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의 시소 놀이

디지털이 무조건 좋지는 않아요

등록 2009.03.30 18:05수정 2009.03.3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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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점점 더 속전속결로 흐른다. 디지털시대에 진입한 게 엊그제인데 일상의 모든것이 디지털에서 시작해서 디지털로 끝나는 것 같다. 아침에 눈 뜨는 것도 바늘시계가 아니라 디지털 핸드폰이다. 집에 들어가는 것도 아날로그 열쇠이기보다 디지털 번호이며, 어디를 가더라도 자동출입문으로 통과한다.

 

디지털문명은 청각장애인에겐 가히 혁명으로 다가왔다. 문자메시지폰과 숏메일, 화상전화기, 또는 인터넷메일 등이다. 그런한 것을 통해 청각과 언어 장애로 세상의 정보에서 단절되었던 청각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게 되었다. 아직도 장애인 웹접근성에 문제가 많은 상태이긴 하지만 이것은 시간문제이지 차차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디지털문명으로 해서 비장애인들 기관에서 비장애인 강사들과 교육생들 사이에서 하나의 교육설계와 사업기획을 하고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좋은 것이 있으면 그만큼 안 좋은 것도 공평하게 들어오는 것이 삶이다.

 

아날로그 보청기에서 디지털 보청기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날로그보청기 한 대가 10만에서 60만 원 사이인데, 디지털 보청기는 골다공증 보청기 종류도 포함해서 200만 원에서 800만 원이다. 손가락 크기만한 것들이 그렇게 고가인 것이다.

 

디지털 보청기를 그렇게 고가로 주고 사느니 1000만 원 더 주고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아 청각장애에서 난청으로, 혹은 난청에서 건강한 청음으로 되고자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유토피아같은 장애탈피의 꿈으로 수술을 한다.

 

그러나 수술 후 심각한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적잖다. 마치 코나 유방에 실리콘을 넣어 수술했다가 잘 되는 사람도 있지만 부작용으로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후배는 오랫동안 모았던 전재산이다시피한 저금을 털어 인공귀수술을 받았다. 그 수술을 받은 이유는 곧 딸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자모회 활동을 해야 하고 비장애인들 세상에서 취직을 하고 싶어서이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가 아닌 엄마로서의 존재감과, 세상속의 하나라는 일치감을 갖고 싶어서였지만, 수술 후 2년이 지난 지금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오랫동안 청음훈련을 받기 위해 서울도 정기적으로 다녔지만 지금은 더 이상 투자할 여력이 없어서 포기하고 친지 식당의 서빙일을 돕고 산다. 수술 받기 전보다 의기가 많이 소침해져 있는 상태이다.

 

나 역시 성인이 되어서 이비인후과 등에서 그런 귀속에 심는 인공귀수술을 권했지만, 나는 청기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신경마비라서 별로 소용이 없어 받지 않았다. 어떤 미술선배는 수술을 받았다가 몇 년 후 다시 꺼내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아날로그는 청음의 고저를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칩을 넎는 디지털보청기나 인공달팽이관 수술은 전혀 조절이 안된다. 한번 장착하면 그만인 것이다. 나는 현재 디지털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지만 이것이 청음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청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소리에 대한 청음까진 아니더라도, 소리의 존재여부는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치 실체의 분별이 잘 안되는 안개가 잔뜩 낀 세상이라 해도, 완전한 어둠이기 보다는 빛의 존재가 느껴지는 상태처럼...

 

언젠가는 실리콘으로 제작된 이 디지털 보청기를 퍼그종인 강아지인 쭈니가,  맛있는 간식인 개껌 냄새와 혼동해서 내가 잠깐 소파에서 자는 사이 씹어 버렸다. 300만원이 순식간에 날라가 버린 것이다. 

 

여성가장이기 때문에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때라서 나도 모르게 놀란 홧김에 "이런 ***!" 하고 성질을 부려서 강아지가 맞을 뻔했다. 한 10일 이상 강아지는 나만보면 설설피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웃음으로 남는다.

 

새 보청기를 하기 위해서 3년이나 5년에 한 번씩 장애인보장구입비 50%를 지원해준다고 그래서 동사무소에 찾아갔다.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서 제출하라고 했다. 그렇게 제출해서 주는 경비는 디지털보청기의 50%가 아닌 아날로그 보청기 50만원의 50%인 25만원이니, 시대는 디지털시대인데 정책은 아날로그에서 멈추고 있는 것이었다.

 

가급적 천천히 숨쉬며 살고 싶은 나는 아날로그가 좋다. 컴퓨터로 일을 하지만 가급적 친구와 스승들에게는 붓으로 글씨를 써서 보낸다. 합죽선이나 나비선 또는 싼 한지종이나 쓰다남은 짜투리종이를 푸른색이나 연한 황토로 염색하고, 나무잎이나 짚풀등을 붙여서 세필로 사연을 간단히 적어 보내면 모두가 대환영으로 가보로 보관하겠다는 농담도 한다.

 

가급적 집에서 음식을 만들때는 자동분쇄기 등은 쓰지 않는다.  어릴때 엄마가 하던 그대로 손맛, 나무도마에서의 춤추는 듯한 칼질 리듬을 즐긴다. 그런 나를 보면 딸아이는 답답해서 싫다고 한다. 아날로그, 또는 디지털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살아내기란 어려운 것일까? 

 

디지털 문명에 급속도로 빨려들어가는 딸아이들의 영혼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을 바로잡는 시소처럼 되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나는 가급적 시대에 뒤 떨어진 구식엄마인 척한다.

 

느린 내 박자를 정녕 모른척하지 않고 함께 한 지붕안에서 살다 보면, 언젠가 딸아이도 느린 숨 고르기를 할 수록 영혼이 평안한 아날로그의 매력을 느낄 날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아날로그와 디지털사이에서의 시소놀이가 좋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는 디지털이 육신을 편하게 해주는 만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피폐해가고, 아날로그가 육신을 고단하게 하는 만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새로워지는 것이니깐.

2009.03.30 18:05ⓒ 2009 OhmyNews
#디지털시대 #인공와우수술 #아날로그 #장애보장구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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