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삽질정부는 민심의 목소리를 거스를 수 없었다

[국제나그네의 독일아리랑] 슈투트가르트와 나의 인연

등록 2010.10.09 21:09수정 2010.10.1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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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남단에 위치한 바덴비르템베르크 주, 독일의 자존심 메르세데츠 벤쯔의 본거지요 다국적 가전업체 보쉬의 본사가 있는 곳, 그래서 그런지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주에 속한다.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바덴비르템베르크 주의 수도인 슈투트가르트가 연일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 올라 있다가 언제 그렇게 활활 타 올랐나 싶게 갑자기 식어버렸다.


마치 1989년 전두환의 4.3호헌에 항거해서 폭풍처럼 들고 일어난 '6월전민항쟁'이 그 후계자 노태우의 대국민 항복선언인 6.29선언( '속이구' 선언이었던가?)으로 넥타이부대를 포함하여 언제 그렇게 전국적으로 매일 100만명 이상이 들고 일어난 항쟁이었나 싶게 하루 아침에 고요한 적막속으로 가라앉아버린, 피울음의 지난 우리 역사를 연상케 하는 오늘의 슈투트가르트! 

주정부의 '삽질'에 연일 대규모 집회로 격렬히 항거하며 '삽질중단'을 요구해온 시민들에게 정부가 그동안 공권력의 보호를 받으며 밀어붙였던 모든 '삽질'을 포기한다는 백기선언을 했기 대문이다.

삽질정부, 일방적 삽질을 포기하다

a  슈투트가르트21 계획의 전면 중단을 보도하는 독일 제1의 공영방송 ARD의 뉴스 화면

슈투트가르트21 계획의 전면 중단을 보도하는 독일 제1의 공영방송 ARD의 뉴스 화면 ⓒ 조영삼


a  빨간 선이 슈투트가르트에서 도나우강이 흐르는 울름까지 거의 지하로 연결 될 예정이었던 슈투트가르트21의 계획구간이다.60Km에 달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는 서유럽과 동유럽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빨간 선이 슈투트가르트에서 도나우강이 흐르는 울름까지 거의 지하로 연결 될 예정이었던 슈투트가르트21의 계획구간이다.60Km에 달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는 서유럽과 동유럽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 조영삼


그동안 바덴비르템베르크 주정부는 '슈튜트가르트21' 프로젝트에 기인해서 1920년대에 지은 기존의 중앙역사를 허물고 41억 유로를 투입해서 2020년까지 거의 지하로 연결되는 60km의 선로와 3개의 새 역사, 18개의 다리, 16개의 터널을, 그리고 지하 11미터에 최첨단 중앙역사를 건설한다는 대 계획을 세워 시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해 왔다.

질풍노도의 시절이었던 지난 1968년에  버금가는 시위를 벌였던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의 희망사항은 한국의 '4대강 삽질'에 반대하는 이유와 거의 흡사하다.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돈 놓고 돈 먹는 소수의 기업가. 그리고 대형 사업에 필연적으로 떨어지는 떡고물에 침을 흘리는, 사욕을 챙기려는 정치가나 관료들, 그들의 이익을 위해 한 번 무너지면 복구가 거의 불가능한 환경 파괴나 생태계 파괴를 향한 삽질을 우리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주정부와 주관기업에서 주민들 설득논리로 내세우는 내용도 한국과 똑같다.


"향후 10년간 이어지는 41억 유로(1유로가 대략 1600원이니 우리 돈으로는 얼만가?)짜리 초대형 건설공사로 인한 일자리 창출, 교통난의 해결과 물자수송의 원활한 흐름."

a  경찰의 공권력에 저항하는 슈투트가르트 시민들. 도이치벨레 신문의 화면이다. 이거 놔, 안놔?

경찰의 공권력에 저항하는 슈투트가르트 시민들. 도이치벨레 신문의 화면이다. 이거 놔, 안놔? ⓒ 조영삼


이 정도면 물길과 철길이라는 용어상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 4대강 사업의 '붕어빵' 아닌가. 그렇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한국의 상황과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주정부는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와 반대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력으로 밀어붙여왔다. 지난 금요일에는 주최측 추산 10만명, 경찰 추산은 딱 절반인 5만명의 시위대가 도심의 요소요소에서 시위를 벌였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는데 그 부상자의 숫자가 '도이치벨레'란 영향력 있는 언론사에서는 130명에서 400명 사이라고  보도했다.

일이 일파만파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그동안 일개 주의 일이라 수수방관(?)해 온 것처럼 보이던 연방정부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개입하기 시작했고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FDP)에서는 경찰의 시위진압 방법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결국 내년 3월에 치러지는 지자체 선거를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정부에서 백기를 들고 항복(?)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모든 '삽질'을 중단하기로...

그런데 지금 현재 한국의 '4대강 삽질'은 끝장을 볼 심산인가? 삽질의 대가들이여! 부디 독일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슈투트가르트 하면 이 국제나그네하고도 인연이 깊은 도시다. 나는 이 도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망명수용소에서 질곡의 3년을 견뎌내었다. 지금은 인근 주인 바이에른 주에서 늙은 기러기아빠로 아들내미 똥가리를 그리워하며 공허하고 텅 빈 마음을 가까스로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사 주변은 실로스가르텐으로 상징되는 공원과 자연스럽게 배치된 경관, 그리고 도심속의 환경친화적인 조화들로 인해 당시 내가 매번 들를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역마살 낀 나그네가 독일에 오기 전 지구촌 곳곳을 길신 좆아 방랑할 때 수많은 기차역사를 섭렵했지만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사 주변처럼 사람들의 활기참과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가 빼어나게 어우러진 역사는 구경하지 못했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생소한 독일 남부도시 슈투트가르트를 오늘 기사거리로 올린 것은 얼마 전에 독일의 어느 유학생 시민기자가 쓴 '삽질에 들고 일어난 독일 시민들'이란 기사에 대한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 할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목적도 있지만 이왕 슈투트가르트가 취재원이 되었으니 살짝 첨가할 양념거리로 당시 나의 수용소 생활의 한 조각을 풀어놓고자 함도 있음을 부언해 둔다.

젊은 날의 방랑은 희망의 여정이다

a  수용소 근처 포이에르바흐 공원에서 젊은시절의 필자가 똥폼을 잡고 있다.

수용소 근처 포이에르바흐 공원에서 젊은시절의 필자가 똥폼을 잡고 있다. ⓒ 조영삼


슈투트가르트의 변방인 망명수용소 인근에는 포이에르바흐란 생태공원이 있다. 이곳에 나는 두고 온 보고 싶은 사람들이 그리울 때면 어김없이 발품을 팔아 찾곤 했었다. 그리고 공원 이름과 포이에르바흐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젊은 날, 이 국제나그네처럼 질풍노도의 방랑기를 거쳤던 젊은 포이에르바흐를 생각하며 많이도 울적해 했었다.

내가 아르헨티나를 떠나 체게바라의 발자취를 거슬러 안데스산맥을 주마간산이나마 섭렵하고 가난에 찌든 인디언들과 생활하면서 젊은 날의 체게바라를 그리워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그리고 거의 매일 새벽의 여명을 가르고 공원의 너른 숲 속 공간으로 달려가 아름드리 나무를 상대로 정권을 단련하고 허공을 내지르는 발차기 연습을 산책 나온 슈바벤들을 구경꾼 삼아 수용소를 떠나는 날까지 이어왔던 것이다.

당시 그들은 나에게 '여명의 부루스리'라는 별명을 일방적으로 지어서 부르곤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나는 나이고 부루스리는 부루스리'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들의 일방적 독주(?)를 막을 길은 없었다.

내가 슈투트가르트 망명수용소에서 조국의 쪽빛 하늘을 그리워하고 있을 때 한국의 원주교도소에선 사노맹을 주도했던 백태웅씨가 징역살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인연은 내가 남북고위급회담 진입사건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생활할 때 처음 만나 이후 안양교도소에서 다시 만나 교도소내 민주화투쟁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 나는 소년수 사동의 독방에서 외로이 생활하고 있는 백태웅씨에게 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하얀 비둘기 새끼와 비둘기 집을 만들어 백태웅씨에게 주었었다.

그 후 백태웅씨는 소내 민주화투쟁 와중에 징벌방인 먹방에 갇혔고 내가 백태웅씨, 민애전 대변인 조덕원씨, 전대협의장 태재준씨등의 원상복귀를 요구하며 곡기는커녕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하는 단식으로 거의 죽어가고 있을 때 머리가 빡빡 깎인 상태로 원주교도소로 강제 이감을 가고 말았다.

우리의 관계는 그 후 시공을 초월하여 독일의 망명수용소와 한국의 원주교도소에로의 편지왕래로 계속 이어졌다. 나는 백태웅씨의 장기간의 징역생활을 염려하고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의 정기를 호흡하며 '감자바우' '비탈'등의 자조 섞인 말들로 인구에 회자되는 강원도 한 복판에서 이왕이면 '강원도의 힘'을 맘껏 들이마시라고 격려 편지를 보냈었다.

백태웅씨도 나를 걱정하는 비슷한 편지를 종종 보냈는데,

"수용소라니, 망명수용소라니, 모든 것을 떠나 안타깝고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그 때 조선생님의 당부 말씀대로 다음 징역 이감지까지 친구되어 데려가려 했던 어여쁘고 가련한 하얀 비둘기 새끼는 친구이자 주인인 저를 잃어버리고 언제까지고 구슬피 '구구구' 울고 있더라고 이곳에 이감 온 어떤 재소자가 전해주었답니다...."

한국의 교도소와 독일의 망명수용소!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그 후 백태웅씨는 출소하여 현재 캐나다의 어느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을 흘러다니는 풍문으로 들었다. 나는 주지하다시피 국제방랑자 되어 희망 찾아 아직도 떠돌고 있고...

방랑은 희망을 잃지 않은 이들이 '보헤미안의 진주'를 찾아 떠나는 희망의 여정이다. 젊은 독자들이여! 고독하고 고민하라. 그리고 희망 찾아 과감히 떠나라. 그러나 당부 드릴 것은 이 국제방랑자처럼 길 위에서 너무 오랜 시간은 보내지 말라.

a  포이에르바흐 생태공원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 친구와 함께. 멀리 연못가에서 자연스레 노닐고 있는 플라밍고의 무리가 보인다.

포이에르바흐 생태공원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 친구와 함께. 멀리 연못가에서 자연스레 노닐고 있는 플라밍고의 무리가 보인다. ⓒ 조영삼


a  수용소 시절 슈투트가르트 실로스공원에서, 외로울 때면 수용소 동료의 자전거를 빌려타고 마구 돌아다니던 젊은 날의 초상이다. 아! 옛 날이여.

수용소 시절 슈투트가르트 실로스공원에서, 외로울 때면 수용소 동료의 자전거를 빌려타고 마구 돌아다니던 젊은 날의 초상이다. 아! 옛 날이여. ⓒ 조영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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