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에 휩싸인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섬, 소매물도

짙은 해무와 어우러진 소매물도에서의 하루

등록 2008.07.23 08:49수정 2008.07.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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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등대섬에서 바라본 소매물도의 전경(지난 2005년 여행 사진 중) 소매물도는 투명한 바다와 맑은 하늘이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등대섬에서 바라본 소매물도의 전경(지난 2005년 여행 사진 중) 소매물도는 투명한 바다와 맑은 하늘이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었습니다. ⓒ 문일식


통영을 지나 거제도의 저구항에 도착했습니다. 소매물도 들어갈 때 매번 통영항을 이용하다가 이번에는 거제도에서 출발할 요량이었습니다. 거제도에서 소매물도는 거리상으로도 가깝고, 배삯도 통영에 비해 저렴합니다. 거제도에서 들어가는 소매물도 또한 또 하나의 새로움입니다. 올해는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또다시 찾아가는 소매물도 또다시 벅찬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 오고, 흥분이 온 몸을 감쌉니다.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 그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등대섬은 이미 가슴 속에 그렇게 못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소매물도 여행은 그런 감동적인 풍경은 맛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육지 뿐 아니라 바다 역시 흐리고, 안개가 자욱 합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짙은 해무로 배가 뜰지 안 뜰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소매물도로 들어가는 마지막 배가 오후에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배가 있었지만 기상이 많이 좋지않아 마지막으로 뜨는 배였던 모양입니다. 어차피 소매물도에서 하루를 묵을 예정이었으니 마지막 배였어도 그리 개의치 않았습니다.


10여명의 승객을 실은 배는 짙은 해무를 뚫고  소매물도를 향합니다. 30분 만에 도착한 소매물도 선착장, 평일인데도 상당히 분주해 보입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데다 여객선의 출항 유무가 불분명한 탓에 나가려는 사람도 꽤 많아 보입니다. 3년 만에 찾은 소매물도는 선착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많이 달라져 있음이 느껴집니다.

소매물도 망태봉 정상을 향하는 산 위로 올망졸망 들어선 오래된 옛 집도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고, 목조 펜션단지가 섬 중앙에 떡 하니 들어서 있습니다. 선착장 주변 바닷가도 생각보다 많이 지저분해져 있습니다. 예전같지 않음이 벌써 한 눈에 들어옵니다. 3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뒤라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망태봉으로 향합니다. 베낭 한가득 들어찬 짐과 카메라 가방, 그리고, 삼각대까지 152m의 망태봉 오르는 길은 다른 어떤 때보다 힘이 들었고, 몽글몽글 솟아난 땀이 얼굴과 목을 적십니다. 첫 소매물도 왔을 때 머물렀던 할머니 댁도 지나고, 예전 이장님 댁도 지납니다. 몇 번의 소매물도 추억들이 힘겨운 산길을 따라 피어오릅니다. 폐교된 소매물도 분교를 지나 망태봉 아래에서 잠시 쉬어 갑니다. 등대섬을 갔다가 올라오는 사람들의 헐떡이는 모습이 계속 스치고 지나갑니다.

a 소매물도 망태봉 아래 등대섬으로 가는 길 안개에 휩싸인 등대섬을 보고 발길을 되돌리는 중입니다.

소매물도 망태봉 아래 등대섬으로 가는 길 안개에 휩싸인 등대섬을 보고 발길을 되돌리는 중입니다. ⓒ 문일식


망태봉 아랫길을 따라 등대섬을 향해 내려갑니다. 미끄러운 절벽길을 따라 내려갔던 예전과는 달리 깔끔하게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물때가 맞지 않으면 소매물도 주민들의 배를 빌려타고 등대섬을 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불법유선행위가 되어 철저히 차단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소매물도는 하루를 머물지 않는 이상 물 때를 맞춰야 하는 번거로움도 생겼습니다.

등대섬으로 가는 물길은 닫혀 있습니다. 바다 위의 등대섬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짙게 이어진 해무가 등대섬을 삼켜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하루 머무를 예정이었기에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등대섬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울뚝불뚝 솟아 있는 암봉위에 올라 앉아 통영에서 공수해온 오미사 꿀빵을 한 입 베어 뭅니다. 달짝지근하지만 쉽게 질리지 않는 맛입니다.


a 소매물도 공룡바위 능선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소매물도, 텐트 뒤는 낭떨어지와 해변 그래도 제법 운치가 있습니다.

소매물도 공룡바위 능선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소매물도, 텐트 뒤는 낭떨어지와 해변 그래도 제법 운치가 있습니다. ⓒ 문일식


등대섬을 포기하고 공룡바위 아래쪽으로 내려가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날 오후의 시간은 근래 느껴보지 못했던 넉넉한 여유이자 참 자연 속에 묻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텐트 안에서 뒹굴뒹굴도 해보고, 팔베개하고 언뜻언뜻 잠도 들어봅니다.

날씨가 좋지 않기에 인적마저도 완전히 끊겼습니다. 공룡바위 아래쪽으로 흐르는 물로 시원하게 간단한 목욕도 즐겨 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소매물도 뒷편인데다 해무까지 짙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터인데, 누군가가 쳐다볼 것만같은 불안함. 아직 참자연을 즐기기에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더 어둑어둑 해지기 전에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1회용 국거리와 스팸이 전부였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공룡바위 꼭대기에서 선배님이 어서 올라와 보라고 난리십니다. 부리나케 올라간 공룡바위의 꼭대기 고래등. 짙은 해무가 바람에 쫓겨 여기저기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이 언뜻 언뜻 보이기 시작하고, 등대섬이 나타날 거라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습니다. 기대감의 끝도 없습니다. 해무가 제 걷히면 멋진 일몰도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도 앞섭니다.

a 텐트 뒷편으로 펼쳐진 소매물도의 해변... 보일락 말락하다 한 줌의 빛줄기가 바다에 내리쬐자 새로운 비경을 선사합니다.

텐트 뒷편으로 펼쳐진 소매물도의 해변... 보일락 말락하다 한 줌의 빛줄기가 바다에 내리쬐자 새로운 비경을 선사합니다. ⓒ 문일식


등대섬이 언뜻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것 뿐이었습니다. 군데군데 파랗게 보이던 하늘도 또다시 밀려온 해무가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연의 위대함은 시간을 두고 고래등에 올라앉은 우리 일행에게 맘껏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짙은 해무가 한순간에 걷히는 모습 그리고 순간 보이던 등대섬의 모습과 파란하늘도 잠시 또다시 무섭게 덮어버려 회색빛 풍경을 선사하던 묵지한 해무. 자연은 스스로의 위대함을 한낱 인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마치 경외심을 느껴보라는 듯이.

소매물도에서 밤이 찾아 왔습니다. 능선 위에 설치한 텐트는 바람에 날아갈 듯 나부끼고, 텐트 뒷편으로는 바닷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소리가 연신 해변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바닥의 눅눅함과 함께 긴 새벽이 이어졌고, 자연 속에서의 하루는 불편함을 느낀 만큼이나 새로운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a  해무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고, 이윽고 등대섬과 등대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춥니다.

해무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고, 이윽고 등대섬과 등대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춥니다. ⓒ 문일식


날카로운 핸드폰 음악이 울립니다. "누구냐? 이 대자연 속에서 잠든 나를 깨우는게" 수화가 너머로 망태봉 아래에서 전화를 한 선배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서 올라와 보라고.부리나케 카메라를 들고 망태봉으로 올랐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등대섬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시 텐트로 돌아와 소매물도에서의 아침을 준비합니다.

a 해무가 흘러갈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등대섬과 등대 해무에 휩싸인 등대섬과 등대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해무가 흘러갈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등대섬과 등대 해무에 휩싸인 등대섬과 등대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 문일식


다시 공룡바위 저 위에서 선배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제 저녁 그렇게 보여주지 않았던 등대섬이 해무 사이로 언뜻 보이는 기가 막힌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바라본 뷰파인더 속의 등대섬은 맑고 깨끗한 소매물도의 풍경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었습니다. '아름답다. 신비롭다' 입으로 쏟아지는 감탄의 연발. 짧다면 짧은 순간 또다시 등대섬은 조용히 해무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자연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기다리고 인내해야 얻을 수 있다."

동행한 선배님은 그 어두운 새벽에 나가 등대섬의 야경 담고, 또 고래등에 올라 자연이 부리는 심술을 온전히 다 받아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진 몇 장을 얻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자연 앞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를 손수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a 길가에서 만난 자연의 행위예술... 거미가 만든 그들의 쉼터... 거미들이 만드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소매물도 곳곳에 있습니다.

길가에서 만난 자연의 행위예술... 거미가 만든 그들의 쉼터... 거미들이 만드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소매물도 곳곳에 있습니다. ⓒ 문일식


소매물도의 아침은 신선하고 차분합니다. 해무가 어루만진 소매물도 섬의 만물은 싱그러운 물기를 머금고, 사람들보다 부지런함을 보이느라 분주합니다. 여기저기 걸어놓은 거미줄 속에 거미들의 움직임도 보이고, 한밤 잦아들었던 바다직박구리의 시끄러운 수다도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a 망태봉 주변에서 바라본 대매물도 여간해서 걷히지 않는 해무 속에 대매물도의 모습도 보입니다.

망태봉 주변에서 바라본 대매물도 여간해서 걷히지 않는 해무 속에 대매물도의 모습도 보입니다. ⓒ 문일식


아침식사를 마치고, 소매물도를 떠날 준비를 합니다. 머물렀던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망태봉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하루를 머물렀는데도 줄지않은 베낭의 무게는 계단을 오르는 내내 버거움이 느껴집니다. 날씨는 서서히 맑아지려는지 간간히 햇볕도 들고, 맑은 기운 속에 해무가 걷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밤새 등대섬을 괴롭히던 해무는 이제 대매물도를 휘감고 있습니다.

a 망태봉을 지나 등대섬으로 향하는 여행객들 소매물도의 아름다움을 보기위해 찾은 여행객들이 등대섬으로 향하며 비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망태봉을 지나 등대섬으로 향하는 여행객들 소매물도의 아름다움을 보기위해 찾은 여행객들이 등대섬으로 향하며 비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 문일식


이른 아침 통영에서 들어온 여행객들이 소매물도의 감동을 맛보기 위해 찾은 모양입니다. 망태산 주변에는 여행객들이 꽤 많이 보였습니다. 안개 가득한 등대섬을 바라보며 실낱같은 희망으로 등대섬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고, 조금 더 걷히기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매물도를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럽고 실망스런 풍경이 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a 다솔산장에 사는 사모예드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조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다솔산장에 사는 사모예드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조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 문일식


결국 아무리 기다려도 해무가 걷힐 기미가 안보이고, 망태산 정상을 거쳐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여전히 분주한 선착장 주변. 회덮밥으로 이른 점심을 대신했습니다. 간단히 밥을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회도 즐길 수 있는 다솔산장은 소매물도의 선착장 풍경이 한눈에 바라다 보입니다. 다솔산장에는 여전히 유명한 사모예드가 살고 있습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해 재롱이 한창 깃든 어린 녀석들도 세 마리나 있습니다. 두리뭉실 묵직한 녀석들과 재밋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거제도 저구항에서 달려온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또다시 작별해야하는 소매물도. 푸르름이 가득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소매물도의 세상을 만끽했습니다. 멀어져가는 선착장을 바라보면 산 중턱에 걸린 마을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려는 펜션단지가 눈에 떡 하니 들어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소매물도도 많이 변했고, 이제 또 언제 다시 찾을 지는 모르겠지만, 또 그만큼 변해있을 겁니다. 예전 그대로이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바실리카 열린공론장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바실리카 열린공론장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소매물도 #망태봉 #공룡바위 #고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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