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락경'이라는 이름 석 자 안에는 기독교 교리뿐만 아니라 유불선과 우리의 민속. 민간 신앙. 민간요법이 함께 녹아들어 농축 발효돼 있다. 이러니 일부 근엄한 기독교 교단에서 그를 좋아할 턱이 있을까. 임 목사를 소개한 기사가 나가자마자 '그 양반 이단'이다. '사이비를 왜 소개했느냐'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혼자 혀를 차다가 임 목사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자, 역시나 그의 대답에 듣는 나까지 속이 후련해졌다.
"상관없어. 나 그 사람들한테 월급 받는 거 아니니까"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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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 이가서
▲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 이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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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 펴냄)는 인터뷰 모음집인데,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시골교회 임락경 목사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맺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잊고 있던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우연히 임락경 목사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삼인 출판사 펴냄)이란 책 소개 글을 <오마이뉴스>에 쓴 후 이 책의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에게 '사이비를 왜 소개했느냐'는 전화가 빗발쳤던 것처럼 '이단자의 진실성 없는 책을 왜 소개하는가?'의 쪽지를 몇 개 받았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몇몇 사람들의 이와 같은 비난의 쪽지는 그냥 한 사람의 저자로 생각하고 스치고 말았을 임락경이란 이름과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계기가 됐다.
다른 매체에서 임락경 목사, 혹은 화천 시골교회 이야기가 나오면 눈을 들이대고 읽었다. 이런지라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속 임락경 목사 이야기는 좀 더 특별하게 읽혔다. 반갑고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촌놈, 돌팔이, 전천후 농부, 정농회 회장, 저자 임락경의 시골교회를 엿보다
"나는 가끔 고기 안주 보면 술도 한잔 합니다. 예수님도 포도주 드셨는데 귀밝이술로 한잔 하는 게 뭐가 나쁩니까. 눈병에 안약을 많이 쓰면 귀가 어두워지는데, 우리 누룩으로 만든 동동주를 한잔 하면 귀가 뻥 뚫립니다. 그라고 남들이 욕할지 모르지만, 절간 불상 앞에서는 합장도 해요. 따지고 보면 종교가 다 한 뿌리이고 한 뜻인데 무엇 때문에 서로가 옳다고 다툽니까. 주변에 마침 교회가 있어 내가 목사가 됐을 뿐이지, 아마 곁에 절이 있었으면 스님이 됐을 거고, 성당이 있었으면 신부가 됐을 게요.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 책 속에서 임락경
임락경 목사는 10대 중반, 광주 '동광원'에서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소외받은 이들을 위한 길로 들어선 이후 결핵 환자, 실직자, 정신지체 장애인을 돌봐왔다고 한다. 고향 순창을 떠나 화천에 삶의 터전을 잡은 이유는 화천에서 병영생활을 했기 때문이란다.
1980년대 초, 15명의 정신지체장애인들과 시작한 시골교회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30명이 함께 산다. 떠돌이 장애인도 고향처럼 생각하고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에 '시골교회'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식 방법으로 살아도 건강이 넘친다'는 것이 임락경 목사의 지론이다. 때문에 시골교회 사람들은 우리 전래문화와 풍습을 철저하게 따른다. 돌로 집을 짓고 먹을 것은 모두 자급자족하는데, 농약이나 비료는 절대 쓰지 않는다. 병이 나도 우리의 민간요법에서 치료법을 찾는단다. 이런지라 교회식구들 대부분이 장애인인데도 치과 외에는 병원시설을 이용해 본 적이 없고, 20년 동안 장례를 딱 한 번 치렀을 만큼 이들의 삶은 건강하다고 한다.
임락경 목사가 정식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1986년이다. 사회적 약자들과 공동체를 이루다보니 사회 불만 세력으로 오인 받아 수시로 보안 당국의 사찰대상이 되곤 했는데, 외압 없이 편안히 복지시설을 이끌기 위해서는 목사라는 정식 간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목사가 된 이유가 이런지라 그가 바라보는 종교관은 보통의 목회자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교회도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들과 좀 많이 다르다. 교회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뾰족지붕과 밤하늘을 수놓는 커다란 십자가도 없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시골교회의 나무 십자가는 삽짝 밖 맨땅에 낮은 곳을 임하며' 서 있다. 주일예배는 돌아가면서 주관하는데, 목사인 그 역시 서너 달에 한 번 정도 돌아오는 제 순서에 주일예배를 주관한단다.
"임 목사는 지난 1997년부터 된장과 간장을 빚기 시작했다. 물론 교회 식구들이 먹기도 하고 판매도 하는 것으로, 된장과 간장을 통해 우리 콩의 맥을 잇기 위해서다. 1995년 가을, 메주를 쑤기 위해 회천 장터에 콩을 사러 가보니 우리 땅에서 재배한 재래 콩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임 목사는 이듬해 바로 인근 농가들과 계약해 우리 콩을 유기농 재매했다. 시중보다 1.5배 가격을 쳐 주니까 너도나도 콩을 심었고, 이렇게 해서 시골교회가 있는 광덕리에는 우리 콩 농사가 살아났다. 지금 장류 사업은 시골교회 장애 아동들의 어머니인 이애리 원장이 맡고 있다. - 책 속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이것저것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 일단 시작하고 실천하는' 시원시원함이 느껴졌다. 저자는 임락경 목사를 '농부도 이런 농부가 없고 촌놈도 이런 촌놈이 없다' '돌팔이' 임목사를 일러 세상의 이치를 돌파한 '돌파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등으로 표현하면서, 그와 시골교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뭉클해지도록 소개한다.
몇 년 전 그때, '진정한 종교인이다. 이런 종교인들이 조금만 더 많아져 등불 역할을 해준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훨씬 따뜻해질 것. 존경 한다'는 쪽지도 받았었다. 이후 임락경 목사님과 짧게 통화, 찾아뵙고 그 삶을 잠시라도 뵐 수 있는 기회까지 있었다. 그런데 당시 화천은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고, 갈 수 없는 핑계는 왜 그리 종종 생기던지.
내 사정이 이렇고 보니 임락경 목사와 시골교회 사람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들이대고 읽으면서 약속해놓고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지는 한편, 종교인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깊게 생각하게 하곤 했다. 그때 약속대로 찾아가 제대로 된 삶을 봤다면 지금 내 삶은 또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 않을까.
세상이 가난하고 쓸쓸할 때 더욱 빛나는 그들에게, 삶을 묻다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이야기들은 농민신문사에 발행하는 월간 <전원생활>에 '무늬가 있는 삶'이라는 코너로 연재(1999~)된 글들이라고 한다. <전원생활>은 새마을운동 시절에 인기 있었던 <새농민>의 맥을 이은 교양지이다.
▲"눈 떠 있는 한 계속 찍을 거요"라고 말하는 최민식 ▲규산질비료를 가져가라는 이장의 확성기 소리에 조각칼을 내려놓고 리어카를 끌고 나서는 이철수 ▲몇 년 전에 고인이 된 김영갑과 전우익 선생 ▲'어미 살모사를 자처한 불사조'란 제목으로 소개되는 조훈현의 지난날의 영광과 뿌리로서의 역할 ▲호수 막국수와 함께 춘천 3수라는 이외수의 지렁이처럼 살고 싶은 삶 ▲숲처럼 만나 숲처럼 나이 들고 있는 부부 식물 박사 이유미·서민환 부부 ▲건강한 먹을거리의 대명사인 원경선과 강대인·윤구병 ▲우리나라 최초의 위장취업자로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조화순 목사 ▲도법 스님과 두봉 주교 등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주인공 대부분은 워낙 유명하다. 그러니 혹자들은 이미 많이 알려진, 보나마나한 이야기들 쯤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매체들을 통해 대체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들과 좀 다르다. 저자가 이들을 찾아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엿보고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썼기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많고 워낙 살갑다고 할까.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이 경제 한파는 언제나 봄 눈 녹듯 녹으랴. 자영업자의 아내로 힘겹게 보낸 2009년을 마무리하는 심정은 "갈수록 힘들다"뿐,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는 초조한 연말을 맞은 내 마음에 봄볕처럼 따스한 햇살을 밝게 드리운 책이다. 누군가도 나처럼 이 책을 통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당시만 해도 경제 한파가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 뒤라 누구나의 마음 속에 근심이나 절망이 자리하고 있을 때였다. 물질만능주의가 답이 아닌 건 분명한데, 사람들은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맑은 물방울이었다. 흙탕물 웅덩이에 맑은 물이 방울방울 계속 떨어지다 보면 나중에 웅덩이가 맑아지듯, 혼탁한 세상에 맑은 물 한 방울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만나고 소개하는 게 삭막한 세상에 조금이나마 희망과 온기를 불어 넣는 일이 아닐까. 그런 의도로 시작한 게 '무늬가 있는 삶' 코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때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세상은 더 '탁하고 쓸쓸하고 가난해졌다.' 그래서 이 책이 지금에도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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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 삼인출판사
▲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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