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님 행차에 사흘 전부터 '들썩들썩'
세종시 민심수습, 20분으로 가능할까요?

정운찬 총리가 17일 방문한 사랑의마을 풍경

등록 2010.01.18 13:59수정 2010.01.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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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가 17일 연기군 소재 노인복지시설 '사랑의마을'을 방문하여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김학현

정운찬 총리가 17일 연기군 소재 노인복지시설 '사랑의마을'을 방문하여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김학현

"목사님, 저 000인데요. 내일(17일) '사랑의마을'에 손님 오는 거 아시죠?"

 

한 직원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한 말이다. 16일 토요일 아침 아침예배를 인도하고 나올 때 어렴풋이 어르신들에게 '높은 분'(그 분이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이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던 터라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런 때 높은 분은 군수나 충청남도에서 나오는 공무원이 대부분이었다. 난 또 그런 분이 오나 보다 생각했다. 직원은 다시 내게 부탁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근데요. 무선마이크가 필요해요. 무선마이크 좀 빌려주세요."

"…."

 

아직까지 무선마이크를 쓰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무선마이크는 할머니 중 한 분이 목사에게 쓰라며(좀 엄밀히 말하면 목사가 설교할 때 쓰라고) 교회에 헌납한 성구(聖具)다. 아무리 '높은 분'이라도 그렇게 헌물 한 그 분의 신앙을 봐서 내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쉽게 대답했다. '빌려줄 수 없다'고. 원래 거절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터라, 나로서는 그리 쉬운 대답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 직원이 내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의 성도이다 보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무선마이크만은…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몇 분의 연설 위해 굳이 무선마이크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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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정운찬 총리가 연기군 소재 노인복지시설 '사랑의마을'을 방문해 어르신들과 기념찰영을 하고 있다. ⓒ 김학현

17일 정운찬 총리가 연기군 소재 노인복지시설 '사랑의마을'을 방문해 어르신들과 기념찰영을 하고 있다. ⓒ 김학현

거절한 다른 이유도 있다. 아니 그것이 더 확실한 거절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누가 오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높은 분'이라고 할지라도 유선마이크가 있으니 그냥 쓰면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관에서 '높은 분'이라고 해서 국민인 우리들에게도 '높은 분'은 아니다. 차라리 공무원은 국민의 심부름을 하는 이가 아니던가. 그러니 나로서는 거기에 대한 거부감이 일 수밖에 없었다. 굳이 노인복지시설인 '사랑의마을'에 없는 무선마이크를 찾기까지 할 게 뭐냐는 생각에 모질게 빌려줄 수 없다고 거절한 터다.

 

거절당한 직원은 그 이유를 모른 채 괴팍한 목사라고 원망을 했을 터다. 그러나 내 호기는 깡그리 무너졌다. 아침에 보니 이미 '사랑의마을' 강당에는 어디선가 수소문하여 대령해 놓았는지 무선마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것도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제품으로. '이게 관의 위력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17일 일요일 10시에 정운찬 총리가 도착한다는 전갈을 받은 터라 오전 9시에 시작되는 주일예배를 다른 때보다 서둘러 시작하여 일찌감치 끝냈다. 그러나 정 총리는 정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직원이 20~30분 늦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15분 정도 늦게 '사랑의마을'에 도착한 정 총리는 어르신들이 기거하는 숙소를 라운딩한 후 곧장 강당으로 와 이미 운집해 있는 어르신들에게 말을 했다. 이 자리에서 정 총리는 "누워계신 어르신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문을 연 후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당부로 간단히 말을 마쳤다.

 

마이크를 잡은 시간이 3분여, 어르신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담소한 시간이 5분여, 라운딩한 시간까지 잡아도 총 20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홀연히 다음 장소로 떠났다. 오전11시에는 조치원의 한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이후에는 기자들과의 간담회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분 방문에 사흘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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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마을'을 방문한 정운찬 총리가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 김학현

'사랑의마을'을 방문한 정운찬 총리가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 김학현

이 20분 방문 때문에 이틀 전인 15일부터 '사랑의마을'로 올라가는 마을길에 경찰이 즐비했다. 난 아내에게 "정운찬 총리라도 오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나눴었다. 굳이 정운찬 총리라고 생각한 것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이후 그가 충청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이그, 총리가 할 일없이 여긴 왜 와요?"했다.

 

그렇게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우리 부부가 나눴던 대화는 '사랑의마을'에서 현실이 됐다. 정운찬 총리가 온 것이다. 17일 오전 10시에 정운찬 총리가 온다는 얘기를 직원으로부터 확실히 들은 것은 전날인 16일 저녁에서였다. 그 직원의 말을 듣고야 그렇게 사흘 전부터 경찰들이 '사랑의마을' 주변도로에서 떨고 서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방문 전날인 16일부터 총리실의 관계자들과 연락을 취하며 무전기를 든 사람들(사복경찰로 추정)이 왔다갔다 분주했었다. 그러더니 당일인 17일에는 벌써 아침 7시경부터 그들의 모습이 보였고, '사랑의마을'의 안팎에 포진하고서 경계를 섰다.

 

경찰들이야 그게 그들의 일이니 그렇다 치고, '사랑의마을' 직원들과 어르신들도 사흘 전부터 부산했다. 평소에 그리도 치우지 않았던 구석구석이 말끔히 청소되는가 하면, 직원들이 휴일이라 안 나오는 일요일인데도 나와 정 총리를 맞았다. 그러더니 밀물처럼 정 총리 일행이 빠져 나가자 직원들도 근무인원만 빼고는 특근을 마치고 밀물처럼 빠져 나갔다.

 

'높은 분'(이는 어르신들의 표현일 뿐이다)의 20분 행차는 이렇게 말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원해서 온 것도 아니고, 그가 원해서 온 일인데도 이리 부산하게 움직여야 했던 숨가빴던 '사랑의마을'의 사흘간.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사랑의마을' 길 넓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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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정운찬 총리가 '사랑의마을'을 방문하던 날 '사랑의마을' 바깥풍경, 버스 두 대와 무수한 기자차량, 경찰차량이 동원되었다 ⓒ 김학현

17일 정운찬 총리가 '사랑의마을'을 방문하던 날 '사랑의마을' 바깥풍경, 버스 두 대와 무수한 기자차량, 경찰차량이 동원되었다 ⓒ 김학현

정 총리가 짧은 연설을 마치고 강단 아래로 내려와 몇몇 어르신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물었다.

 

"뭐 필요한 것 없으세요. 부탁하실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들어오는 입구 길을 넓혀주세요. 길이 좁아 병원에 가려도 그렇고 불편합니다."

 

라천복 어르신이 이렇게 대답했다. 정 총리는 수행하고 있는 관계자에게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이어 정 총리는 다른 부탁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지만 더 이상 부탁한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라천복 어르신은 내게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다며 아쉬워했다.

 

"목사님,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까먹었어요. 갑자기 총리께서 물으시는 바람에…. 숙소에서 예배당으로 오는 길을 지붕으로 덮어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겸연쩍은 웃음을 흘렸다. 모인 모든 어르신들이 덩달아 한 바탕 웃었다. 정말, '사랑의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넓혀질까. 그렇게 된다고 하면 '사랑의마을'에는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박정희 정권 때가 자꾸 생각나기 때문이다. '높은 분'의 한 마디가 법이 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세종뉴스 등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학현 기자는 충남 연기군에 있는 연서감리교회 담임목사로, 노인복지시설 '사랑의마을'을 세우고, 어르신들의 신앙을 지도하고 있다.

2010.01.18 13:59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 세종뉴스 등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학현 기자는 충남 연기군에 있는 연서감리교회 담임목사로, 노인복지시설 '사랑의마을'을 세우고, 어르신들의 신앙을 지도하고 있다.
#정운천 #국무총리 #사랑의마을 #세종시 #복지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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