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지성' 리영희 선생님과 함께 한 독서토론

'유토피아적 상상력'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

등록 2008.10.21 16:11수정 2008.10.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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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토론에 모인 사람들 리영희 선생님과 토론을 위해 모인 사람들.

토론에 모인 사람들 리영희 선생님과 토론을 위해 모인 사람들. ⓒ 이명옥

▲ 토론에 모인 사람들 리영희 선생님과 토론을 위해 모인 사람들. ⓒ 이명옥

 

18일 오후 4시 대학로 민들레영토에서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고 리영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 마련됐다. 참석자 18명 중 한 명인 내 가슴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콩닥콩닥 뛰었다. 선생님께서는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신데 흔쾌히 모임에 응해 주셨고 정확한 시간에 사모님과 나란히 나타나셨다.

 

모임 장소가 4층인데다 계단을 이용해야 해 참석자 중 남자분이 선생님을 업어 모시면 어떻겠는가고 조심스럽게 여쭙자 선생님은 "나보고 많이 걸으라고 했어요. 계단을 걷는 것은 운동을 하는 거예요"라며 정중히 거절하시고 한 손은 지팡이 한 손은 난간을 의지하여 4층까지 홀로 오르셨다. 선생님의 강인한 성품과 의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마녀? 조세핀?' 이거이 다 뭐이가?

 

a 리영희 선생님 '마녀'가 무슨 뜻이냐고 묻고 계시는 리영희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 '마녀'가 무슨 뜻이냐고 묻고 계시는 리영희 선생님 ⓒ 이명옥

▲ 리영희 선생님 '마녀'가 무슨 뜻이냐고 묻고 계시는 리영희 선생님 ⓒ 이명옥

대학로 민들레영토에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예약된 방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은 정치인·종교개혁가·방송인·기자·공동체 마을 대표·소설가·여성학자·한의사·늘 깨어 살고자 하는 주부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리영희 선생님과 같은 시대에 호흡하며 사는 인연으로 모인 사람들은 모두 초등학생처럼 초롱초롱 눈망울을 굴리며 선생님의 입만 바라보았다.

 

먼저 가볍게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선생님은 호칭을 조세핀·불줌·하리 걸·아까시·나뭇잎·마녀·진녀·꾸요·빠리 걸 등으로 쓰는 것에 대해 무척 놀라워하시며 별칭을 만들어 쓰는 것을 처음 알게 되셨다고 하셨다. 궁금한 아이디 옆에 순번까지 매겨 오셨는데 1순위가 '마녀'였다. '마녀'는 '마산여자'를 줄인 말이고 '광녀'는 광주여자라고 궁금증을 풀어드리자 고개를 끄덕이시며 '조세핀'은 나폴레옹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 '아까시'라는 아이디를 보고 일본에서 귀화한 여성인 줄 알았다고 말씀하시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어주셨다. 

 

'유토피아적 상상력'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

 

a 리영희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가득한 사람들.

리영희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가득한 사람들. ⓒ 이명옥

▲ 리영희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가득한 사람들. ⓒ 이명옥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자 리영희 선생님은 각자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뒤 <유토피아>가 '마야 문명에 실재한 공동체 모형일 수 있다'는 오래된 영문판 기사를 수첩에서 꺼내셨다. 선생님이 '빠리 걸'에게 팩스로 보내주셨다던 'Utopia Fact or Fiction by Lorainne Stobbart'(<가디언 위클리> 1992. 6. 21)였다. 로레인은 남편을 따라 멕시코에 살았는데, 멕시코에 있었던 마야문명 사회가 바로 유토피아와 같은 문명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빠리 걸이 오래된 자료인데 어떻게 가지고 계시느냐고 여쭙자 선생님은  궁금하거나 필요한 자료가 있을 때마다 기사를 오려 스크랩하고 계시다고 답하신다. 팩트를 중시하는 기자정신을 보여주시는 면이다.

 

<유토피아>를 읽으며 왜 리영희 선생님이 굳이 그 책을 권하였을까 궁금했는데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자본주의에 매몰되어  경쟁으로 치닫는 현대는 멈춤이나 공생, 옆을 돌아보는 여유가 없다. 이런 때일수록  시대를  지혜롭게 넘어설  ‘유토피아적  상상력’과 ‘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삶을 길게 보고 스스로를 성숙시키면서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라!"

 

선생님의 말씀은 간결했지만 참석한 모두에게  현실을 돌아보며 곱씹을 거리를 안겨주었다.

 

토마스 모어가 살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영국은 참으로 잔혹한 상황이었다. 소수의 왕족과  성직자의 기득권유지를 위해 민중들은 고달픈 노역을 피할 수 없었으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대법관까지 지냈던 토마스 모어는 그러한 현실에 마음아파하며  부조리한 현실을 개혁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마야에 실재했다는 이상향을 그려 보이며  영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메스를 대고 싶었을 것이다.

 

"국가로부터 최대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것만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기본적으로 부정의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그런 착취에 법의 이름을 들이대면서 더욱 정의를 왜곡하고 타락시킵니다. 즉 그들은 부정의를 '합법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는 여러 공화국들에서 내가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이익만을 더욱 불려나가는 부자들의 음모뿐입니다.

 

그들은 사악하게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를 가능한 헐값에 사들일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 것을 두고 부자들이 공화국의 이름으로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인 양 주장하면 곧 법이 됩니다. 도대체 공화국에 빈민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까?" - 책 내용 중에서

 

요즘 직불제로 시끄러운 현실, 증시 공황으로 절망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쩌면 저 시대와 똑같을까 생각한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던가?  선생님이 <유토피아>를 읽어 보라고 하셨는지를 나름대로 상상해 본다. 아마 선생님도 1%를 위해 봉사하는 99%의 민중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욕망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지금이라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적극적으로 되돌리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니었을까.

 

모임 뒷담화

 

'시대의 지성'이며 어른이신 리영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어린아이들처럼 들떴던 행복한 토론이 끝났다. 조세핀은 "참 뜻있는 토론이었다. 리영희 선생님을  만나 뵙게 돼서  가슴 벅찼고 생활에 젖어 나태해진 정신에 소나기 한번  좍 뿌려진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방송인 '마녀'는 마산 아구할매답게 공동체 입성 실패담을 재미있게 들려주며 <유토피아>는 일부일처제여서 그런 공동체는 안 되겠다고 너스레를 떨어 리영희 선생님이 즐겁게 해 드렸다고 한다.

 

모임을 주도한 '빠리 걸'은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드러내며 어느 날 홀연히 산속에 들어가 씨스터 호프를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며 세상은 참 살아볼만한 재미있는 곳이라며 즐거워했다. 선생님이 건강을 소중하게 지키셔서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자리를 또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이 욕심이 아니기를.

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18일 리영희 선생님  윤영자 사모님, 조세핀, 유시춘, 불줌, 쉬리, 아까시, 나뭇잎, 마녀, 진녀, 꾸요, 부쟁선, 이드, 박운양, 이유진, 권복기, 함원신, 빠리 걸  외에 오한숙희, 어하현숙, 삼보일배(정석윤)가 참석하여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에 대해 담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08.10.21 16:11ⓒ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지난 10월 18일 리영희 선생님  윤영자 사모님, 조세핀, 유시춘, 불줌, 쉬리, 아까시, 나뭇잎, 마녀, 진녀, 꾸요, 부쟁선, 이드, 박운양, 이유진, 권복기, 함원신, 빠리 걸  외에 오한숙희, 어하현숙, 삼보일배(정석윤)가 참석하여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에 대해 담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문학과 유토피아적 상상력

장남수 지음,
울산대학교출판부(UUP), 2009


#리영희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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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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