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먹으면 개 되는 후배? 이 학교 안 갈래"

신입생 카페에서 기겁한 큰 딸, 무슨 일인가 했더니

등록 2010.01.28 21:29수정 2010.01.2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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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대학별로 합격자 발표가 속속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10학번 새내기를 위한 학과별 카페 게시판 같은 것들이 문을 열었다. 합격을 한 새내기들은 이곳 게시판에 들어와 인사를 하고, 선배들은 축하글을 올려준다. 80년대 초반 학번인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사이버축하'의 장이다.

난 기껏해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통해서 학교 관계자들과 학과 소개, 서클 소개와 선배들이 새내기들을 위해 준비한 노래와 율동 정도만 보고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은 합격생들을 위한 행사에 유명 연예인들까지 대거 동원되어 축하를 한다니 격세지감이다.

대학 신입생 환영카페 들어갔다 질겁한 이유

지원한 대학 2곳에 합격한 딸. 그중 한곳의 학과 '싸이'에 들어가 새내기들의 소개와 축하글이 벌써 게시됐다며 신기해하더니만 "나, 이 학교 안 갈까 봐"한다. 이게 뭔 소린가 해서 게시판을 들여다 보니 선배들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답하는 식인데 '이름, 성별, 생년월일, 사는 곳, 연락처, 주량'이 주된 내용이다. 한 새내기가 올린 글을 보자.

"이런 선배를 원합니다. 술 자주 마시는 선배님을 원합니다. 슬픈 생일을 보내시는 선배님을 원합니다. 이런 후배and동기가 되겠습니다. 술만 먹으면 개가 되는 후배가 되겠습니다."

"주량은 빼지 않고 주시는 대로 먹을 자신 있습니다. 선배님들의 마음에 들도록 소주 잘 먹고 잘 놀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재밌으시고 착하시고 이쁘시고 멋지신 선배님을 원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 ~ ~"

해마다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환영회에서는 음주 신고식과 같은 구태가 남아 있고, 새내기 오리엔테이션과 환영식에서 과음 또는 폭력 등으로 각종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온갖 고생을 하며 뒷바라지하여 대학에 보냈더니만 환영회의 과음으로, 또는 폭행으로 불상사를 당한다면 얼마나 기가 찰 일인가.


작년에도 강원지역에서 열린 모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에 만취한 대학생(19세, 1학년)이 숙소 베란다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만취한 학생이 H콘도의 12m 높이 2층 베란다에서 떨어져 숨진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술. 개인에게도 부모에게도 이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가?

또 25일자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미 서울 소재의 한 대학에서 09학번 남학생이 신입생 환영모임에서 학과사무실과 택시 등에서 여자 신입생들의 몸을 더듬고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한다. 해당 학생은 게시판을 통해 "술에 취해 잘못된 일을 저지른 데 대해 사죄한다"며 휴학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려 성추행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고 한다. 20여 명의 학생들이 신입생 모임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술과 권위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 개인의 성향만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권하는 사회, 술 권하는 문화가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언론보도에서는 이런 내용에 '명문'이라는 것을 강조했지만, 명문이 아니었다면 가십거리도 안될 내용이라는 것인지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대학생 새내기 폭음, 통과의례가 아니다

그런데 여전히 새 학기가 시작이 될 즈음이면, 대학가에서 음주(폭음)가 마치 통과의례인양 행세를 하고 있으니 학부모 입장에서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니다. 결국, 딸은 새내기 합격을 축하하기 위한 싸이 게시판에 들어갔다가 그 학교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보았고, 다른 대학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물론 그 학교라고 별다를 것 없겠지만,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하는 학부모 입장에서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의 제도교육은 오로지 입시위주의 교육이었고, 그 마저도 공교육의 기능을 상실해서 사교육시장에 입시교육의 책임을 떠넘겼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되기 전에도 많은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야말로 수업 일수를 맞추기 위해 출석시키는 일 외에는 없었다.

대학에 가든 못가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성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에 대한 교육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이제 겨우 입시지옥에서 벗어난 아이들을 또다시 경쟁체제로 내모는 사교육이 있었을 뿐이다.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토익이나 토플 학원을 다녀야 하고, 대학에 들어감과 동시에 또다시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이제 미성년의 껍데기를 벗고 성인이 되어 첫 번째로 만끽하는 자유로운 대학생활에도 사실 낭만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대학의 음주문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으레 대학에 들어가면 선배는 술을 강권하고, 후배는 어쩔 수 없이 마셔야하는 음주문화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큰 딸의 선택은?

결국 대학 두 곳 중에서 고민하던 큰 딸은 다른 대학을 선택했다. 아마도 새내기들을 환영한답시고 만들어진 게시판에 그런 글이 없었다면 큰 딸은 그 학교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제 막 새내기들이 자기의 각오(?)를 쓴 글이고, 어차피 과장해서 자기를 인상적으로 심어주려 쓴 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글들이 회자되기까지의 과정들을 살펴보면 건전하지 못한 대학가의 술 문화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새내기들에게 강제로 술을 권하는 문화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문화다. 그것은 대학뿐 아니라 다른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일반 회사에서의 영업 상무는 술 접대를 전담하는 업이라는 인식을 하는 사회가 되었으며, 술을 잘 마시지 못하면 진급에도 영향을 받는 술에 관대한 나라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요즘은 많이 개선된 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가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오리엔테이션이나 새내기 환영식, MT 등에서 음주와 관련된 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이전보다는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이제 막 미성년에서 성년이 된 새내기들에게 과음과 폭주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대학가 오리엔테이션이나 신입생환영회에서 일어나는 과음으로 인한 사고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더는 언론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환영식 또는 MT에서 과도한 음주로 인한 불상사가 가십거리로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주문화 #새내기 #명문대 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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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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