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88) 동상이몽

[우리 말에 마음쓰기 879] '동상이몽同床異夢 중이었다' 다듬기

등록 2010.03.16 13:25수정 2010.03.1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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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상이몽同床異夢

..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가 동상이몽同床異夢 중이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참담하다 ..  <곽아람-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아트북스,2009) 103쪽


"중(中)이었다는 현실(現實)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기분(氣分)은"은 "-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느낌은"이나 "-에 허우적거리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내 마음은"으로 다듬어 봅니다. '참담(慘澹)하다'는 '끔찍하다'나 '더럽다'나 '괴롭다'로 손질해 줍니다.

 ┌ 동상이몽(同床異夢) : 같은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    같이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각 딴생각을 하고 있음을 이르는 말
 │   - 각자 꿍꿍이속들이 있어 서로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
 ├ 동상이몽同床異夢 중이었다는
 │→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는
 │→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는
 │→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는
 └ …

보기글을 곰곰이 살펴봅니다. 첫머리에는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적습니다. 곧이어 '동상이몽'이라는 네 글자 한자말을 적고, 잇달아 한자로 '同床異夢'을 달아 놓습니다. 한글로만 '동상이몽'을 적어 놓으면 알아볼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까요. 글멋을 부리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이렇게 한자를 밝혀 주어야 알맞고 올바른 글쓰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첫머리는 그저 우리 말로 "같은 꿈을 꾸고 있다"로 적습니다. '동몽'도 '동몽同夢'도 '同夢'도 아닌 "같은 꿈"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르게 꾸는 다른 꿈이라 한다면, 말 그대로 "다른 꿈"이라 적어야 알맞고 올바르지 않으랴 싶습니다. '동상이몽'만 따로 한자말로 적을 까닭이 없고, 뒤에 한자를 따로 덧달 까닭이 없습니다.

이 글을 쓴 분은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입니다. <조선일보>는 초등학교 정규 수업으로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요즈음 들어 다시 꺼내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당신 스스로 몸담고 있는 신문사 목소리에 발맞추어 사람들한테 '한자쓰기'를 가르치거나 보여주고 싶었을는지 궁금합니다. 당신 스스로 먼저 '한자쓰기'는 이렇게 하면 된다고 본보기가 되려고 했을는지 궁금합니다. '동상이몽'이라는 낱말은 한글로만 써서는 안 될 말이요, 한자를 나란히 적어야 할 말이라고 여겼으리라 봅니다. '동상이몽'이나 '同床異夢'을 모르는 사람은 당신이 쓴 글을 읽을 눈높이가 안 된다고 여겼겠구나 싶습니다.


 ┌ 서로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
 │→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 서로 다른 뜻을 품고 있다
 │→ 서로 다른 속셈을 노리고 있다
 └ …

예부터 글이란 자랑이나 내세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글이란 이 글 한 줄을 쓰는 사람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발자국이라고 했습니다. 글에는 글쓴이 삶이 고루 담기며, 글쓴이가 바라보는 앞날과 꿈이 고이 깃든다고 했습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과 같이 글을 쓰는 이분한테는 어떤 삶이 있고 어떤 넋이 있으며 어떤 꿈이 있으려나요. 사람들이 손쉽게 받아들이며 널리 헤아릴 만하게 글을 쓰지 않는 당신은 어떤 발자국을 남기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이웃을 두고 있으려나요.


우리들은 다 다른 사람이니 다 다른 꿈을 꾸고 다 다른 길을 걷습니다. 글쓴이는 한자를 아무렇지 않게 톡톡 내뱉으며 글을 쓰는 길을 걸을 테고, 초등학교 아이들한테든 어린이집 아이들한테든 한자쓰기를 해야 한다고 외치는 길을 걸을밖에 없겠지요. 한자쓰기를 비롯해 '영어쓰기'도 즐거이 할 터이며, 이 나라 사람이라면 마땅히 알차고 알맞게 해야 할 '한글쓰기'하고는 동떨어져 있겠지요.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하고는 멀리 떨어지고, 한국땅에서 지내면서 한국글하고는 등을 돌립니다. 우리 얼을 북돋우지 못하고, 우리 넋을 가다듬지 못합니다.

 ┌ 같은꿈 / 한꿈
 └ 다른꿈 / 먼꿈

신문사 기자 한 사람만 탓할 노릇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 나라 말글학자들은 이 나라 말글을 옳고 바르고 슬기롭고 싱그럽게 키우지 못해 왔습니다. 아직까지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제대로 된 틀이 서 있지 못하여 온통 예외투성이입니다. 외국글을 적는 법 또한 슬기로운 잣대가 없이 저마다 다 달리 쓸 뿐 아니라, 일본글을 적든 프랑스글을 적든 포르투갈말을 적든 영어를 적는 투대로 틀을 짜 놓았습니다.

국사사전과 인명사전에 올릴 옛날 한문과 한자말을 국어사전에 버젓이 싣기도 합니다. 중국사람 이름과 서양사람 이름이 국어사전에 꽤 많이 실려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즐겨쓰거나 살려쓰는 낱말은 제대로 안 실려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말글로 우리 새 낱말을 지어서 국어사전에 새롭고 알차게 담는 그릇이 튼튼히 서 있지 못합니다. 거의 언제나 '일본을 한 다리 걸쳐 들어오는' 한자말이기 일쑤이거나 '영어이든 서양말이든 고스란히 쓰는' 말투이기 일쑤입니다.

같이 꾸는 꿈이라면 '같은꿈'일 터이나 이와 같이 한 낱말을 새로이 짓지 않을 뿐더러, 다르게 꾸는 꿈인 '다른꿈'을 새삼스레 짓지 않습니다. 말틀을 좀더 살피며 '한꿈(여럿이 같거나 비슷하게 꾸는 꿈)'이나 '먼꿈(여럿이 저마다 다 다르게 꾸는 꿈)'처럼 얼마든지 우리 깜냥껏 새말을 일굴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새말을 일구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새말 하나 일구었어도 새말로 받아들여 국어사전에 싣거나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고 함께 쓰기까지는 퍽 힘듭니다. 오늘날 우리들한테는 '국어사전에 안 실려 있으면 한 낱말로 여길 수 없다'는 생각이 얄궂게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 옛꿈 / 새꿈 / 푸른꿈 / 하얀꿈 / 검은꿈
 ├ 개꿈 / 돼지꿈 / 범꿈 / 용꿈 / 고래꿈
 └ 사랑꿈 / 믿음꿈 / 나눔꿈 / 어깨동무꿈

새롭게 꾸는 꿈이기에 '새꿈'이고, 지난날에 꾸던 꿈이라서 '옛꿈'입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 국어사전에는 '옛꿈' 하나만 실리고 '새꿈'은 실리지 않습니다. 마땅히 두 가지 꿈을 나란히 다루어야 하지만, 두 가지 꿈을 나란히 다루지 못하는 국어사전입니다. 개꿈과 돼지꿈처럼 범꿈이나 고래꿈을 꿀 수 있습니다. 젊거나 어린 나날에 앞으로 이루어 가고 싶은 일을 헤아리면서 '푸른꿈'을 꿀 수 있습니다. 온누리를 아름답고 사랑스레 돌보고 싶은 '하얀꿈'을 꿀 수 있고, 내 밥그릇만 붙잡으려는 '검은꿈'을 꿀 수 있습니다. 사랑을 이루고픈 '사랑꿈'이라든지 이웃사랑이나 평화나 평등을 사랑하며 '어깨동무꿈'을 꾼달지 '평화꿈'이나 '평등꿈'을 꿀 수 있습니다.

저처럼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책꿈'을 꿉니다. 글쟁이들은 '글꿈'이요 그림쟁이들은 '그림꿈'이며 사진쟁이들은 '사진꿈'입니다. 술꾼은 '술꿈'이고 집살림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살림꿈'을 꿀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꿈꾸는 사람이 되면서 우리 말과 넋과 삶 모두 곱고 빛나는 꿈결로 부드럽고 넉넉하게 가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부터 꿈꾸는 사람으로 우뚝 서면서 내 동무와 이웃 누구나 푸르고 맑으며 싱싱한 꿈자락 하나를 붙잡도록 손을 맞잡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고사성어 #상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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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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