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람들

임범의 <내가 만난 술꾼>

등록 2011.12.22 18:11수정 2011.12.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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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임범의 〈내가 만난 술꾼〉 ⓒ 자음과모음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알아간다. 같은 파트너로 있으면 또 다른 파트너들을 만나 그 외연을 확대하게 된다. 물론 더 많은 사람을 알고 만난다 해도 그 깊이는 더욱 얕아지기도 한다. 일대일로 만나야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추천을 받았는데 알고 보면 맹탕인 경우도 있다. 뭔가 계획성 있는 것 같은데, 너무나 계산적인 사람이 그렇다. 남을 이용해 자기 성공을 꾀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꽤 유연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람도 많다. 가히 존경을 표하고픈 사람이요,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다.


임범의 <내가 만난 술꾼>은 그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비록 술좌석에서 만나거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이라지만 술은 연결고리일 뿐 그 속내는 서로간의 진정성에서 우러나오기 마련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소설가 성석제를 비롯해 영화배우 정진영과 문소리, 사회운동가이자 방송가인 임수경, 영화감독 이준익, 소설가 공지영, 방송인 정관용 등 사회적으로 유명하거나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사람들의 인간됨을 보여주는 게 그렇다.

임범이 한겨례신문사에서 18년 동안 몸을 담았으니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나 사회 경제 문화 쪽을 취재하고 또 글을 썼으니 그 폭도 훨씬 다양했을 것이다. 신문사 기자야 외압도 받고, 때로는 쓰고 싶은 글도 절제해야 하는 걸 감안한다면 만나는 사람들도 가리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하늘 아래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가리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책을 잘 써서 입담도 좋을 것 같지만 그야말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성석제를 만난 것도 그렇고, 화려한 후광을 자랑하는 스타이기보다 직업이 배우인 보통 남자 정진영, 배우라는 울타리 뒤로 숨지 않고 허름한 티셔츠에 추리닝 바지를 입고 인터뷰했던 문소리, 회의하고 질문하기보다 믿고 열망하는 쪽에 강한 집념을 드러낸 공지영과도 그랬다.

"나처럼 회의하고 질문만 하는 이들은, 공지영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그의 소설 <도가니>를 읽고서 든 생각이다. 우리 사회 몰염치한 기득권층의 행태를 이처럼 징그럽도록 파헤쳐 보이다니, 이건 분명 확신범의 소행이다. 확신이 위험할 때도 있지만, 그가 가진 확신은 그 많은 확신들 가운데 가장 선량한 것 아닐까. 그 확신을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함으로써 사회가 이만큼이나마 유지되는 데에 기여하고 있으니, 나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회의하는 이들은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닐까."(213쪽)

솔직히 나는 임범도 만난 적도 없고, 공지영이나 정진영이나 이준익 감독도 만난 적이 없다. 그냥 그가 만나서 소개해주고, 또 그들의 진정성을 알려주는 정도에서 그들을 알아갈 뿐이다. 그나마 우리사회에 공인이거나 비공인일지라도 어떤 진정성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겉으로나마 알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지 싶다. 그들 개개인을 통해 나는 또 어떤 진정성을,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어떤 면을 갖추고 살아야하는지 내 속에 채워 넣을 수 있는 까닭이다.


특별히 '통일의 꽃'이라는 20대의 삶을 지워보려고 30대를 악착같이 살았다지만 여전히 그 상징성에 갇혀 있다는 임수경의 삶이나, 엄청난 흥행을 몰고 온 '왕의 남자' 이후 '평양성'이 시원치 않자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했다가 돌연 경솔했다는 이준익 감독을 통해서 내가 살아가야 할 상징성과 내가 갖춰야 할 솔직담백함은 무엇인지 새삼 배우게 되었다. 이들이야말로 유연하면서도 깊이를 갖춘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내가 만난 술꾼 - 임범 에세이

임범 지음,
자음과모음, 2011


#임범 # 공지영 #성석제 #임수경 #이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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