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처럼 낯선'? '지옥처럼 낯익은' 우리 사회이겠지

[서평] 하종오 시인의 <지옥처럼 낯선>

등록 2009.02.20 15:43수정 2009.02.2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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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옥보다 낯선> 겉그림. 하종오 시집. 랜덤하우스중앙, 2006.

<지옥보다 낯선> 겉그림. 하종오 시집. 랜덤하우스중앙, 2006. ⓒ 랜덤하우스중앙

▲ <지옥보다 낯선> 겉그림. 하종오 시집. 랜덤하우스중앙, 2006. ⓒ 랜덤하우스중앙

시라는 것을 알고 입에 마음에 담기 시작한 뒤, 그리고 시집이라는 것을 가끔씩이나마 사게 된 뒤 하종오의 시집 <지옥처럼 낯선>(랜덤하우스중앙 펴냄, 2006)이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지금껏 자주 여러 번 보는 시집이지 않나 싶다.

 

시라는 게 참 재밌기도 하고 감격스런 느낌을 주는 일도 많다. 특히, 우울하고 힘든 사건을 대할 때 낯간지럽다 할 만큼 허울만 가득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뭔가를 콕 짚어주기도 한다.

 

설명하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것, 그러니까 복잡한 모양 그대로 시간 흐름을 따라 무작정 흘러만가는 세상을 짐짓 불러 세우고서 그 깊은 속살을 순식간에 끄집어내어 ‘삶이란 바로 이런 거야’라고 읊조리게 하는 그런 느낌. 내게 시란 그렇게 다가온다.

 

시는, 내 마음을 포함하여 이 세상 무언가를 조금 거리를 두고서 멀찍이 바라보게 하면서도 막상 말을 꺼낼 때는 그 핵심 한 가지를 탁 짚어내는 것만 같다. 말하고 싶은 것은 많아도 막상 말 하려면 전체를 다 감싸지 못하는 아쉬움, 이미 흘러가 상황이 달라진 일들, 말하는 시간만큼 변해버린 내 마음과 삶을 보고서 이내 말을 거두어들이기 십상이다. 그럴 때, 어떤 한 마디 강렬한 한 마디 말이라기보다 차라리 영상에 가까운 시라는 게 참 좋다.

 

말이 서툰 거친 삶, 시인의 눈과 입과 손을 거쳐 발언 기회를 얻다

 

<지옥처럼 낯선>(하종오 시집)에 둥지 튼 시들을 읽어가노라면 그렇게 ‘지옥처럼 낯선’ 일상들이 제 멋대로 뒹굴면서도 희한하게도 다들 무언가 중요한 것 한 가지씩을 거칠게 토해낸다. 여기에 바로 시인의 마음에서 눈으로, 눈에서 손으로, 그 손에서 다시 우리 (독자들) 마음으로 전해지는 시의 힘과 매력이 있지 않나 싶다.

 

서른 줄 사내는 골목에서 이불을 주워 왔다

마흔 줄 사내는 폐차장에서 담요를 주워 왔다

오십 줄 사내는 쓰레기 하치장에서 카펫을 주워 왔다

 

(…)

 

서른 줄 사내는 꼭 한 번 카펫을 덮고 싶어했다

마흔 줄 사내는 꼭 한 번 이불을 덮고 싶어했다

오십 줄 사내는 꼭 한 번 담요를 덮고 싶어했다

 

(…)

 

서른 줄 사내는 골목에다 이불을 갖다 놓았다

마흔 줄 사내는 폐차장에다 담요를 갖다 놓았다

오십 줄 사내는 쓰레기 하치장에다 카펫을 갖다 놓았다

 

- <지옥처럼 낯선> 제3부에서, ‘지옥처럼 낯선’ 일부

 

하종오 시인의 이 시집에 든 시들을 읽다보면 문득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지옥처럼 낯선’ 세상이라는 게 되레 ‘지옥처럼 낯익은’ 우리 사회 이면, 곧 오롯이 현실 그대로인 이 세상을 비껴 말하는 것이겠거니 하는 것이다. 권혁웅 시인은 하 시인의 <지옥처럼 낯선>(2006)이 <반대쪽 천국>(2004)과 짝을 이루는 시집이라는 말로 시작한 작품해설 글 제목을 ‘부정의 대위법’이라 이름 지었다. 하 시인의 이 시집 특징을 한 마디로 ‘부정의 대위법’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기억에 남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집의 1~2부를 이루는 사회 비판 시들이 단선적인 풍자로 시종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시선이 단순해지고 대상이 획일화되고 전언이 중언부언을 닮아갔을 것이다. 시인은 이 시편들에서 겹겹으로 이루어진, 이중 삼중의 부정을 통해 대상에 접근해간다. (중략) 대상은 거듭된 부정을 통해서 파열될 뿐, 끝내 합목적적인 종합에 이르지 않는다. 파열의 끝에서 변증법적인 부정의 궁극적인 실체가 드러날 따름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방법론은 체제의 모순 자체를 진화의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 자신과도 닮았다.”(<지옥처럼 낯선> 작품해설에서, 142)

 

아비의 땅 한 가운데서 벼가 자랐고

그 옆에 시금치가 자랐고 그 옆에 고추가 자랐고 그 옆에 콩이 자랐고 그 옆에 (중략) 그 옆으로 한 뙈기 그 옆으로 한 뙈기가 커져서 평지로 넓어졌는데

좌우, 논둑밭둑으로 통을 지고 온 농부들이

이따금 썩은 똥 오줌을 퍼부었고

 

(…)

 

자식의 빌딩 한가운데 부동산중개소가 자리 잡았고

그 상층에는 무역회사가 자리 잡았고 그 상층에는 식품회사가 자리잡았고 그 상층에는 (중략) 그 상층으로 층층마다 기업체가 들어와 고공으로 치솟았는데

상하, 화장실에서는 하수관을 타고

쉴 새 없이 산똥 오줌이 흘러내렸고

 

- 제1부에서, ‘좌우 그리고 상하’ 일부

 

권혁웅 시인은 하 시인의 시들이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이 자본주의 사회, 도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그만큼 더 커지는 공허한 공간을 파헤치고 있다고 본 셈인데 내 생각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권 시인이 말했듯, 이 시집은 사회 풍자(1~2부)에서 시작하여 현실 사례를 그대로 바라보며 그 목소리를 잡아낸 시들(3부)을 거친 뒤 시인 개인과 가족이라는 공간으로 좁혀져 와서 반성(4~5부)으로 마무리된다.

 

권 시인의 말대로 보자면, <반대편 천국>이 그렇듯 배열 순서대로 흐름을 타며 읽는 게 문안하다. 그러면서도 이 시집은 3부(사회 부조리에 신음하는 개개인의 실제 삶을 다룬 시들)를 중심으로 앞부분(1~2부)과 뒷부분(4~5부)이 서로 서로 얽힌다. 여기에 3부 시들 역시 그 실타래에 같이 어울려 이중 삼중으로 대위적 부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자본주의와 도시 구조 아래 형성된 현대 사회가 낳는 각종 사회 부조리(1~2부)를 파헤치면서도 3부를 징검다리나 시소처럼 거쳐 시인 개인의 삶이 상징하는 평범한 개개인의 고단한 삶 그 자체를 보듬는(4~5부) 이야기들을 펼쳐갔다. 시들은 각기 다른 영역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연중 서로 맞닿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남편과 아내 사이에, 나 혼자서라도 주거니 받거니 한 말과 몸짓 하나 하나에서 서로 달라 보이는 것들이 마주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지난 세월에 묻힌 소박한 지혜들이 흐를 때마다 그에 보조를 맞추듯 빠른 세월마저 잡아먹을 것 같은 현대판 괴물(자본주의와 도시 문화가 낳는 부조리에 대한 인상들이 지나갈 수 있다.)들이 불쑥 불쑥 독자들 마음 한가운데를 교차해 가는 것이다.

 

조금 전 한 사내가 선로에 뛰어든 승강장에서

나는 다음 전철을 기다린다

핏자국을 보면 진저리치면서

무엇이 사내에게 죽음을 택하게 했는지 생각한다

(…)

나는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내고 전철을 타고 간다

세상은 아까 즉사한 사내에게도 쉽사리

잔물결이나 날개가 되어주는 곳은 아니었을 터다

회사들이 구인 계획을 자주 바꿔서 내 구직 방법도 자주 바뀌어야 하니

목적지에 다다르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새 전철은 다시 지하로 덜커덩 덜커덩 진입한다

 

- 제4부에서, '순환선' 일부

 

빠르게 흐르고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만큼 우리 행복도 그러할까

 

순서대로 이 시집을 읽는다 하여 그대로 앞에 읽은 시들이 기억에서 흐려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가족 대화와 몸짓들에서 그 뒤틀린 사회 부조리들이 다시 교차하는 영상이 되어 우리를 사방팔방에서 붙잡을 수 있다. “그의 시를 현실주의적 상상력이 지닌 건강함을 보여주는 징표로 보아도 좋을 것”이라는 권 시인의 실한 평가는 그래서 지금 딱 어울리는 말이지 싶다.

 

하종오 시인이 진정한 행복과 그에 반해 만들어지고 가공된 허상의 행복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를 알고자 한다면 ‘마케팅 에피소드’라 이름붙이고 17편의 시들을 연달아 담은 2부를 보면 될 것이다. 이 ‘마케팅 에피소드’ 시들을 읽으며 허탈해할지, 비웃을지, 별 의미 없이 웃고 말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우리 중 누구도 ‘마케팅’이 상징하는 자본주의와 도시 사회의 허울에서 자유롭다 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종오 시인의 이 시들을 읽다보면 이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가 바로 나 자신인 것만 같다. 하 시인의 시들을 읽다보면 도시 구조와 그 문화를 상징하는 범람하는 마케팅 현상들이 바로 나 자신인 것만 같다. 때론 피하고 거부하고 거칠게 무시해도 여전히 그 속에서 바둥거리는 내 모습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지옥처럼 낯선> 하종오 시집. 랜덤하우스중앙, 2006.

* 이 서평은 제 파란블로그에 싣고 리더스가이드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2009.02.20 15:4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지옥처럼 낯선> 하종오 시집. 랜덤하우스중앙, 2006.

* 이 서평은 제 파란블로그에 싣고 리더스가이드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지옥처럼 낯선

하종오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지옥처럼 낯선 #하종오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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