등 내각 인사파동으로 이 대통령에 대한 대국민 사과 요구가 빗발쳤을 때도 이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관회의를 빌려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는 식의 ‘엉큼 화법’으로 사과를 비켜간 바 있다”고 꼬집었다.

 

"신중함, 책임감, 신뢰감을 가치로 화술 구사해야"

 

이 기사는 또 “미·일 순방 후 처음으로 가진 국무회의에서도 이 대통령은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한미 쇠고기 협상결과를 꺼내며 ‘미국 사람들도 불만이 많더라. 한국과 같이 ‘터프’한 나라 처음 봤다고 한다.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말하더라‘라고 언급했다”며 이 대통령의 특이한 화법을 묘사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거 뭐라더라, 검역? (주위의 참모를 찾으며) 검역의 주권? 그래 검역주권, 그래 이번 협상에서 검역주권 찾았어요?’라고 웃으면서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던졌다”고 한 김 기자는 이를 '엉큼 화법' 사례로 정의했다.

 

대통령 화법은 매우 민감하다. 국민에게 더욱 그러하다. 고장나면 잘 고쳐지지 않는 게 바로 대통령 화법이다. 그 전례를 우리는 똑똑히 경험했다. 

 

김창룡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가 지난해 10월 16일 <경남도민일보>에 기고한 ‘대통령의 화법’ 중 다음 대목은 깊이 새겨 볼 만하다.

 

사람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어야 하지만 화법에는 직책에 따라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신중함과 책임감, 신뢰감을 첫 번째 가치로 둔 화술을 구사해야 한다. 화려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말투, 최소한의 품격도 거부하는 길거리 판의 정제되지 않은 표현 등은 지도자 화법의 적이다. 더는 국민과 국가를 세 치 혀로 흔드는 지도자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2008.05.03 14:49ⓒ 2008 OhmyNews
#대통령 화법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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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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