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은 쉴 새 없이 시간을 굽는다

[포토 에세이] 소멸을 기다리는 절집의 나무들에 부쳐

등록 2009.04.26 14:54수정 2009.04.2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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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생
 
a  가야산 해인사 지족암의 줄기만 남은 나무. 이 나무도 혹시 이곳에 오래 주석했던 일타 스님이 다시 올 날을 기다리는지 모를 일이다.

가야산 해인사 지족암의 줄기만 남은 나무. 이 나무도 혹시 이곳에 오래 주석했던 일타 스님이 다시 올 날을 기다리는지 모를 일이다. ⓒ 안병기

가야산 해인사 지족암의 줄기만 남은 나무. 이 나무도 혹시 이곳에 오래 주석했던 일타 스님이 다시 올 날을 기다리는지 모를 일이다. ⓒ 안병기

담장 안쪽. 키 큰 나무 한 그루가 먼 산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오랜 버릇이다. 어쩌면 수억 광년 저편의 전생에서부터 달고 온 버릇인지도 모른다.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딱딱하고 굳은 몸을 가지고 태어난 건 아니었다. 처음에 그는 비할 수 없이 말랑말랑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바람이라든가 눈·비에 대처하는 능력이 아주 유연하고 기민했다. 그 민감성 때문에 끄떡하면 그의 팔을 부러뜨리곤 했던 게 흠이었다.

 

그는 이따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막막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깊이와 넓이를 허락해줬는지 전혀 눈치를 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팔을 펴고 얼마만큼 깊이 다리를 쭉 뻗어도 되는 것일까.

 

그 범위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무는 자신의 몸을 선뜻 담장 밖으로 드러내놓기가 두려웠다. 다른 나무에 비해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그의 자아 역시 앞으로 나서는 걸 꺼렸던 건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에겐 자신이 가진 돈의 합(合)이 자아이듯이 나무에겐 몸이 곧 자아였던 것이다.

 

나무는 내 가지에선 아무리 애를 써도 떼낼 수 없는 거머리 한 마리가 기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거머리가 언젠가는 아주 강력한 빨판으로 자신이 애써 비축해둔 삶의 영양소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먹고 말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바로 시간이라는 이름의 거머리였다.

 

들여다 볼수록 막막한 시간의 풍경

 

나무는 종종 자신이 앞으로 가야 할 미래라는 시간의 풍경을 가늠해보곤 한다. 들여다볼수록 막막하다. 막막하다는 건 더이상 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때마다 나무는 제 분신 같은 가지들의 앞날을 걱정스러웠다. 어쩌면 내 가지에선 단 하나의 이파리도 돋아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내 삶의 잎사귀에서 엽록소들이 감쪽같이 사라졌을까.

 

나무는 문득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과거라는 시간의 아늑한 품이 몹시 그립다. 가능하면 그 품에서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었던 나날이 있었다. 나무는 그만 옆의 나무가 듣지 못하도록 가만히 한숨을 토한다.

 

a  보조국사 지눌이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는 순천 송광사 세월각 앞 고향수.

보조국사 지눌이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는 순천 송광사 세월각 앞 고향수. ⓒ 안병기

보조국사 지눌이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는 순천 송광사 세월각 앞 고향수. ⓒ 안병기

어머니는 왜 나를 이토록 거친  토양에 태어나도록 무책임하게 내버려뒀을까. 그 무책임도 어머니가 내게 베푼 사랑의 일부였을까.

 

하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아무 죄책감도 없이 덜컥 나를 세상 속에다 저지르고만 어머니 탓이다. 그 원죄를 범하지 않으려 했으면 어머니는 나를 잉태하기 전, 자신의 삶을 꼭꼭 걸어 잠궜어야 했다.

 

물론 나무도 알고 있다. 어머니는 지금 뒤늦게 찾아온 후회로 말미암아 자신의 세포 속에다 스스로를 가둔 채 쓰디쓴 여름 매미의 쓸개를 핥아가며 쉴 새 없이 갱생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난 어머니처럼 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윤회란 내가 어머니처럼 되는 것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적어도 어머니처럼 되지 않으려면 난 부지런히 날 것에 지나지 않는 내 삶의 시간들을 바삭바삭 소리가 나도록 구워내야 한다.

 

그 일을 재빨리 갈무리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내가 앓는 삶의 갈피에선 비릿한 풋내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풋내란 얼마나 오랫동안 씹어야 하는 질긴 슬픔인가를.

 

a  속리산 중사자암의 나무 의자.

속리산 중사자암의 나무 의자. ⓒ 안병기

속리산 중사자암의 나무 의자. ⓒ 안병기

살아 있는 한 시간은 구워야 한다

 

부지런히 시간들을 굽는 나무의 발 아래로부터 제법 부피가 큰 적막이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시간이 벌써 자정의 문간에 다다른 것인가. 그렇게 난 단 한 순간도 아니 1분 1초도 유예 없는 빡빡한 생을 살아왔다.

 

나무는 제 영혼에서 알 수 없는 막막한 낌새를 느낀다. 그는 알고 있다. 막막하다는 건 더이상 미래를 향해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라는 걸.


나무의 가슴 한복판에서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슬픔이 직각으로 부서져내린다. 자신을 상실하고 나서야 나무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낀다. 자학은 존재를 끝까지 물어뜯으며 놓아주질 않는다. 나무가 흘린 피처럼 붉은 아침 노을이 산모퉁이 뒤로 황급히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봄이 찾아왔다. 나무는 다시 처음처럼 제가 가진 오븐에다 푸른 시간을 구워야 한다.

2009.04.26 14:54ⓒ 2009 OhmyNews
#송광사 #중사자암 #지족암 #가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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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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