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휴대폰 불법복제, '을'은 너무 억울하다

'관리'란 명목으로 자행되는 연예인 소속사의 '사생활 침해'

등록 2009.01.24 18:39수정 2009.01.24 18:39
0
원고료로 응원
a  전지현씨. 사진은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한 장면.

전지현씨. 사진은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전지현씨. 사진은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가정해 보자. 누군가 당신이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고 있다면, 당신이 누구와 통화했는지 그 통화내역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겠는가? 자신 혼자만 알고 있는 은밀한 사생활까지 남에게 엿보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지고 오싹해지지 않을까? 아마 십중팔구는 그런 기분일 거다.

 

영화 <트루먼쇼>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다. 바로 전지현 휴대폰 불법 복제 파문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순식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연예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톱스타 전지현의 휴대폰이 불법 복제되었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소속사 관계자가 그 일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전지현의 현 소속사인 싸이더스HQ가 흥신소에 그녀의 휴대폰 불법 복제를 의뢰했고, 이 과정에서 금품이 오고 간 정황과 증거를 확보했다고 한다. 경찰은 전지현 등 일반인 30여 명의 휴대폰을 불법 복제한 혐의로 흥신소 직원들을 체포해 수사 중에 있으며, 싸이더스HQ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 및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했다고 한다.

 

또 경찰은 이번 사건이 회사 관계자 소수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인지, 회사 차원의 일인지 보다 정확한 조사를 위해 싸이더스HQ 정훈탁 대표를 28일 소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싸이더스HQ 측에선 23일 공식 입장 자료를 통해 '정훈탁 대표가 휴대폰 불법 복제를 지시한 적은 없으며, 자체조사 결과 2명의 내부 관계자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해명했다. 또 싸이더스HQ는 '전지현씨 측이 이번 일에 대한 어떠한 사법처리도 원하지 않음을 당사에 전해왔다'고 밝혔다.

 

싸이더스HQ는 왜 전지현 핸드폰을 복제했을까?

 

이렇듯 전지현의 휴대폰 불법 복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체 무엇 때문에 소속사 관계자들이 휴대폰 불법 복제를 의뢰했는가 하는 점에 대해 대중과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먼저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가설은 재계약과 관련한 동향 파악이다. 전지현과 싸이더스HQ의 전속계약은 오는 2월 만료를 앞두고 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톱스타이자 싸이더스HQ의 간판스타인 전지현과 재계약 성사 여부 문제는 싸이더스HQ에 있어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녀가 접촉하려 하거나 그녀에게 접촉해 오는 다른 기획사는 없는지, 그녀의 심중과 동향 파악을 위해 휴대폰을 불법 복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생활 관리 측면에서 휴대폰을 불법 복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지현은 현 싸이더스HQ의 정훈탁 대표가 발굴하고 육성하여 지금의 위치에 오른 스타다. 그 과정에서 정훈탁 대표는 전지현에게 영화와 드라마, CF 등과 같은 작품 활동 이외에는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른바 신비주의 전략을 펼쳤고, 결과적으로 이는 10여 년의 세월 동안 전지현을 톱스타로 유지시키는 데 큰 힘이 됐다. 최대한 노출을 자제하며 신비한 이미지를 고수한 전략 덕분에 데뷔 1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광고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전지현이기에, 철저한 사생활 관리를 위해 휴대폰을 불법 복제했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이든 간에 이번 사건은 명백한 연예인의 사생활 침해로 볼 수밖에 없다. 사실 기획사의 연예인 사생활 침해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밝힌 '연예기획사 전속계약서의 불공정 조항 적발 시정조치'에 따르면 국내 대형 연예기획사들의 연예인 사생활 침해는 심각한 지경이라 할 수 있다.

 

'불공정 계약'으로 철퇴 맞았었던 연예기획사들

 

예컨대 연예인은 항상 자신의 위치를 기획사에 통보해야 하고(O엔터테인먼트), 학업과 국적, 병역 및 이성교제와 같은 신상·사생활 문제까지 기획사의 지휘·감독에 따르도록 해야 하며(J엔터테인먼트), 모든 활동을 기획사의 통제 아래 해야 하는 등(P엔터테인먼트) 공적인 활동영역을 제외한 사생활에서까지 일일이 기획사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지난 2004년에는 영화배우 김윤진이 공정위에 소속사에 대한 약관심사를 청구한 사실과 이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가 밝혀지면서 기획사의 연예인 사생활 침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당시 김윤진의 소속사는 전속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김윤진이 자신의 위치를 항상 회사 측에 알리도록 하는 조항을 삽입했고, 공정위는 이것이 연예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김윤진의 주장에 손을 들어 기획사에 불공정한 조항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도록 명령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7년에는 국내 44개 연예기획사가 모여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이하 연매협)'를 출범시켰다. 연매협은 출범 당시 "연예산업에 합리적인 시스템과 조직적인 운영을 제공하고, 산재된 문제점을 해결하여 투명하고 건전한 연예산업을 만들고자 발족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연매협 창단 이후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전지현 휴대폰 불법 복제 파문이 터진 것이다.

 

연예인도 인간, 자유 침범당하지 않을 권리 있다

 

물론 이런 사생활 침해 논란에 대해 기획사 측도 할 말은 있다. 연예인의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광고의 경우, 스캔들에 휘말리거나 물의를 일으키게 되면 해당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상식이다. 또 이미 광고모델로 활동 중인 경우에도 만약 문제가 생기게 되면 기획사 측에서 광고주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획사로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생활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연예인이 미성년자일 경우 부모들이 먼저 소속사에 사생활 관리를 요청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생활의 관리와 침해는 엄연히 다른 성질의 것이다. '갑(기획사)'과 '을(연예인)'의 관계에서 항상 을이 갑의 지휘·감독·통제에 따라야만 한다면 그것을 관리라고 보긴 힘들다. 학업과 이성교제 문제를 통제하고, 소재지를 일일이 보고해야 하며, 심지어 휴대폰을 불법 복제하여 문자메시지까지 엿보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관리가 아닌, 사생활 침해의 영역인 것이다.

 

기획사는 연예인이 벌어오는 돈을 통해 유지된다. 기획사가 연예인을 '관리'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들의 '상품성'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품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인간은 그 누구에게도 자유를 침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불공정 계약 조항에 대한 수정·삭제 권고 조치가 있은 이후 지난해 12월 공정위는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연예기획사의 불공정 계약 관행이 근절될 때까지 상시감시활동을 펼치고, 적발시 적극 조사할 것"이라 발표한 바 있다. 기획사의 연예인 사생활 침해는 우리 연예계가 가진 어두운 단면이자 뿌리 깊은 병폐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관계자가 모두 힘을 합쳐 좀 더 나아진 연예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2009.01.24 18:39ⓒ 2009 OhmyNews
#전지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