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알았으면 안 갔어!"

장군봉 등산, 모르고 가는 힘겨운 길에도 행복은 있다

등록 2008.11.12 09:25수정 2008.11.1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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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군봉 병사골 쪽에서 오를 때는 몰랐는데 너머 쪽 봉우리에 올라서 보니 완전히 바위 덩어리였습니다. 장군봉의 다른 얼굴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그 봉우리를 내려갔습니다.

장군봉 병사골 쪽에서 오를 때는 몰랐는데 너머 쪽 봉우리에 올라서 보니 완전히 바위 덩어리였습니다. 장군봉의 다른 얼굴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그 봉우리를 내려갔습니다. ⓒ 김학현

▲ 장군봉 병사골 쪽에서 오를 때는 몰랐는데 너머 쪽 봉우리에 올라서 보니 완전히 바위 덩어리였습니다. 장군봉의 다른 얼굴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그 봉우리를 내려갔습니다. ⓒ 김학현

이제 가을은 차곡차곡 낙엽으로 쌓인 뒤안길만 훵하니 남겨놓고 분주히 겨울여행을 떠납니다. 싸하게 부는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걸 볼 때 가을이 이미 가고 있다고 안 할 수가 없군요. "오늘 춥지 않을까?" 아내가 자신이 그리 잘 타는 추위 때문에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이미 전화벨이 우리 내외를 산으로 불러낸 후에 이뤄진 대화입니다. 산행준비에 분주하던 아내가 내게 날씨가 춥지 않으냐며 무얼 입어야 할지를 묻습니다. 이런 때 제가 한결같은 대답을 하지요. "당신이 알아서 입어. 난 별로 안 추운데?" 지난 10일도 아내는 자신이 알아서 입었습니다.

 

오삼회의 박 목사님이 갑자기 전화를 해왔습니다. '장군봉을 정복하려고 하는데 동행하지 않겠느냐'고. '직원 환영식과 송별식이 있어 좀 늦을 수 있다'고 했는데도 괜찮다고 하니 어쩌겠습니까. 점심은 장 목사님 사모님이 내놓은 칼국수로 잘 먹고 계룡산의 지류인 장군봉으로 향했습니다.

 

네 발로 기어 오른 장군봉

 

a  앙칼지게 결이 난 바위능선을 네 발로 오르며 ‘참 산 맛이 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앙칼지게 결이 난 바위능선을 네 발로 오르며 ‘참 산 맛이 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 김학현

앙칼지게 결이 난 바위능선을 네 발로 오르며 ‘참 산 맛이 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 김학현

a  칼바위 위에 가까스로 앉아 포즈를 취한 아내입니다. 산 아래로 잘 트인 길들을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군무가 멋집니다.

칼바위 위에 가까스로 앉아 포즈를 취한 아내입니다. 산 아래로 잘 트인 길들을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군무가 멋집니다. ⓒ 김학현

칼바위 위에 가까스로 앉아 포즈를 취한 아내입니다. 산 아래로 잘 트인 길들을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군무가 멋집니다. ⓒ 김학현

박 목사님이 운전한 새 봉고차가 가뿐히 박정자 삼거리(왜 이런 사람 이름이 지명에 붙었는지는 모릅니다. 동학사로 들어가기 바로 전에 있는 삼거리의 명칭입니다)에 다다랐습니다. 주차하고 시내 하나를 건너 병사골에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오르다 뒤늦게 예전에 이미 탔던 산임을 알았습니다. 장군봉이란 이름을 듣고도 거기가 어딘지, 시내를 건너면서도 그 산을 탔던 곳인지도 모르다니. 이젠 그렇게 가을처럼 늙어가나 봅니다. 한참을 오르고서야 비로소 "아, 이 산 올랐던 기억이 있는데"라고 했더니, 아내는 한술 더 뜹니다. "글쎄?"

 

얌전하게는 오를 수 없는 산입니다. 몇 번은 꼭 네 발로 기어올라야 합니다. 앙칼지게 결이 난 바위능선을 네 발로 오르며 '참 산 맛이 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다 가끔씩 싸한 바람이 이마에 성근 땀방울에 앉았다 갑니다. 이런 맛에 산을 타는지도 모릅니다.

 

"와! 예술이다! 이렇게 멋진 산이 곁에 있었다니?"

"그러게 금강산이 따로 없네. 여기가 금강산이 아니고 뭐야?"

"낮은 산이 의외로 멋있는데요."

 

오삼회원, 그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그칠 줄 모르네요. 칼바위들을 오르다 곁으로 솟은 봉우리들을 보면 정말 장관입니다. 어찌 이파리들이 그리 다른 색으로 물들어 저리 멋있게 어울릴까요. 산 아래로 잘 트인 길들을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군무는 어떻고요. 힘겹게 그러나 감탄하며 정상에 앉았습니다. 50분길이라고 표지판이 알리는 거리를 한 시간하고도 10분 만에.

 

네 발로 기어 내려온 하산

 

a 장군봉 막상 계룡산 장군봉 정상에는 덩그러니 표지판만 서있을 뿐입니다.

장군봉 막상 계룡산 장군봉 정상에는 덩그러니 표지판만 서있을 뿐입니다. ⓒ 김학현

▲ 장군봉 막상 계룡산 장군봉 정상에는 덩그러니 표지판만 서있을 뿐입니다. ⓒ 김학현

a  장군봉을 오르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능선이 하늘과 조화롭습니다.

장군봉을 오르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능선이 하늘과 조화롭습니다. ⓒ 김학현

장군봉을 오르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능선이 하늘과 조화롭습니다. ⓒ 김학현

사과 한 톨씩을 입에 물고 아래로 전개되는 경치를 감상하다, 박 목사님이 제안을 합니다. "우리 오른 길 말고 다른 길로 가면 어떨까요? 아까 오르다가 물어보니까 좀 오래 걸리긴 하지만 박물관 쪽으로 내려가면 길이 수월하다고 하던데." 이 말에 우린 모두 수긍을 했고, 그렇게 결정이 났습니다.

 

결국 우린 오른 길이 아닌, 좀은 수월하다고 하는, 그러나 시간은 조금 더 걸린다고 들은, 반대편 길로 들어섰습니다. 내려가는 듯하더니 곧 오르막이었습니다. 오르막을 다시 아까 장군봉으로 오르며 경험했던 대로 네 발로 올랐습니다. 가끔씩 줄이 매어있어서 줄을 잡고 줄타기를 했습니다.

 

실은 느낌으로는 그곳이 우리들의 오늘 목표였던 장군봉보다 높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보니 장군봉이 아래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장군봉은 병사골 쪽에서 오를 때는 몰랐는데 너머 쪽 봉우리에 올라서 보니 완전히 바위 덩어리였습니다. 장군봉의 다른 얼굴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그 봉우리를 내려갔습니다.

 

그 봉우리를 내려가면 하산지점이 있으리라 생각한 지점에 조그만 오솔길이 보이고, 그 앞에는 줄이 매어있고 '등산로 외 출입금지, 위반시 50만원 벌금, 단속 중'이라고 쓴 경고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렇게 봉우리를 대여섯 개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습니다.

 

아무리 봉우리를 오르내려도 하산 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안내판은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남매탑'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능선을 타고 오르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힘들다 보니 아까 우리들이 이 길로 오게 된 이유를 까맣게 잊은 채 불만 100%로 충만했습니다. '오래 걸리긴 하지만 수월하다?' 전혀 아니었습니다. 아니 훨씬 길고, 훨씬 난코스입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가보지 않던 길을 간다는 것, 어디쯤에 분명히 하산 길이 나올 거라는 희망도 있었습니다. 지쳐 갈 즈음, '인생길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가기에 희망이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순간순간 나타나는 경치를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걷고 기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예정보다 한 시간 이상을 더 돌아 갖은 고생을 다하고 나서야 하산했습니다.

 

복 받을 부부

 

a  봉우리를 오르내려도 하산 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능선을 타고 오르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힘들다 보니 아까 우리들이 이 길로 오게 된 이유를 까맣게 잊은 채 불만 100%로 충만했습니다.

봉우리를 오르내려도 하산 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능선을 타고 오르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힘들다 보니 아까 우리들이 이 길로 오게 된 이유를 까맣게 잊은 채 불만 100%로 충만했습니다. ⓒ 김학현

봉우리를 오르내려도 하산 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능선을 타고 오르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힘들다 보니 아까 우리들이 이 길로 오게 된 이유를 까맣게 잊은 채 불만 100%로 충만했습니다. ⓒ 김학현

a  지석골 쪽으로 내려와 학림사 입구의 단풍이 하도 아름다워 한 컷 찍었습니다.

지석골 쪽으로 내려와 학림사 입구의 단풍이 하도 아름다워 한 컷 찍었습니다. ⓒ 김학현

지석골 쪽으로 내려와 학림사 입구의 단풍이 하도 아름다워 한 컷 찍었습니다. ⓒ 김학현

먼저 출출한 배를 채우고 다음 문제에 직면합니다. 지석골이라는 다른 골짜기로 내려왔으니 차 있는 곳까지 가는 게 걱정입니다.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식당에 온 아무 차나 한 사람이 잡아 타고가 차를 가져오자'고. 제안한 사람이 그렇게 하라며 박 목사님이 차키를 제게 줍니다.

 

"저, 실례합니다. 무례한 부탁이지만 차를 박정자 삼거리에 세워놓고 산에 올랐다 다른 길로 내려와서 그런데 그곳까지 태워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합니다."

 

저는 막 식사를 마치고 나와 차에 오르는 젊은 부부에게 다가가, 평소에는 전혀 안 하던 짓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근데 너무나 쉽게 남자분이 말합니다.

 

"예, 그러죠."

"고맙습니다."

 

전 그가 맘 변하기 전에 얼른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차를 세워둔 곳까지 가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중에 그들도 우리들과 같은 경험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나오고 보니 그게 더 좋은 추억으로 남더라"고까지 했습니다.

 

동병상련, 그랬습니다. 다른 골짜기로 하산하여 차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고생해 본 경험을 같이 누린 이들이 그렇게 만난 것입니다. 그들의 차 태워줌에 대하여 더욱 감사한 것은 그들의 방향이 박정자 삼거리 쪽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저를 내려주고는 방향을 되돌려 다시 신도안 쪽으로 갔습니다. 이리도 고마울 수가?

 

차 뒤꽁무니에 대고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습니다. 차를 끌고 와 일행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복 받을 부부라고 축복을 하더군요. 참 짧지 않은 반나절이었습니다. 산을 몇 개나 넘고, 복 받을 부부를 만나고, 예정하지 않았던 네 발로 등산을 하고야 알았습니다. 모르고 가는 힘겨운 길에도 행복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아내는 너무 힘들었던지, 한 마디 합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안 갔어!"

 

누구는? 저도 그런 줄 알았으면 안 갔습니다. 아마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모르는 인생길을 가는 것이겠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1.12 09:25ⓒ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장군봉 #계룡산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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