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범국민장, 지자체 지원 없어 일일주점 열어

"마산의 아들이라더니 지자체 무관심"... 11일 오후 마산 중앙부두서 범국민장 거행

등록 2010.04.08 09:10수정 2010.04.0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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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가 국가기념일이 되었기에, 50년 만에 '김주열 열사 범국민장'을 하는데 당연히 경남도나 마산시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라 봤다. 그런데 한 푼도 없다. 그야말로 '범국민장'답게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주점을 한다. 그런데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분이 1000명 분량의 도시락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정말 고맙다."

7일 저녁 경남 창원 성산종합복지관 강당.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백남해 대표(마산)와 '4·11 민주항쟁 50주년 행사 준비위원회' 김영만(66) 위원장이 털어놓은 말이다. 오는 11일 마산 중앙부두에서 열리는 '민주수호 정신계승 김주열 열사 범국민장'을 앞두고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주점이 열린 것이다.

죽어서 '마산의 아들' 된 김주열, 왜 지자체 지원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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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의 고향 선배인 하용웅(앞 오른쪽)씨와 김영만(맞은편) '4.11 민주항쟁 50주년 행사 준비위원회' 위원장이 7일 저녁 창원 성산종합복지관에서 열린 "김주열 열사 50주기 범국민장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주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김주열(1943~1960) 열사는 1960년 마산상고에 입학하여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실종됐고 이후 사망한 채로 발견되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인물이다. 당시 경찰은 시신을 탈취하다시피 해 고향인 남원으로 가져가 장례를 치렀다.

추모사업회는 경남도청과 마산시청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못한 속에 '범국민장'을 준비하고 있다. 도시락과 펼침막, 무대 설치 등 총 5000여만 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영만 위원장은 범국민장에 앞서 '일일주점'을 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야말로 기금 마련을 위해서이며, 홍보 목적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범국민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10년 전부터 해왔고, 구체화하기 시작한 때는 올해 1월부터다. 그 때 3·15의거를 국가기념일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높았다. 김주열은 남원에서 태어났지만 죽어서는 마산이 아들이 되었다. 다른 지역에서 성금을 보태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나서야 할 경남과 마산에서는 그렇지 않다."

김 위원장은 범국민장을 준비하며 김태호 경남지사와 황철곤 전 마산시장을 만났던 일화를 소개했다.


"면담 신청을 해서 만났다. 범국민장에 도지사와 시장이 와서 추도사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식순에도 넣어 놓았다. 3·15의거가 국가기념일이 되었기에 그렇고, 경남도와 마산시가 늘 3·15를 자랑해 왔지 않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당연하다고 봤다. 도지사와 시장을 각각 면담하는 자리에서 관련 부서 공무원이 배석했는데, 너무 적극적이었다.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내용을 알고 있었고 적극 도와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

"무슨 연유인지 대충 짐작이 가지만 말하지 않겠다. 도지사는 범국민장이 열릴 무렵 외국 출장 중인 것으로 안다. 부지사가 추도사를 대독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경남도 담당자는 선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부지사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이해가 안 된다."

"실무자가 며칠 전에 공무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 공무원이 김주열이 정부로부터 받은 '열사증'이 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실무자가 '국립묘지인 4·19와 3·15묘지에 묘소가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도와 주기 위해 근거를 찾으려고 그렇게 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주열 범국민장'이 '불법 장례'가 아니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종의 '시민장' '사회장'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공무원이 '열사증'이 있느냐고 물을 수 있느냐 말이다."

김영만 위원장은 "그래도 행사 준비는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펼침막도 내걸고, 장례식에 올 조문객들을 그냥 보낼 수 없기에 도시락도 주문했으며, 시신 인양지에 무대도 설치하고 있다.

"그야말로 국민성금 형식으로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행사가 끝나고 나면 외상이 남을 것 같다. 열사의 후배인 용마고(옛 마산상고) 학생들도 오고, 서울에서 김주열 열사의 가족들이 온다. 그냥 보낼 수 없어 도시락도 주문하고 있다. 아마도 도시락은 1500개 가량 들어갈 것 같다. 추모 공연할 단체한테 공짜로 해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는데 걱정이다."

도시락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이야기꽃 핀 일일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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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는 7일 저녁 창원 성산종합복지관에서 '범국민장 기금 마련 일일주점'을 열었었다. 백남해 회장(오른쪽)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 윤성효


다행히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사람이 도시락 1000개를 책임지겠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생수를 상당량 협찬 받아 갖고 온다고 했다는 것.

"그래도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인데 그냥 보낼 수 없어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그 비용이 만만찮다. 1개에 6000원짜리 도시락이다. 걱정하고 있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분이 도시락 1000개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부가가치세까지 포함하면 660만원 정도다. 지역 사람이라고 한다. 또 어떤 분은 생수 200개를 갖고 온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범국민장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금을 보내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정말 고맙다."

이날 일일주점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용웅(69)씨와 박홍기(60)씨가 김주열 열사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하씨는 김주열 열사와 같은 고향 출신으로 옛 마산상고를 나왔다. 김주열 열사가 마산상고에 원서를 넣게 된 인연도 하씨의 권유 때문이었다. 하용웅씨는 50년 전에 치른 김주열 열사의 장례를 기억하고 있었고, 박홍기씨는 몇 해 전 남원을 방문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주열이 매장할 때 기억이 생생하다. 대개 장례를 치르면 시신은 깨끗하게 닦아서 염을 하는데, 그 때 주열이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체를 확인했는데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고 나서 50년이 흘렀다. 창원에 살았지만, 추모사업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참여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고통스럽다. 50년 만에 범국민장을 한다는데, 저라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나왔다" (하용웅).

"아마 5~6년 전일 것이다. 그 때 고 이선관 시인이 살아 계셨을 때다. 이선관 시인도 김주열 열사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대개 장례를 하면 염을 하는데, 삼베를 쓴다. 중국산도 많았지만 안된다고 해서 국산으로 삼베를 구입해서 남원으로 갔다. 그 삼베를 열사의 영전에 바쳤던 기억이 난다"(박홍기).

이날 '일일주점'에 나온 김유태(24·용마고 졸업)씨는 "김주열 열사는 선배다. 그런 자랑스런 선배를 둔 후배로 늘 뿌듯하게 생각해 왔다. 범국민장이 열린다고 해서 참여하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범국민장은 오는 11일 오후 1시부터 김주열 열사의 시신 인양지인 마산 중앙부두에서 열린다. 추모 공연 등 행사를 연 뒤, 운구행렬은 마산도립병원-3․15의거탑-남성동파출소-창동-북마산파출소-용마고까기 약 3km 구간을 거리행진 한 뒤 차량으로 남원까지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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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욱 민주노총 경남본부장과 이종엽 창원시의원 등이 3.15의거 5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국립3.15민주묘지에 있는 김주열 열사의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 윤성효


#김주열 열사 #범국민장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3.15의거 #4.19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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