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만능에 찌든 종교, 안식처인가? 피해야 할 곳인가?

돈 때문에 찜찜한 교회와 사찰을 보며

등록 2009.03.15 16:15수정 2009.03.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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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인가. "신 또는 초인간적·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인간이 경외·존숭·신앙하는 일의 총체적 체계"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그럼, 왜 사람들은 종교에 귀의하는가. 당연히 '신 또는 초인간적·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경외·존숭·신앙'을 통하여 마음의 안식을 얻고 신의 초자연적 도움을 간구하기 위해서다.

 

길게 종교학 강의를 할 생각은 없다. 그런 의도로 이 글을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는 한 마디로 사람에게 위안과 힘을 줘야 한다. 위안이라고 한다고 무조건 신이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신에게 무엇을 함으로 스스로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대부분은 그것 자체를 '신앙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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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바구니 교회의 헌금은 성도의 신앙을 표하는 감사의 수단이지 자격을 갖추기 위한 요건이 아니다. ⓒ 김학현

▲ 헌금바구니 교회의 헌금은 성도의 신앙을 표하는 감사의 수단이지 자격을 갖추기 위한 요건이 아니다. ⓒ 김학현

어쨌든, 그러기 위해 교회나 성당, 사찰이 존재한다. 그 이유를 상실한다면 그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내가 목사다 보니 항상 교회(종교, 종교시설, 종교인)에 애정을 갖고 보려고 애쓰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 아니 요샌 아주 자주, '이건 아니잖아' 하는 사태들이 일어난다.

 

최근 눈에 띤 두 기사는 왠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든다. 하나는 <뉴스앤조이>의 "33평 아파트 바쳐봤어요?" (이승균 기자)라는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오마이뉴스>의 "돈 없으면서 절에는 왜 왔어요?"(조정림 기자)라는 기사다.

 

교회에서 발언하려면 돈을 내라?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선배 목사로부터 들은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충고가 새삼 생각난다. 그 첫째는 돈을 멀리하라, 둘째는 이성을 멀리하라, 셋째는 놀이를 멀리하라는 것이다. '놀이'란 놀음을 한다거나 손찌검을 한다거나 하면 목사에게 치명상이 된다는 뜻이다.

 

근데 요새는 돈을 너무 가까이하는 종교인(시설)들이 많은 것 같다. '가까이하면 안 되는 당신'인 돈이 너무 가까이 종교의 품으로 파고 들다 보니 무수한 부작용들을 낳고 있다. 이번에 신문을 장식한 목동의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56세)의 경우도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 목사는 2억원의 선교헌금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시킨 후 안수집사회(회장 이봉진)로부터 거센 해명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해명 대신, 교회 중직자 200여 명이 모인 '목장개강예배'에서 "헌금 나만큼 한 사람 있어요? 33평 아파트 바쳐봤어요?"라며, "바치지도 않았으면서 자기주장만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헌금 2억1000만원의 투명성 논란이 제자교회의 문제인 듯하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 논의가 아니다. 문제는 자신은 33평 아파트도 헌금했는데 그만큼의 헌금을 안 한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하면 안 된다는 정 목사의 말에 있다. 헌금을 안 한 사람은 교회에 대하여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헌금(돈)에 의해 교회의 발언권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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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 제자교회

제자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 제자교회

교회나 사찰, 성당에서, 돈이나 여타의 유형적인 것들에 의해 신자 된 권리가 상실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로마 교황청이 베드로 성당을 지을 때 면죄부를 팔던 때로 돌아간 것과 같다. 돈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아니다. 헌금을 많이 바쳐야만 신자의 권리를 누리는가? 아니다.

 

정 목사의 발언은 단적으로 황금만능이 판치는 교회의 단면을 보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결에 교회가 가난한 이들(헌금을 못하는 이들, 같지 않을 수도 있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돼 버린 느낌이다. 돈 없으면 교회에서도 설움을 받는다면 더 이상 교회가 안식처가 아니다.

 

절에서 기도 받으려면 돈을 내라?

 

돈에 관한 한 사찰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S시에 위치한 TV에 몇 차례 방영되기도 했던 사찰에서 일어난 해프닝 또한 그곳을 안식처로 여길 만하지 않다. '촛불 켜는데 5천 원!' 신심을 부처에게 바치려면 초 하나쯤은 켜야 하는데 그 촛불 하나 켜놓는 값이 5천원이나 한다.

 

시중에서 초 한 자루가 얼마나 하는데 그리 비싼 촛불을 켜야 하는 것인가. 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대인들이 성전에 들어가려면 성전세 반 세겔을 내야 한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돈과는 다르기에 그 돈을 바꿔주면서 이문을 떼먹는 성전 장사치들이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제사를 드리려면 양이나 염소 등 제물이 있어야 하는데, 흠이 있으면 안 된다는 성경구절을 교묘히 이용하여 백성들이 가져오는 양이나 염소는 흠이 있다며 성전에서 제물을 비싼 값에 팔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제물을 살 수밖에 없었다. 예수는 이런 이들의 좌판을 들러 엎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며.

 

'5천원짜리 초'는 성경의 '성전 제물'과 다를 바 없다. 사찰의 건물마다 들러 절을 하고, 절을 할 때마다 불전함에 돈을 넣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분위기. 어찌 가난한 사람이 마음의 안식을 위해 절을 찾을 수 있겠는가. 포대화상, 약사와불 등을 거치면서 "가족이 다 같이 왔으니 3만원이면 된다"고 노골적으로 액수까지 제시하는 승려.

 

TV에 반영된 '산신할머니 복돌' 앞에서 "백일기도에 10만원"이라며 기도해주는데 돈을 내야 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보살. 돈이 없다니까, "돈도 없으면서 뭐 하러 여기 왔어요?"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기겁을 할 정도다. 이쯤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종교는 돈 없이 위안 받을 수 있는 안식처여야

 

언급한 두 가지 예는 그저 일부분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다. 왜 굳이 개신교와 불교만을 이야기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어느 종교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어느 종교는 괜찮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종교는 종교다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세계 종교사를 볼 때, 모든 종교는 돈과 결탁할 때 망했다. 우리가 고등종교라고 말하는 현대의 종교들이 살아남은 것은 윤리라는 잣대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장 앞에 놓인 게 물질이다. 한 마디로 돈이다. 돈이라는 잣대를 무사히 통과할 때 비로소 종교는 가치를 가지게 된다.

 

돈이 없는 자들이 얼마든지 종교를 통하여 안위를 얻어야 한다. 자본주의 논리를 끌어들임으로 종교가 종교답지 못할 때 그렇지 않아도 물질도 마음도 가난에 처한 이들이 어디다 하소연을 할 수 있겠는가. 요즘 같은 불경기에 돈 없어도 당당히 갈 수 있는 곳, 거기가 교회요, 성당이요, 사찰이어야 하지 않을까.

 

'돈이 없으면 종교생활도 못해' 혹시 그게 어떤 종교시설이든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다면,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황금만능주의로 뒤덮인다고 해도 종교만은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불경기의 골이 깊으면 길을수록 교회(사찰, 성당)는 교회(사찰, 성당)다워야 한다. 그 '-다움'의 맨 앞에 돈 문제가 걸린다.

 

어느 곳에 가든지 돈 문제로 야단인 불경기에 종교기관에서조차 황금만능의 가치관이 넘실댄다면 더 이상 종교는 안식처가 아니다. 안식처이기는커녕 피해야 할 곳이 돼버릴 수 있다. 황금만능에 찌든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당당뉴스,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3.15 16:15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당당뉴스,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종교 #헌금 #불전함 #황금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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