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본 '신기전'

등록 2008.09.21 10:04수정 2008.09.2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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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때 아내와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 아내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약속을 하나 했다. 이제 영화는 아이들과 함께 보기로. 그 약속이 오늘(20일) 이루어졌다. 결혼 11년 만에 처음이다. 아이들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처음 보는 일이라 그런지 상영시간이 3시 10분인데도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졸랐다.

 

"아빠 영화관이 어디 있어요? 빨리 가요."

"MBC 방송국 건물 안에 있잖아? 벌써 가자고, 정말 빨리 간다. 영화 상영시간은 3시 10분인데 지금 가면 2시간 30분이나 기다린다. 나중에 가자."

"아빠 방송국 안에 있는 영화관에는 식당도 있잖아요. 우리 거기서 밥 먹어요."

"영화보고, 밥 먹으면 돈이 많이 든다."

"아빠 만날 영화보는 것도 아니고, 오래 만에 바깥에서 밥 먹는 것도 재미 있잖아요."

 

2 시간 30분 동안 밥 먹고, 서점에서 책 보면서 기다리고 기다려 본 영화는 <신기전>이다.

<신기전>은 조선 세종 시대 서양보다 300년이나 앞서 ‘최초의 로켓 화포’였던 '신기전'을 영화로 만들었다.

 

신기전은 명나라 조차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엄청난 발명품이자 업적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질곡 속에 사라져버린 '신기전'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영화를 만들었다고 <신기전> 제작진은 '제작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영화 <신기전>은 우리 역사의 위대했던 순간을 스크린을 통해 부활시킴으로써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통쾌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560년 전 대륙의 위협 속에서 자존심을 꺾어야 했던 소국 ‘조선’의 설움은 2008년에도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반영하고 있어 영화 <신기전>이 전하려 하는 우리 민족의 집념과 업적은 더욱 뜨거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신기전> 제작진 표현 처럼 세종이 신무기를 만들어 절대강국을 꿈꾸었고, 신기전 부활을 통하여 주변 강대국 영향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2008년 대한민국에게 자부심을 주고자 하는 목적은 보는 사람에 달리 평가할 수 있다.

 

영화 내용 평가보다는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여준 연기력은 놀라웠다. 세종 역으로 나온 안성기씨는 전체 영화시간에 비하면 노출 빈도가 짧았지만 국민배우에 걸맞는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홍리(한은정)와 설주(정재영)에게 세종이 벼슬을 준다고 하지만 평범한 삶을 찾아 떠나는 그들에게 "짐은 왕이요, 그대들은 황제니라"는 대사에서는 성군 세종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감히 왕이 백성에게 절을 할 수 없다는 신하들 말을 뒤로하고 절하는 안성기씨는 성군이 갖추어야 할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왕은 저런 모습을 보여주어야 해요."

"무슨 모습?"

"백성에게 절하는 왕이 진짜 왕이예요. 우리나라 누구처럼 시민에게 군림하지 말고, 백성이 진정으로 섬기는 모습 말이예요."

 

장사치에 불과했던 설주(정재영)가 홍리를 알아가고, 창강을 통하여 왜 신기전을 발명해야 하는지를 알고 부터 그가 신기전을 만들기 위하여 온힘을 다하고, '총통등록'을 찾기 위하여 태평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재영씨를 다시 보았다.

 

신기전 제작을 그만 두라는 어명을 거부하면서 "이제 나에게 어명을 내릴 수 있는 왕은 죽었소"라는 말 한마디는 <신기전>을 만든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어명을 거역하면서까지 신기전을 만들겠다는 설주는 정재영이라는 배우를 새롭게 만나게 하였다.

 

창강(허준호)는 홍리를 잡아 명나라 사신들에게 넘기고 나서  세종 앞에 무릎을 꿇고 흘린 눈물 한 방울, 조선을 배신하고 명에 빌붙은 신하를 치면서 "그 잘못된 신념으로 천년만년 저들의 속국으로 살 것을 모른단 말이냐"를 통하여 위대한 조선의 부활을 보여주고자 했던 제작진 요구를 빈틈없이 표현해주었다.

 

"영화 재미있었어?"

"예 재미 있었어요."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로켓 발사하는 장면요. 정말 대단했어요. 화살이 하늘을 뒤덮는 장면도 재미있어요. 세종 대왕 시절에도 저런 무기를 만들었다니 놀라웠어요?"

"아빠 영화를 보는데 소리가 뒤에서도 들렸어요. 우리 집 텔레비전은 뒤에서만 들리잖아요."
"뒤에서도 소리가 들리니 더 재미있잖아.
우리 막둥이는 재미 있었어? 막둥이는 영화 보는 시간에 언제 끝나지는 계속 물었잖아?"

"아니예요 재미 있었어요."

"앞으로 영화 자주 볼까?"

"예 자주 보면 좋겠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와 함께 영화를 본 아이들은 정말 좋아했다. <신기전> 내용으로  아이들과 토론을 할 수 없었지만 영화를 본 자체를 좋아했고, 음성이 뒤에서도 들리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1년에 몇 번을 보기로 마음 먹었다.

 

영화 보는데 밥값, 주전부리에 들어간 돈이 6만원이 되었지만 아이들과 처음으로 본 <신기전>은 분명 좋은 추억거리로 마음에 남을 것이다.

 

2008.09.21 10:04ⓒ 2008 OhmyNews
#영화 #신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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