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되찾은 새정부 2년, 사형으로 시작하시렵니까?

‘넥타이 공장’ 다시 돌리려는 정부 여당

등록 2009.02.11 08:48수정 2009.03.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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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법무부에 사형 집행 공식 요구

최근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 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확정 판결자에 대한 사형집행은 해야 한다"면서 "원내 대표단의 의견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박준선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는 지난 6일 법무부에 공문을 보내 사형판결 확정자의 '사형 집행'을 공식 요구했다(2월 9일 경향신문).

그런데 오늘(11일)은 잠시 주춤하는 모양이다. '사형 집행은 당론'이라던 홍준표 원내대표가 말을 바꿨다. 홍 대표는 오늘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우리가 사형을 집행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우리 당론으로 정하기 어려울 것"이며,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서 (개인적으로) 정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지난 5일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사형 확정판결을 받고 구치소와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사람은 모두 58명이다. 사형 확정자는 2000년 9명, 2001년 8명이 나온 이후 계속 줄고 있어 이후에는 매년 2∼5명씩 늘어나는 추세다. 58명의 사형수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a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을 집행한 뒤 지난 1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가운데 30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사형폐지국가 기념식에 참석한 사형수 사목 전담 수녀인 조성애 수녀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을 집행한 뒤 지난 1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가운데 30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사형폐지국가 기념식에 참석한 사형수 사목 전담 수녀인 조성애 수녀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사형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등장하는 모니카 수녀(윤여정 분)를 기억하는가? 모니카 수녀의 실제인물이자 '사형수들의 대모'라고 불리며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조성애 수녀 말이다.

"(사형수들은) 달력의 빨간 날을 제일 좋아하죠. 휴일이라 사형집행이 없거든요. 사형 집행장을 자기들 말로 '넥타이 공장'이라고 하는데, 그 곳을 청소할 때마다 술렁거려요. 이제 그만, 죽음의 공포로부터 그들을 구해주자고요." (2007년 10월 오마이뉴스 인터뷰)

갑작스레 사형수 밥값 묻는 2009년의 대한민국


'사형 집행'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여기에도 '실용', 즉 돈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사형수 '먹여 살리는데' 얼마나 드나? 답은 연간 160만 원이다(2월 5일 법무부 보도자료). '실용'적인 법무부의 보도자료가 낳은 기막힌 기사다.

법무부의 보도자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보자. 과연 현재 58명의 사형수는 국민의 세금을 축내고(?) 있을까? 이제는 법상으로는 사형확정자도 노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8월 20일 정부가 제출하여 개정된 행형법 개정법률안(2008년 11월 24일 국회 본회의 통과, 2008년 12월 11일 정부 공포) 중 사형확정자의 노역과 관련한 조항의 제안 이유를 보자.


사형확정자의 교육, 작업 등 처우에 관한 규정 명시(안 제90조) - 사형집행이 장기간 유보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사형 확정자에 대하여 교육·교화프로그램, 신청에 따른 작업 등의 처우를 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규정함.

이와 같은 법률 개정에 대해 사형수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김형태 변호사가 한 사형수로부터 받았다는 편지 내용으로 대신한다.

"(사형수도 노역을 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 이제 겨우 밥값을 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언제 저를 이 세상에서 데려가셔도 좋고 이렇게 살아서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순간도 행복합니다."(한겨레 김형태 칼럼 2월 5일 "죽이는 것만은 안된다")

2008년 12월 개정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9년 2월 현재 사형확정자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사형수의 작업과 관련해서는 2008년 12월 19일 제정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153조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153조(작업) ① 소장은 사형확정자가 작업을 신청하면 교도관회의의 심의를 거쳐 교정시설 안에서 실시하는 작업을 부과할 수 있다. 이 경우 부과하는 작업은 심리적 안정과 원만한 수용생활을 도모하는 데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② 소장은 작업이 부과된 사형확정자에 대하여 교도관회의의 심의를 거쳐 제150조제4항을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
③ 소장은 작업이 부과된 사형확정자가 작업의 취소를 요청하면 사형확정자의 의사(意思)ㆍ건강, 담당교도관의 의견 등을 고려하여 작업을 취소할 수 있다.
④ 사형확정자에게 작업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법 제71조부터 제76조까지의 규정 및 이 규칙 제200조를 준용한다.

'만들어진 사형수'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

2007년 10월로 되돌아가보자. '사형폐지 국가 선포식'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제 한국도 인권의 선진국가 대열에 참가하게 됐다"며,  "오늘 사형제 폐지 국가 선포식은 우리의 인권운동사상 가장 뜻 깊은 날이요, 최대의 인권승리의 축하일"이라고 했다.

a  81년 신군부가 야당지도자 김대중씨에게 사형판결을 내리자 이에 항의, 재일 민주인사들이 결의문을 채택하고 있다.

81년 신군부가 야당지도자 김대중씨에게 사형판결을 내리자 이에 항의, 재일 민주인사들이 결의문을 채택하고 있다. ⓒ 한통련 홈페이지


알다시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수가 되기도 했다.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을 통해 '사형수 김대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자.

"처음에는 '국기문란 사건'이던 것이 수사과정에서 '내란 음모 사건'으로, 다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발전했다. 오직 김대중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시나리오의 변화과정이었다. (중략) 우리는 처음에 내란 음모죄로 기소된 줄 알았는데 유독 남편에게만 국가보안법이 추가되었다. 내란 음모는 법정형의 상한이 무기징역이므로 사형 죄목이 하나 더 필요했던 것이다.(214면)"

'만들어진 사형수' 김대중은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되었다가 형 집행정지로 출소하게 된다.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그는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 되었다. '만들어진 사형수'였던 김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사형 제도의 위험성에 대해 절실히 느꼈을 것이기에 '실질적 사형폐지국'이 된 기쁨은 남달랐을 것이다.

세계적 국제기구들은 왜 사형제 폐지를 권고하나?

이명박 행정부와 한나라당은 '사형 집행 = 법치'라며 선진 한국을 위해서는 법치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형제도와 관련한 국제적인 움직임은 어떠할까?(사형제와 관련한 주요 통계는 이전 기사 "우리는 '야수적인 정글의 나라'에 살고 있나" 참조)

UN은 1989년 '사형폐지를 위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2선택의정서'를 채택하였고, 유럽인권위원회는 2003년 '유럽인권협약 제13추가의정서'에서 평화시 뿐만 아니라 전시에도 사형을 완전히 폐지하도록 하였다.

UN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mmittee)는 1992년 대한민국 1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최종평가서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사형을 선고받고 있는 사실에 우려를 표명하였고, 특히 사형선고를 받는 위반행위에 절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제6조에 대한 명백한 위반임을 지적하며 사형범죄를 축소할 것을 권고하였다.

전세계 192개국이 회원국으로 있는 UN이나 UN 인권이사회, 유럽인권위원회는 왜 이렇게 사형제를 폐지하도록 권고할까? 이명박 행정부의 말대로라면 '사형 집행 = 법치'인데도 말이다.

"MB 집권 2년, 사형으로 시작하시렵니까?"

다시 '만들어진 사형수 김대중' 이야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살리기 위해 국정자문위원을 맡을 수 밖에 없었던 정일형 박사는 1980년 11월 25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 정부의 출발을 사형으로 시작하시렵니까?"

'잃어버린 10년'을 외쳐대던 이명박 행정부와 사형 집행을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의원들에게 묻는다.

"MB 집권 2년, 사형으로 시작하시렵니까?"
#사형제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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