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홍색 능소화의 울음으로 9월은 시작되고...

화려한 주검 옆에 또 다른 소국들의 화려한 반란

등록 2008.09.01 15:52수정 2008.09.0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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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말라고 밀쳐도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세월은 참으로 잘도 가고 잘도 온다.


새벽잠을 깨우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능소화가 선홍색 울음을 토하면서 마당에 떨어져 있다.

a 선홍색 울음을 토하며... 능소화는 꽃잎 그대로 떨어진다. 양반집에만 심었다는 그 자존심때문일까 마지막 죽음마져도 도도하다

선홍색 울음을 토하며... 능소화는 꽃잎 그대로 떨어진다. 양반집에만 심었다는 그 자존심때문일까 마지막 죽음마져도 도도하다 ⓒ 서정삼



빗물에 젖은 몸이 더욱더 고혹적이다.
옛날 양반집에만 심어져 있었다던 능소화.
떨어지면서도 고고한 자존심만큼은 간직하려나 보다.
죽음마저도 도도하다.

능소화의 꽃말은 "매력"이다.
"매력적인 당신은 삶의 기쁨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기쁨을 연인에게도 나누어주십시오"
꽃점을 입 모아 말하는 듯 그들은 한껏 목젖을 드러낸다.

a 그대 무엇을 말하려는가... 뜨거운 8월을 넘긴 마지막 능소화의 외침, 매력적인 당신은 삶의 기븜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능소화의 꽃점...

그대 무엇을 말하려는가... 뜨거운 8월을 넘긴 마지막 능소화의 외침, 매력적인 당신은 삶의 기븜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능소화의 꽃점... ⓒ 서정삼


능소화의 화려한(?) 주검 옆에는 소국이 한껏 피었다.
작년 화분에 담겨 있던 놈을 마당에 심었었는데
매년 잊지 않고 꽃을 피운다.
가끔은 저놈들이 나보다 생명력이 더 났다는 생각이다.
죽음과 또 다른 생명의 오만함… 나의 존재를 그들로부터 깨닫게 된다.


a 소국들의 반란... 화려한 능소화의 주검옆엔 아랑곳 않은 소국들의 또다른 화려함. 우리네 인생과 다를바 없다. 화려한 그늘밑의 어두움처럼...

소국들의 반란... 화려한 능소화의 주검옆엔 아랑곳 않은 소국들의 또다른 화려함. 우리네 인생과 다를바 없다. 화려한 그늘밑의 어두움처럼... ⓒ 서정삼


이 비 그치면 지겨웠던 여름은 언제였던가,
떨어진 능소화처럼 8월은 구석방으로 밀쳐지고
또 다른 방한칸에 가을이라는 그놈은 예전과 똑같이
내 허락도 없이 들어오리라.

촉촉한 키스 향 같은 안개비를 몰고 9월은 이렇게 시작된다.
#얼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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