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국민 가슴에 '노무현'을 심었나?

봉하마을 순례기

등록 2010.05.24 14:30수정 2010.05.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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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꿈꾸던 세상'의 체험 학습장

 

이번 봉하마을 순례는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와의 이별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여정이었습니다.

 

석가탄신일이 끼여있는 연휴 첫 날, 인파가 몰려들 것을 우려해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서 제법 이른 아침에 봉하마을에 당도했건만 벌써 그곳은 노무현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댈 자리가 마땅치 않아 고생하다가 겨우 차에서 내리고 보니 마을 가득히 '바보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내 마음 속의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적힌 걸개그림을 보고 알 수 있는게 아닐지라도 이곳을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대통령은 여전히 노무현뿐임을 느낄 수 있었고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a 추모관 앞의 걸개그림 방문자들은 '내 마음 속의 대통령'이란 표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추모관 앞의 걸개그림 방문자들은 '내 마음 속의 대통령'이란 표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 이래헌

▲ 추모관 앞의 걸개그림 방문자들은 '내 마음 속의 대통령'이란 표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 이래헌

a 추모관 앞의 참배객들 입구에 전시된 소품들은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들이 표현되었다.

추모관 앞의 참배객들 입구에 전시된 소품들은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들이 표현되었다. ⓒ 이래헌

▲ 추모관 앞의 참배객들 입구에 전시된 소품들은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들이 표현되었다. ⓒ 이래헌

봉하마을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현재 대통령의 강압적 권위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역이거나 나아가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이 직접 통치하는 독립된 공화국처럼 느껴졌습니다.

 

비좁은 마을에 차량과 인파가 몰려들어 다툼과 시비가 일 법도 하건만 다툼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많은 인력을 동원해 방문자를 통제하는 것이 아님에도 최소 인원의 안내만으로 차량은 차량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용케도 질서를 유지하고 었습니다. 그 곳에 체류하는 시간 동안 단 한건의 경적소리도, 그리고 다툼으로 인한 단 한건의 얼굴 붉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정권에 반대하는 절반의 국민을 적대시하며 걸핏하면 사법 처벌을 들먹이며 국민을 위협하고 핍박하는 정권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봉하마을은 노무현이 살아생전 꿈꾸던 세상, 아마도 이처럼 모든 국민이 과한 욕심으로 남을 해치지 않으며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그가 죽음으로써 그 곳을 찾게 된 사람들에게 체험적으로 학습시켜 주는 커다란 학습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산 명박이 죽은 무현을 불렀다

 

"왜 노무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처럼 검찰, 경찰을 장악하여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오늘날 이렇게 억울하게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일행 중 한 동료가 던진 화두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권위를 타파하는 모범을 보이면 이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어 후임 대통령이 감히 이를 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땅의 뻔뻔하고 탐욕스런 부패세력이 모범에 감동받아 그 통치방식을 관례로 존중할 것이란 생각은 사람 본성의 선함을 과하게 믿은 순진한 발상이었다는 생각이에요."

 

a 바보노무현 흑백 사진 앞에서 눈시울을 적시던 여성 참배객

바보노무현 흑백 사진 앞에서 눈시울을 적시던 여성 참배객 ⓒ 이래헌

▲ 바보노무현 흑백 사진 앞에서 눈시울을 적시던 여성 참배객 ⓒ 이래헌

a 모녀의 참배 이른 아침임에도 어린 자녀를 동반한 참배객이 적지 않았다.

모녀의 참배 이른 아침임에도 어린 자녀를 동반한 참배객이 적지 않았다. ⓒ 이래헌

▲ 모녀의 참배 이른 아침임에도 어린 자녀를 동반한 참배객이 적지 않았다. ⓒ 이래헌
사실 노무현과 이명박, 전임과 현임 대통령의 통치 방식의 차이는 극과 극에 이를 만큼 상반됩니다.

 

한 대통령은 대불공단 전봇대 사건이나 여아 납치 사건 등에서 보듯 국민의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이 터지면 즉시 현장을 방문하여 사건 해결을 진두지휘하는 등 소위 한탕주의식 현장지도를 즐겨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대통령은 숭례문 화재 등에서 보여지듯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봐..'라며 사건 사고 현장을 찾는 것을 극히 자제하였습니다. 당장 현장을 찾아 당면한 현안 한 개를 빨리 해결하는 것보다, 관련 제도나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노무현이 그렸던 그림은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정치인은 정치인으로 검찰은 검찰로 언론은 언론으로서 각각의 본분에 충실하여 서로 견제하고 경쟁함으로써 국가의 주요 권력들이 서로 건강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힘들어서 대통령 못해먹겠다'거나 '국민이 우리를 너무 몰라준다'며 국민에게 볼멘소리를 할지언정 정권에 반대하는 국민이나 세력을 상대로 치졸한 복수나 보복 그리고 강압적인 통제나 언론 장악 같은 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현 정권은 어떻습니까? 누군가가 아무리 근거에 입각한 주장을 펼칠지라도 권력의 의사에 반대된다고 여기면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그 사람의 뒤부터 캐거나 고소 고발을 남발하여 국민의 자유로운 사고를 압박하거나 표현의 자유조차 억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흐른 지금 저는 봉하마을 여정을 통해서 법적인 대통령과 마음속의 대통령,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과 마음 속에 살아있는 대통령, 위선과 기만의 대통령과 너무 진실하고 인간적이어서 끝내 자신을 산화한 대통령 등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두 명의 대통령이 각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영토에 두 명의 통치자가 존재한다? 이 말은 옛날 같으면 모반죄로 능지처참 형에 해당하고, 오늘날에도 반란죄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발언이지만 제가 이 발언으로 처벌받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고인이 된 전임 대통령의 추상적인 권력을 살아있는 권력으로 되돌린 일등 공신이 자기를 지지하는 편만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편향된 정치를 펼쳐온 이명박 대통령의 마인드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절반의 국민을 국민으로 대접하지 않고 모욕주기를 일삼는 대통령에 대해서 절반의 국민이 단지 그 영토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극진하게 예우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야말로 현 정권에서 버림받은 국민의 마음 속 깊이 '노무현 대통령'을 각인시켜 준 일등공신이라 할 것 입니다.

 

'산 명박이 죽은 무현을 불렀다'고 할까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5.24 14:30ⓒ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1주기 #봉하마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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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오디오 사진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 가장 중시하는 덕목은 다양성의 존중, 표현의 자유 억압은 절대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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