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범의 요구 "사라진 약혼녀 찾아주시오"

[서평] 제바스티안 피체크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등록 2011.12.05 14:22수정 2011.12.05 14:41
0
원고료로 응원
a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곁표지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곁표지 ⓒ 해냄

인질극을 벌이는 사람 중에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 나머지 그런 극단적인 수단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은행을 털기 위해 일반 시민들을 위협해서 인질극을 벌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억울하고 원통한 무언가를 호소하기 위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인질극을 벌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가지고 있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다보면 그의 입장에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될 수도 있다. 정부기관이나 경찰서 앞에 가서 아무리 1인시위를 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뼛속까지 사무친 억울함을 제발 들어달라고 하소연하기 위해서 인질극을 벌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극단적인 절망에 빠진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테고, 비록 감방에 가더라도 마음껏 자신의 목소리를 내봤기에 후회는 없을지 모른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빼앗긴 남자

독일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2007년 작품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의 주인공인 얀 마이도 절망에 빠져서 인질극을 벌인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명망 있는 직업, 충분한 돈,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인.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모든 것을 빼앗긴 것이다.


문제는 8개월 전에 시작되었다. 한 경찰관이 얀의 집으로 찾아오더니 얀의 약혼녀인 레오니가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얀은 사고 담당자를 찾아다니면서 조사를 시작하지만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다. 그리고 조사를 시작한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정부에서 나온걸로 보이는 두 남자의 방문을 받는다.

그들은 얀에게 사건을 캐고다니는 일을 그만둘 것을 권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얀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말해주며 협박하기까지 한다. 그 협박은 곧 현실로 다가온다. 전도유망한 심리학자였던 얀의 승용차 트렁크에서 마약이 발견되고, 신경정신과 의사협회는 청문회도 없이 얀의 면허증을 박탈한다.


한마디로 얀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 속에서 얀은 무장을 하고 베를린에 있는 한 라디오 방송국으로 쳐들어 간다. 그곳에서 인기 DJ와 프로듀서, 방문객들을 위협해서 스튜디오 하나를 장악한다. 얀의 요구사항은 오직 하나. 약혼녀 레오니를 자신에게 데려오라는 것이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때마다 인질 한 명씩을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유명한 범죄심리학자인 이라 자민이 경찰들과 함께 방송국으로 향한다. 이라는 얀과 전화로 대화를 시작하고 얀은 그 대화내용을 라디오로 베를린 전역에 생중계한다. 이라는 어떻게 얀을 설득할까, 아니 그 이전에 레오니 사망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심리학자와 범인이 펼치는 심리전

인질극이란 것은 사실 유괴만큼이나 성공하기 어려운 범죄다.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들은 현장을 봉쇄하고 인질범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다. 그 안에서 어떻게 머리를 굴리건 간에 무사히 달아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상가상으로 인질을 죽이기라도 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인질극을 벌이는 사람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 얀은 이라에게 묻는다. 당신은 존재하기 위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숨을 쉬기 위해서, 아침에 따뜻한 이불을 걷어차고 나와 차가운 세상으로 뛰어들려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정말로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억울하게 빼앗긴다면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고한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되지 못하겠지만, 인질범이 가지고 있는 사연에는 한 번쯤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 권혁준 옮김. 해냄 펴냄.


덧붙이는 글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 권혁준 옮김. 해냄 펴냄.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해냄, 2011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