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아베고보의 <타인의 얼굴> 을 읽고

등록 2011.10.20 14:49수정 2011.10.20 14:49
0
원고료로 응원
a 아베고보의 "타인의 얼굴"표지 아베고보의 "타인의 얼굴"표지이다.

아베고보의 "타인의 얼굴"표지 아베고보의 "타인의 얼굴"표지이다. ⓒ 최종술


인간은 순수를 지향한다. 순수를 좋아하고 경외하기까지 한다. 반대로 화장이나 장식은 꾸밈이다. 꾸밈은 조작된 것이므로 순수함과는 거리감이 있다. 그런데 왜 순수를 지향하는 인간은 꾸밈인 화장을 하고 보석으로 치장을 하는가! 이러한 점은 모순이기도 하지만 모순이 아니다. 화장이나 장식은 순수함을 경외하는 마음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화장이나 장식은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이다. 아름다움의 최고 지향점은 순수함에 있기 때문에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은 가장 순수해지려는 노력이다. 부족함을 채우고 감추는 행위들이 화장과 장식에 포함되는 것이다.


최근의 화장 패턴을 보면 화장을 하지 않은 듯한 화장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그 이야기는 화장은 순수와 통한다는 반증이다. 화장이나 장식은 잘못하면 매우 추해 보인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울린다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왜 보석을 좋아할까? 물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에 가치가 매겨진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희귀한 것이라도 보석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다. 한자사전에는 보석을 '흔히 몸치장 할 때 쓰는, 몸이 매우 단단하고 광택(光澤)이 곱고 그 나는 분량(分量)이 썩 적은 귀중(貴重)한 광물(鑛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보석은 광물의 일종이다. 그 중에서 광택이 나야하고 단단해야 한다. 흔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포함된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보석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채워서 돋보이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보석을 좋아하는 것이다. 결국은 아름다움을 위한 행위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행위의 전제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성문화 하지 않은 규범, 기준 등등.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순수함을 위해 꾸민다. 그 모순은 모순이 아닌 것이다. 정당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가면의 진실성


<타인의 얼굴>은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인 아베 고보(1924년~1993년)의 대표작이다. 소설은 노트 형식이라는 특이한 구성으로 주인공의 독백처럼 스토리를 이어간다.

어느 날 주인공이 실험 중에 액체질소 폭발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얼굴'이라고 할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덩어리'가 된다. 주인공은 망가진 얼굴을 통해 상실한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가면을 만들기 시작한다. 인간의 피부처럼 보이는 완성된 가면을 쓰고 주인공은 완성도를 실험해 본다.

계속 성공하자 자기 부인에게도 실험을 해 본다. 가면을 쓴 주인공이 아내를 유혹하는 일에 성공하자 타인에게 아내를 빼앗긴 느낌이 들어 질투를 하게 되고, 아내에게 복수할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부인은 처음부터 가면을 쓴 사람이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설은 검은색노트, 흰색노트, 회색노트 세 권과 아내의 편지, 주인공이 아내에게 남긴 메모로 구성 되어 있다. 소설은 위덕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이정희 교수가 번역하였다.
아베고보는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진짜(맨 얼굴)와 가짜(가면)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잘 그려내었다.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가치로운 일인가! 그 해답은 아무도 모를 수 있다. 인간 개인이 지니고 있는 기준. 옳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선에 대한 가치,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들이 과연 옳음이고, 아름다움인가!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작품 속에 나타난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로 추정되는 아가씨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외형적인 이미지가 개인의 인격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가치 또는 기준인 미의 기준. 그 기준은 결국 한 인간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다. 인간이 정해 놓은 기준이 인간의 삶조차도 던져 버릴 수 있는 정도로 무게가 있는 것인가! 가면이라는 힘을 빌어야만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현대인들이 의외로 많을 수 있다.


그 가면은 사회적 지위, 부의 정도, 외모, 타인에 의해 형성된 가식적인 한 개인의 모습(인간의 인식틀은 첫인상과 기간이 경과 되면서 형성되는 인상들의 집합으로 한 인간을 인식하고 규정하는 버릇이 있지 않을까?) 등에 의해서 자신의 어느 부분을 숨기기도 하고 억제하면서 살아간다(극단적으로 버트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주인공과 같이 인격적 장애를 표출할수 도 있겠다). 이성적인 힘과 감정적인 조절을 통해 인간은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잠재의식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함이 자유로이 발현될 수 있다면 사회는 대 혼란을 맞게 될 것이다. 교육되어 짐, 사회적인 눈들, 법률, 제도 등이 안전망으로 작용해서 사회질서는 잡혀지게 되어 있다. 그렇게 본다면 가면은 필요하기도 하다. 안전망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내 팽개칠 수는 없지 않는가. 가면에 사로잡힌 삶은 주인공이 가면이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은 없다. 자살을 손쉽게 선택하는 것도 근원적인 자신을 찾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 등 보이지 않는 틀 속에  갇혀 살아간다. 그 규범과 규칙은 광범위하지만 단순하기도 하다. 군중심리가 작동하기도 하고, 개인의 도덕적, 종교적 기준이 작용하기도 한다. 그 틀은 개개인이 다를 수도 있다. 합의한 듯 보이지만 모여서 합의한 일이 없기 때문에 각자 믿고 있는 사회적 규범이나 틀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갇혀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어떤 특정의 틀은 일탈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비군 복만 입혀 놓으면 개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예비군이라는 가면을 쓴 것이다. 예비군은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니기 때문에 일탈을 해도 용납이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때 나는 없다. 가면의 위력은 나를 버리게 한다. 인간은 매 순간 가면을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굴이 주는 사회적 의미는?

아베고보의 <타인의 얼굴>에서는 불행한 주인공이 몇몇 나온다. 대표적인 주인공은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얼굴을 잃어버린 주인공이며, 그 주인공으로 인해 상대적인 불행을 겪고 있는 아내가 두 번째이며, 영화 속에 나오는  희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아가씨, 그 아가씨의 오빠가 그들이다.

사회적 잣대로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는 얼굴을 손상당한 두 사람은 행동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는 정상적인 삶이라는데 있다. 그 정상적인 삶이란, 인간으로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생활을 의미한다. 얼굴을 손상당한 아가씨는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했고, 결국은 죽음을 통해 그 상황을 벗어나게 된다. 또 다른 주인공은 가면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얼굴이 주는 사회적 의미는 대단하다. 얼마전 개그맨 신봉선은 KBS2 '해피투게더'에서 눈물로 호소했다. 신봉선은 "외모로 놀리는 건 괜찮은데 노력까지 외모로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면서 "누구보다 노력하는데 '넌 못생겨서 재수 없다'는 악플을 보며 솔직히 슬프다"고 털어놓았다.

참 무섭지 않은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적인 공격에 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들어 연애인들의 자살 소식이 심심찮게 뉴스에 나온다. 손상된 얼굴로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기 쉽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혐오스러운 얼굴을 가진 선량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사람은 선량한 모습을 한 사기꾼에 비해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이 든다.

가면이나 죽음을 통해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몸부림은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채면과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삶의 가치가 작지 않다는 사실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은 고귀하다. 각자 가지고 있는 외형적인 형태는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변화하는 것이 세상이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세상을 위해 해야할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귀한 일을 찾아 성심으로 해낼 때는 금세 부스러져 버릴 가면에 의존하는 것 보다 수만배의 가치로 보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문예출판사, 2018


#아베고보 #타인의 얼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은 것을 사랑합니다. 그 영롱함을 사랑합니다. 잡초 위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아침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벌이는 지 아십니까? 이 잡초는 하루 종일 고단함을 까만 맘에 뉘여 버리고 찬연히 빛나는 나만의 영광인 작은 물방울의 빛의 향연의축복을 받고 다시 귀한 하루에 감사하며, 눈을 뜹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어느 작은 여행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