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36)

[우리 말에 마음쓰기 671] '존재하지 않던 면모', '아름다움이 존재할' 다듬기

등록 2009.06.16 10:22수정 2009.06.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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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존재하지 않는 훌륭한 면모

 

..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훌륭한 면모를 볼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  《자케스 음다/윤철희 옮김-곡쟁이 톨로키》(검둥소,2008) 208쪽

 

 '면모(面貌)'는 '모습'으로 다듬고, "있게 된 것인지도"는 "있게 되었는지도"로 다듬습니다.

 

 ┌ 존재하지 않는

 │

 │→ 있지 않던

 │→ 보이지 않던

 │→ 드러나지 않던

 │→ 숨어 있는

 │→ 잠들어 있는

 └ …

 

 '없던' 모습이 '처음으로 나타나'거나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볼 수 없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있지 않는' 앞에 '그동안'이나 '여태까지' 같은 꾸밈말을 넣어, "여태까지 있지 않는"이나 "그동안 보이지 않는"쯤으로 적어 주어야 올바릅니다.

 

 앞에 꾸밈말을 넣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고 한다면, "보이지 않던"이나 "숨어 있는"이나 "감추어져 있는"이나 "드러나지 않던"으로 손질해 줍니다.

 

 ┌ 이제까지 없던 훌륭한 모습을

 ├ 여태껏 보여주지 않던 훌륭한 모습을

 ├ 그동안 느낄 수 없던 훌륭한 모습을

 └ …

 

 하나둘 손질해 보면서 말마디는 말마디대로 손질하고, 말마디에 담는 생각은 생각대로 좀더 알차게 추스릅니다. 가다듬으려 하는 만큼 가다듬을 수 있는 말마디이며, 북돋우고자 하는 만큼 북돋울 수 있는 생각이요 삶입니다. 키우려 하는 만큼 키울 수 있는 말마디이고, 가꾸려 하는 만큼 가꿀 수 있는 마음밭이며 삶자락입니다.

 

 너무 높은 울타리가 있고 너무 힘센 무리가 걸림돌이 되어 우리 뜻을 조금도 못 펼친다고 할 수 있지만, 높은 울타리와 걸림돌이 있는 만큼 더 힘써서 우리 매무새를 일으켜세울 수 있습니다. 미움으로 가득한 사람한테 미움을 돌려주기보다 한결 너른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고, 밥그릇 챙기기에 매인 사람한테 좀더 그윽한 사랑을 건네어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 말에 웃음을 담고, 한 줄 글에 눈물을 담습니다. 한 마디 말에 땀방울을 담고, 한 줄 글에 다리품을 담습니다. 한 마디 말에 내 이야기를 담고, 한 줄 글에 내 삶을 담습니다.

 

 

ㄴ. 아름다움이 존재할

 

.. 양자는 한몸이다. 인간의 세계에서는 추함 없이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없다 ..  《후꾸오까 마사노부/최성현,조현숙 옮김-아무 것도 아무 것도》(정신세계사,1991) 23쪽

 

 '양자(兩者)'는 '둘'이나 '두 가지'로 다듬고, "인간(人間)의 세계(世界)"는 "사람 세계"나 "사람이 사는 곳"으로 다듬습니다. '추(醜)함'은 '못남'이나 '못생김'이나 '더러움'으로 손질합니다.

 

 ┌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없다

 │

 │→ 아름다움이 있을 수 없다

 │→ 아름다움이 태어날 수 없다

 │→ 아름다움이 생겨날 수 없다

 │→ 아름다움이 나올 수 없다

 └ …

 

 이 하나가 있어 다른 하나가 있다고 하는 보기글 줄거리입니다. 보기글 틀거리를 헤아려 본다면, "사람이 사는 곳에는 못남이 없이 아름다움이란 없다"처럼 손볼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는 더러움이 없으면 아름다움 또한 없다"처럼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거꾸로, "사람 사는 곳에 꾀죄죄함이 있기에 아름다움도 있다"나 "사람 사는 곳에 못생김이 있으니 아름다움 또한 있다"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글투를 살짝 매만지면서 새로 써 보아도 됩니다. 못남이 없으면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다"고, 더러움이 없으면 "아름다움을 따질 수 없다"고, 꾀죄죄함이 없으면 "아름다움을 다룰 수 없다"고, 못생김이 없으면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고.

 

 ┌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다

 ├ 아름다움을 따질 수 없다

 ├ 아름다움을 다룰 수 없다

 ├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 …

 

 이밖에도 "사람 사는 곳에는 못남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다"라든지, "사람 사는 곳에는 못남과 아름다움이 나란히 있다"라든지, "사람 사는 곳에는 못남과 아름다움이 따로 있지 않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못남이나 아름다움을 어떻게 여기는지에 따라 달리 적으면 되고, 우리 스스로 못남이나 아름다움을 어떤 눈길로 풀어내거나 보여주고자 하는지에 따라 알맞게 적으면 됩니다.

 

 내 마음길을 담아내는 말투요, 내 생각길을 보여주는 글투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대로 펼치는 말투요, 내가 꿈꾸고 바라는 대로 드러내는 글투입니다.

 

 ┌ 아름다움이 어디 있겠는가

 ├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찾겠는가

 ├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 …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 숫자만큼 온갖 말투가 있고 갖가지 글투가 있다고 느낍니다. 어느 한 가지 말투에 매인다든지 어떤 얄궂은 글투에 얽힐 까닭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살찌우는 말투를 찾고, 내 손으로 내 생각을 북돋우는 글투를 찾을 때가 가장 즐거웁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살아숨쉬는 내 목숨을 느끼도록 하는 말투가 되도록 애쓰고, 바로 오늘 하루도 튼튼히 내 삶 꾸리는 온몸을 깨닫도록 하는 글투가 되도록 힘쓰면 더없이 기쁘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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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10:22ⓒ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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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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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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