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그때를 아시나요] 껌에 얽힌 추억

등록 2010.03.04 14:34수정 2010.03.0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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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껌광고 196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껌광고는 19070년대에 들어서는 경쟁적으로 신문광고를 통해 소개된다.

껌광고 196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껌광고는 19070년대에 들어서는 경쟁적으로 신문광고를 통해 소개된다. ⓒ 경향신문

쓸데없는 소리를 빗대어 '껌 씹는 소리'라 하고, 터무니 없이 적은 금액을 '껌값'이라 하는 등 흔히 껌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껌은 어린시절 우리와 가장 가까이했던 친구이자 많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60~70년대 초반에 학창시절을 지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껌에 관한 추억이 있으리라. 요즘처럼 자극적이고 맛있는 먹거리도 없고 무엇이든 귀하던 시절, 껌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려보니 살며시 웃음이 나온다.

한 번만 씹고 그냥 버리기 아까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벽에 붙여 놓았다 씹곤 하던 껌. 풍선이 잘 불어지는 풍선껌이 하나 생기면 입안에 몇개씩이나 한번에 털어넣고 하루종일 우물거린다. '푸후~' 풍선을 불어대며 동네를 몇바뀌나 돌며 또래들의 부러움을 산다.

밤이 되어도 걱정이 없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눕기까지 애지중지 입안에 모시고 있던 이미 단물 빠진 풍선껌은 머리곁과 가장 가까운 방안의 벽에 떡하니 붙여두고 잠이 든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채 떠지지 않은 눈으로 벽에 붙은 풍선껌을 더듬거리며 다시 입에 넣는 일이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a 껌 포장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하고 예쁜 디자인을 자랑했던 껌종이는 여학생들의 책갈피로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수집대상으로 최고였다.

껌 포장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하고 예쁜 디자인을 자랑했던 껌종이는 여학생들의 책갈피로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수집대상으로 최고였다. ⓒ 해태제과, 롯데제과


행여 떨어질새라 전날밤 너무 세게 눌러 붙여두었다면, 아무리 조심 조심 떼어내도 벽지가 달려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좋다. 이미 벽지와 한몸이 된 껌은 오히려 오동통하게 더 살이 오른다는 사실.

더러는 잠자리에서 머리맡에 너무 가까이 붙여놓았다가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머리를 잘라내는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또, 동생과 나란히 붙여놓은 껌을 동생이 착각하여 잘못 떼어갔을 때의 패배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a 우리들은 껌을 얼마나 씹었나? 연도별 껌소비량(1976년6월14일 동아일보)

우리들은 껌을 얼마나 씹었나? 연도별 껌소비량(1976년6월14일 동아일보) ⓒ 동아일보

"흑흑... 내 껌이 단물이 조금 덜 빠지고 크기도 더 컸는데..."

단맛이 빠진 껌은 신기하게도 다음날 아침 다시 씹으면 단맛이 다시 살아나는 기이한 경험도 맛본다. 실제로 단맛이 살아나는지 느낌이 그랬는지는 관계없다. 단맛이 되살아나는 멋진 기분이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씹었던 껌은 새 껌이 생길 때까지 다시 밤이면 벽에 붙여 놓았다가 이튿날 아침에 살며시 떼어서 씹는 방법으로 며칠을 두고 씹었다. 껌이 없어서 그런 즐거움마저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밀을 씹으면서 껌을 씹는 기분을 내기도 했다. 또, 나무 잎사귀를 한참 씹으면 나중에는 제법 질겅질겅 껌을 씹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아~아~아~~"

라디오와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껌 광고 CM송은 전국민의 최고 애창곡이었다. 아마도 당시의 가요톱텐 1위곡보다 더 인기가 좋았으리라.  

얼마나 껌의 인기가 좋았는지 연도별로 살펴보니 1971년에는 30억개(약9,000톤)를 소비하던 것이 73년에는 약40억(약13,000톤) 그리고 75년에는 50억개(15,000톤)로 늘어난다.

다양하고 예쁜 껌종이는 수집 열풍을 불렀고 여학생들의 책갈피로 단연 인기였다. 또 손재주가 있는 소녀들은 껌 포장지와 은박지를 이용하여 방석도 만들고 컵받침도 만들고 그야말로 껌은 포장지까지 버릴 것이 없었다.

70년대부터는 담배를 흉내 낸 시가껌이 등장하고, 10여페이지 분량의 아주 작은 만화가 들어있는 만화껌과 판박이가 들어있는 판박이 껌도 선보인다.

a 껌 경품당첨 60년대말부터 껌의 인기에 힘입어 고가의 경품경쟁이 시작되었다.(1968년4월16일 경향신문)

껌 경품당첨 60년대말부터 껌의 인기에 힘입어 고가의 경품경쟁이 시작되었다.(1968년4월16일 경향신문) ⓒ 경향신문

당시 가출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일은 껌팔이. 자의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불량배들에게 걸려 온종일 껌을 팔아 상납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껌팔이는 당시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단골 기사 거리였다.

껌의 폭발적인 인기와 대중화에 힘입어 신문광고를 통해 거액의 '경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때 껌은 우리의 가장 친숙한 친구였다. 

요즘은 많이 풍요로워졌다. 아이들은 부족함을 잘 모른다. 씹던 껌을 벽이나 책상 밑에 붙여 놓고 하얀 껌이 시커멓게 변하도록 씹었고, 그것도 아침에 먼저 일어난 사람이 떼어먹으면 임자였던 전설같은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흥미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가끔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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