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사진' 없네, 어떻게 찍어도 '그림'이 되는 얼굴들

[정처 없이 떠난 1박2일 남도여행②] 장성 축령산, 담양 소쇄원, 보성 차밭

등록 2008.05.15 19:33수정 2008.05.1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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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녹차밭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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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주희 누나 옆에서 서로 자겠다고 '남성성'을 드러낸 지섭이와 제규...^^ ⓒ 배지영




소쇄원에서 나와 녹차 밭을 가는 길에 해가 졌다.

언젠가 5월, 이희복 선생님은 보성 제암산에서 사자산·일림산까지 철쭉꽃을 보며 산행을 했다. 지금이 딱 그 때 쯤이라고 여긴 선생님은 최대한 산이 가까운 마을로 들어섰다. 묵을 곳은 쉽게 찾았다. 우리는 민박집 거실에다 차려주는 밥을 먹고, 모두 한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잠들 때까지 뒤척이면서 나는 조금 뒤숭숭했다. 우리 아이에게서 '남성성'을 보았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예쁜 편은 아니잖아"라는 평가를 할 줄 아는 아이는, 한 살 아래인 지섭이와 서로 주희 누나 옆에서 자겠다고 싸웠다. 예쁜 누나만 보면 눈에서 하트를 날리는 만화 주인공 짱구처럼 본격적으로 '들이대는' 때가 온 건가. 

예쁜 누나 앞에서 드러난 아들의 '남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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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림산, 철쭉은 만개한 지 나흘쯤 지나보였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 배지영




새벽에 일어나서 일림산에 올랐다. 능선 위는 철쭉 천지였다. 절정에서 나흘쯤 지났을까. 그래도 아름다웠다. 아이를 자게 내버려 두고 온 게 후회될 만큼.

앞으로 3~4년만 지나도 아이와 나는 서로를 '안드로메다'처럼 멀게 느끼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바락바락 싸울 수도 있다. 그 때가 오기 전에 더 자주, 함께 산을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희복 선생님네 부부는 주희·진우가 5살 때부터 산에 데리고 다녔다. 사춘기를 맞기 전에 지리산 종주도 같이 했다. 이 아이들의 바탕에는 그 때 힘이 깔려 있어서 20살 넘어서도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는 거다. 바람을 피해 쭈그려 앉아 사과를 먹고, 내려가면서도 '내려갈 길이 멀다'고, 듣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투정을 부릴 수 있는 거다.

나는 지난해부터 주희와 함께 여행하는 사이가 됐다. 진우는 그 때 고3이어서 혼자 남았다. 주희는 주말마다 부모님을 빼앗아간 사람 중 한 명이 나인데도, 뒤통수가 따갑게 나를 째려본다거나 '이제야 원수를 만났군'하는 한풀이를 하지 않았다. 나보고 선뜻 "이모!"라고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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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흘끔거리며 구경해도, 평상에 앉아 밥 먹는 것은 재밌고 맛있었다. ⓒ 배지영



민박집 아저씨는 녹차밭 근처에는 맛있는 밥집이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짐을 꾸려 나왔다. 여행은 음식에 대한 편견이 없을수록 즐거워진다. 우리는 밥 먹기 전에 녹차아이스크림 하나씩 '때린' 다음에 녹차 밭 평상에 앉았다. 녹차라면·녹차수제비·녹차비빔밥을 시켜서 서로 나눠 먹었다.

5월의 녹차밭은 고왔다. 주희와 진우가 그 앞에 서니까 그대로 그림이 되었다. 그 아이들이 자세를 바꾸는 틈을 타서 셔터를 눌러도 '굴욕사진'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이희복 선생님 부부, 길림과 아들 지섭도 내 카메라 앞에 섰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느낀 감동은 시간이 지나면 무디어지지만 그 풍경 속에 사람이 어우러지면 좀 더 오래 가겠지.  

어떻게 찍어도 '굴욕사진'은 안 나오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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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녹차밭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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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와 진우 남매, 이 애들이 풍경 앞에 서기만 해도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 배지영



녹차밭 꼭대기에서 보는 세상은 평온했다. 저마다 좋은 얼굴이었다. 우리 아이가 주희나 진우처럼 자라면 좋겠고, 나는 선생님네 부부처럼 나이들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다.

그러나 한 발만 세상으로 내딛어 보면, 내 소박한 꿈은 깨어지기 쉽다. 경제번영만이 전부인가. 정부는 물질적 충족만 보라고 시키면서, 미국 쇠고기에 저항하는 국민들을 '쌩까고' 있다.

녹차밭을 다 내려와서야 중턱에 내 모자를 두고 온 걸 알았다. 귀찮아서 내버려두고 싶었다. 하지만 손때 묻은 내 물건이 굴러다니면서 사람들 발에 밟힐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길림에게 카메라 가방을 맡기고 올라가려는데 어느새 이희복 선생님이 뛰어갔다가 보물찾기를 한 아이처럼 환한 표정으로 내려오셨다.

이희복·이화재 부부는 아이 둘을 '내박쳐서' 키웠다. 진우는 유치원도 짧게 다녀서 학교 들어갈 때 아는 글자가 10자를 넘지 못했다. 옛날 아이들처럼 학교만 다니고, 펑펑 놀았다. 선생님 부부는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냇가로 다녔다. 주희와 진우가 청소년이 되자 부부만 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집에 남았다.

아이들을 '내박쳐서' 키운 이 선생님네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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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복 이화재 부부와 주희 진우 ⓒ 배지영


선생님 부부는 '고3 학부모' 티를 낼 시간이 없었다. 주말마다 산행과 마라톤·여행 일정이 빡빡했다. 주희와 진우가 오히려 금요일 밤이면 "이번 주는 어디로 가세요?" 물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주말이 지나도 안 오면, '이번에는 외국으로 가셨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밥을 챙겨 먹었다. 아침에 못 일어나서 가끔은 학교에 완전 지각도 했다.

이희복 선생님은 진우 고3 여름방학 때까지 농구대회 일정을 조사하고, 신청하고, 유니폼을 빌려와서 경기장까지 데려다 주는 취미생활을 좋아했다. 진우가 전교 1등 하면서 좋아하는 농구를 안 하는 것보다는, 전교 5등을 하면서 농구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우는 고3 1학기 때 농구도 하면서 전교 1등까지 해 버렸다.

그래도 이화재는 엄마다. 주희와 진우가 각각 고3일 때는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였다. 그래서 주말 새벽에 집을 나설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찰밥을 해 놓았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못 볼 것을 보았다. 이화재 언니는 밥만은 해놓았다는 자신감으로 목을 치켜든 거다. 내 속에서는 심술보가 튀어나왔다.

"언니, 1년 48주 중에 몇 번이나 진우 찰밥 해준 거야?"
"음… 그래도 좀 했지. 예닐곱 번?"

이희복 선생님 부부는 주희와 진우에게 무슨 일이든 선택권을 주고, 온 힘을 다해 믿어주었다. 자유롭게 키웠다. 대신, 당신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공덕을 쌓으셨다. 그 덕분에 나는 사는 세계가 전혀 다른 길림과 친구가 되었고, 우리 아이와 길림의 큰아들 지섭이는 같이 놀며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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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녹차밭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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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느낀 감동도 좋지만... 풍경 속에 사람이 있으면 기억은 오래 간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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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녹차밭 ⓒ 배지영


#전남 보성 #일림산 #보성 녹차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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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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