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욕에 대한 자연의 경고, 구제역

천문학적인 재앙 넘어서는 길은 자연을 따르는 삶

등록 2011.01.21 18:12수정 2011.01.2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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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른 아침부터 어둑해지는 저녁까지 접종작업이 계속됐다

이른 아침부터 어둑해지는 저녁까지 접종작업이 계속됐다 ⓒ 이존구


인근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긴급하게 접종 방침이 결정되고 각 팀별로 나눠 우리군 전 지역이 구제역 예방접종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 팀도 남쪽마을에서 시작해 하루하루 북상하면서 전 농가를 순례했다. 이른 아침부터 어둑해지는 저녁까지 접종작업이 계속됐다. 한겨울 소한 대한 추위답게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렸고 바람이 불었다. 수은주는 아침마다 하한선을 갱신했다.


수은주가 뚝 떨어진 새벽에는 주사기가 영하의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는 바람에 핫 팩을 준비해 녹여가며 접종을 하기도 했다. 예방접종은 주말도 없이 계속되었다. 접종작업 나흘째 되던 날, 오후부터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더니 닷새째 강행군이 계속되던 날은 오전부터 다리 움직임이 둔해졌다. 유격훈련이 따로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말도 없이 쓰러져 잤다.

추위와 육체피로를 이겨내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이 소를 다루는 일이었다. 목책을 넘어서는 일은 곧 익숙해졌지만 우리 안에 들어가 소를 붙잡아 접종을 하는 일은 매번 고난이도 작업이었다. 소를 붙잡아 매 둔 곳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방목한 목장의 작업은 전쟁모드였다.

때로 눈밭에서 추격전이 벌어졌다. 소들은 큰 눈망울을 굴리며 낯선 사람을 경계했고 그 경계심은 때때로 행동으로 나타났다. 흥분한 소들은 뛰어다녔고 예민해진 놈들은 더러 대들기도 했다. 겨우겨우 주사를 맞힌 놈들은 소리를 질러댔고 그 소리에 나머지 놈들이 술렁댔다. 설상가상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게다.

구제역 재앙은 대량사육의 폐해다

재앙이었다. 전국적으로 피해두수가 200만마리가 넘어서고 피해액도 1조 원을 넘어섰다는 소리가 들린다. 천문학적인 살처분 숫자에 엄청난 예산 낭비다. 매립에 의한 2차 환경오염 피해까지 생각하면 더 아찔해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숫자로 계산할 수조차 없는 심리적 부하비용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농촌에서 한두 마리 소를 키우는 일은 그걸로 큰 이득을 보자는 심사가 아니다. 비싼 사료 값에 때때로 발생하는 가축병원 비용을 제하고 나면 소 키워 팔아봤자 별로 남는 게 없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소 키우는 일을 반복하는 건 다른 이유다. 그건 사람이 외로워서다. 노인들이 마음 둘 데가 없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소는 가족같은 존재다. 키우던 소를 처분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간 집처럼 빈 우리가 허전해서 견딜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다시 소를 들이게 되는 게 우리네 농촌정서다. 구제역은 그렇게 가족같은 소를 생으로 죽여 파묻는 일이었다. 농민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이 땅을 온통 심리적 공황사태에 빠트린 걸 생각하면 재앙도 이런 재앙이 없다.


대체 이런 재앙이 어디서 왔을까. 대량사육의 폐해다. 소는 오래전 농경사회부터 키워온 가축이지만 구제역같은 질병이 문제가 됐던 적이 없었다. 다닥다닥 이어붙인 우리 속에 비육을 위해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빼곡히 채워진 가축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위한 집단가축 사육이 문제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 할까. 구제역은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육류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미 예고된 재앙일 것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시스템 속에서 예지능력을 잃어버린 인간이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더 움직이고, 덜 버리고, 덜 쓰며 살아야 한다

의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왜 이지경이 됐는지. 이 난리를 겪고서도 세상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러가게 해서는 안된다. 비용부담없이 수익만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항생제나 성장 촉진제의 과다 투여, 대지와 대기의 심각한 오염은 구제역같은 바이러스의 창궐을 초래했고 결국 천문학적인 예산의 낭비와 처참한 집단 살 처분을 불렀다.

구제역은 그동안 누적된 자연의 비용 청구서다. 심각한 자연의 경고장이다. 더 이상 자연의 경고를 무시한다면 비극적인 결말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삶의 방식을 바꾸고 행동하는 개인들이 많아져야 한다.

자연을 회복하고 좀 더 자연을 따르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몸을 좀 더 움직이고, 덜 버리고, 덜 쓰며 사는 지혜로운 삶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지속가능한 삶을 모색할 수 있는 바른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동양일보 칼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동양일보 칼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구제역 #구제역 예방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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