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영화 <와호장룡>을 언급하면서 '부드러움이 결국 강함을 이기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소를 억지는 잡는 사람과 자연스러운 결대로 풀어 내는 사람의 차이와도 같다고 언급한다. 즉, 장자의 철학 '무위'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정민
<철학풀이 철학 살이><소설 속의 철학>에 이어 철학의 보편대중화를 위한 연민으로 2005년도에 처음 1쇄(2010년 11쇄 발행)를 찍었던 이 책은 그야말로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철학이 이미 우리 예술 전반에 걸쳐 그 영역을 시나브로 확대해 왔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책의 저자인 이왕주 교수는 "영화의 한 살이가 너무나도 짧음"을 탄식하며 흥행논리만을 앞세워 철지난 영화로 퇴행시키는 시장논리 속 영화작품의 소멸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는 영화와 만나고 사귀는 법을 새롭게 이야기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즉, "이젠 영화를 작품(work)이 아닌 텍스트(소통)로 만나야 한다"며 말이다.
책 틀거리를 먼저 살펴보면, 저자가 감명 깊게 보았던 대표영화 29편의 작품과 그에 상응되는 철학자 29명의 대표적 잠언록을 대비시키며 옴니버스식 장면 설명으로 서술해 내려간다. 이를테면 영화 '트루먼 쇼'를 통해 철학자 들뢰즈의 '유목민'을 상기시켰고, 영화 '굿 윌 헌팅'을 통해 파스칼의 섬세한 정신을 투영시켰다.
덧붙여 설명하면, '트루먼 쇼'라는 작품에서 (결정적 동기부여자인)실비아가 트루먼(짐 캐리 역)에게 문자로 알려주었던 찰나의 깨달음을 통해 의식화된 억압기제에서 해방의 탈출구를 찾아 즉시 떠나야 한다는 들뢰즈식 유목민의 삶을 천착시켰다. 이어 '굿 윌 헌팅'에서는 천재청년 윌 헌팅(맷 데이먼 역)이 사회적 편력기제에서 벗어나 세상과 화해하는 법을 통해 파스칼이 강조했던 내면의 눈, 즉 영혼의 눈을 바라봐야 한다는 관점을 대비시켰다.
'중경삼림'을 통해 니체와 만나다"프리드리히 니체는 현재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삶을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과거에만 집착하거나 미래에만 매달리는 몽유인을 '역사적 인간'이라고 불렀다.(중략)우리가 만일 행복해지려면 두 가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망각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다. 망각해야 하는 것은 이미 없는 과거, 아직 없는 미래요, 사랑해야 하는 것은 현재 그리고 그 지평 위에서의 삶이다"영화 '중경삼림'을 통해 니체를 만나야 한다며 저자가 강조했던 한 대목이다. 여기서 니체가 강조한 것은 '망각이야말로 인생사 가장 큰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중경삼림' 내용을 잠시 들여다보면, 경찰관 633(양조위 역)과 아비는 서로 다른 벼랑길 위에서 사랑을 갈구하다 1년의 이별 뒤에 다시 만난다. 이 이별의 시간동안 그들이 배운 것이 바로 망각의 지혜였다. 비로소 이 연인은 과거와 미래를 망각하고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능력을 체득해 해피엔딩의 결말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작품 '슈렉'을 통해 칸트의 숭고함을 전하고, 무림 액션 영화 '동사서독'을 통해 베르그송의 '심층자아'를 발견하라고 설명한다. 또 '매트릭스'를 보며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실존의 인간'을 분석하며, 영화 '피아노'를 통해 에리히 프롬의 '소유와 존재'의 관계의 미학을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물론, 혹자는 이 책을 보며 영화를 보고 분석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거기에 철학적 깊이까지 더한다면 누가 읽겠느냐고 손사래 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과는 다르게 책의 텍스트에 몰입(소통)하다보면 어느새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현실의 삶과 자신의 내면, 그리고 억눌러 왔던 자신만의 삶의 철학과 맞닥뜨리게 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자 이왕주 교수는 이 책의 에필로그를 통해 영화 같은 추억놀이의 흔적을 찾아 (철학적)삶의 텍스트를 완성시켜야 한다고 갈무리한다. 그러며 그는 추억을 통한 삶의 진지한 성찰을 끊임 없이 강조한다.
"시대정신을 투영하며 영웅과도 같았던 영화들이 사라져가면서 남기는 안타까운 흔적들을 찾아 하나의 텍스트를 완성해나가듯, 삶도 그러함을 느끼며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완성해나가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추억이 있는 동안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 그 놀이의 흔적, 추억은 우리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환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효형출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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