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대학가 해고바람... 시간강사 잔혹사

[보따리강사 이야기 16] 영남대 이어 고려대 강사들도 일인시위

등록 2009.08.12 12:01수정 2009.08.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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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사 강사이기 때문에 해고"
"4학기 연속 강의했으므로 해고"
"55세 넘은 고령자이기 때문에 해고"

이유도 가지가지다. 한 여름 대학가에 잔혹한 '해고바람'이 거세게 몰아닥치고 있다. 연구논문 작성과 다음 학기에 배정 받은 새로운 과목의 강의준비로 방학 중에도 시간을 쪼개 바쁘게 보내야만 하는 시간강사들에게 대학들이 '비정규직보호법'이란 미명아래 잇따라 해고 통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

해고바람으로 갈등과 반목의 골이 점점 깊어만 가는 양태다. "올 여름방학은 가장 잔혹한 방학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시간강사들의 볼멘소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영남대에 이어 고려대 비정규직 강사들의 일인 피켓시위가 시작됐다. 4학기 이상 연속 강의한 강사 88명을 방학 중에 학교가 해고한 때문이다.

"강사들 정규직 전환 요구할 수 있기 때문" vs "현실 전혀 모르는 소리"

a 고려대 강사들도 일인시위...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고대분회가 대학의 시간강사 부당해고에 맞서 11일부터 일인시위에 들어갔다.

고려대 강사들도 일인시위...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고대분회가 대학의 시간강사 부당해고에 맞서 11일부터 일인시위에 들어갔다. ⓒ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고려대분회


대학 측은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강사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해고 통보를 받은 강사들은 "근로기준법상 상근근로자는 주15시간 이상 강의를 해야 비정규직보호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실과 전혀 맞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강사들은 또 "비정규직보호법 빌미로 한 무더기 해고는 강사의 교육권 침해이자 학생의 학습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11일부터 '강사 88명의 해고 철회'와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을 위한 일인시위에 나섰다.

김영곤 한국비정규수노동조합 고려대 분회장은 "지난 10일 학교측과 만나 해고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철회할 것을 요구했지만, 학교는 이미 해고의 행정절차를 완료했고, 해당 강의에 수강신청을 한 학생의 양해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에 11일 낮 12시부터 대학 본관 앞에서 릴레이 일인 피켓시위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대학 비정규교수노조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낮 12시에 본관, 정경대 후문, 정문 지하철 입구에서 시위를 펼친다는 계획이다.


일인시위에 앞서 김 분회장은 11일 '고려대 강사 88명의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일인시위에 들어가며'란 호소문을 통해 "본인은 7월 8일 낮 고대로부터 해고 통보받았다"며 "학교에서는 '4학기 이상 연속 강의한 비박사 강사가 비정규보호법에 따라 정규직을 요구할 수 있고 본인은 비박사로 9학기 연속 강의하기 때문에 해고 한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는 호소문에서 "비정규보호법의 적용을 받으려면 주15시간 강의해야 하는데 그런 강사는 없다"며 "대학 강의를 연구 강의 지도로 3배수 적용한다는 고등법원의 판례만 있을 뿐, 대법원 판례는 없어 구속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 분회장은 또한 "비정규보호법을 적용해 해고하는 것은 잘못이며, 강사의 교육권 침해라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10일 교무처를 방문해 해고대상 181명 가운데 88명을 해고한 사실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강사문제는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풀어야 한다"며 "4학기 연속 강의는 학교와 학생의 필요에 따른 것이며, 이미 수강신청을 받은 상태에서 강사의 해고는 학생의 학습권 침해이기 때문에 해고는 철회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해고 강사들은 생계 때문에, 대학들은 강사 구하기 '비상'

a 계속 이어지는 대학가 피켓시위...  영남대 시간강사들의 피켓시위가 지난 7일로 13일째를 맞았다.

계속 이어지는 대학가 피켓시위... 영남대 시간강사들의 피켓시위가 지난 7일로 13일째를 맞았다. ⓒ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분회


이에 앞서 지난달 20일 대학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박사 부당해고 철회' 성명을 내고 2학기 시간강사 임용추천 규정철회를 요구하는 일인 릴레이 시위에 돌입한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는 지난 10일 '비박사 부당해고 철회 일인시위와 피켓시위 휴식'이란 제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영남대는 각 단과대학과 독립학부에 '2009학년도 제2학기 시간강사 임용 추천 요청 공문'을 보내 최근 4개 학기 연속 재임용자 중 강의시간 주 5시간 이상자, 박사 학위 미소지자, 만 55살 이상 고령자 등을 임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부당해고 철회를 주장하는 일인시위가 2주일째 계속 이어진 가운데 이 대학 비정규교수 노조측은 10일 "학교에서 비박사 부당해고를 일부 철회한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학교에서 안을 완전히 철회한 것이 아니라 부당해고 철회 일인시위와 피켓시위는 잠시 '쉼'이라고 표현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피켓시위가 나름대로 성과를 가져왔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초기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언론들도 최근에야 취재보도를 경쟁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 관계자는 "학교측과 계속된 협상을 통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다"면서 "지금의 결과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앞으로 보다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방학 중에 시간강사들의 해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교수 노조의 저항이 릴레이 일인시위로 이어지고 언론에 대학내부 갈등의 모습이 비쳐지면서 대학측 입장이 누그러지는 형태를 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일부 극소수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 대학들은 비정규교수 노조가 구성되지 않은 채 해고통지를 받은 강사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대학은 비정규직보호법을 내세워 경험 많은 강사들을 무더기로 해고하면서 당장 2학기부터 해고 강사들은 생계 때문에, 대학들은 강사 구하기에 비상이 걸린 형국이다.

한편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의결을 촉구하며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한 비정규직 강사들의 국회 앞 텐트농성이 이달 들어 700일째를 넘기는 등 교과부와 서울대, 이화여대 등에서도 학생과 학부모, 강사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사회적 관심은 냉담하기만 하다. 이들이 펼치고 있는 대학강사의 교원지위 법적 회복운동이 최근 각 대학의 일방적인 강사 해고바람으로 인해 희석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다음은 11일 김영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고대분회장이 일인시위에 앞서 보내온 호소문 전문이다.

[호소문] 고대강사 88명의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일인시위에 들어가며

본인은 7월 8일 낮 고대로부터 해고 통보받았다. 학교에서는 "4학기 이상 연속 강의한 비박사 강사가 비정규보호법에 따라 정규직을 요구할 수 있고 본인은 비박사로 9학기 연속 강의하기 때문에 해고 한다"고 했다. 본인은 "비정규보호법의 적용을 받으려면 주15시간 강의해야 하는데 그런 강사는 없다.

대학 강의를 연구 강의 지도로 3배수하는 고등법원의 판례만 있지만 대법원 판례는 없어 구속력이 없다. 비정규보호법을 적용해 해고하는 것은 잘못이며, 강사의 교육권 침해" 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같은 날 오후 본인은 55세 이상이라 해고를 철회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본인은 2009년 9월 7일부터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의결을 촉구하며 국회 앞 텐트 농성에 집중하느라고 강사 해고 문제를 소홀히 했다. 영남대에서 100여명이 해고돼 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분회가 7월 22일부터 일인시위를 계속하고,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전국적인 현상임을 알았다.

8월 10일 교무처를 방문해 해고 대상 181명 가운데 88명을 해고한 사실을 알았다. 유진희 교무처장에게 "현재 대학강사는 비정규보호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며 이를 빌미로 한 해고는 잘못이며 강사 문제는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풀어야 한다. 4학기 연속 강의는 학교와 학생의 필요에 따른 것이며, 이미 수강신청을 받은 상태에서 강사의 해고는 학생의 학습권 침해다"라며 해고의 철회를 요구했다. 교무처장은 "강사 해고 절차를 완료했고, 해당 강의에 수강신청을 한 학생에게는 양해를 받았다"면서 철회는 불가하다고 말했다.

강사는 1977년 유신독재에게 교원지위를 박탈당한 이래 법적 지위도 없고, 시간강의료는 주4.2시간에 연 487.5만원이다. 강사는 대학과 전임교수의 눈치를 보며 자기검열을 해 학문의 자유와 양심에 따라 강의할 수 없다. 이 제도 최대의 피해자는 학생이다.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의결을 촉구하며 국회앞 텐트 농성을 비롯해 국회(강사) 한나라당(강사) 교과부(참교육 학부모회, 고대민주동우회), 이화여대(대교협 회장 대학-이대생) 서울대본부(서울대생) 앞에서 일인시위중이다.

-이기수 총장은 비정규직보호법을 빌미로 4학기 이상 연속 강의한 비박사 강사 88명 해고를 즉각 철회하라!

-이미 수강신청을 끝낸 88명 교수(강사)의 해고는 대학생의 학습권 침해다!

-이기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은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에 동참하라!

      2009년 8월 11일
대학강사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고대분회(분회장 김영곤)
#시간강사 #부당해고 #고려대 #영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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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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