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만에 빚더미에 올라 고시원으로...

[연재소설 - 하얀여우12]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 사고까지

등록 2012.01.13 15:32수정 2012.01.1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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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은 무척 추웠다. 도시에서 길을 잃은 촌놈에게 너무 잔인한 추위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무엇부터 추슬러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모든 것이 망가져 있었다. 친형제 같았던 인호는 낯선 사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몇 년 동안 쌓은 우정이, 함께 만들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단 몇 개월 만에 몽땅 날아가 버린 것이다.


배꼽친구 상구는 여전히 일확천금의 꿈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다. 이제 편하게 살고 싶다며, 자기가 어째서 그동안 기름때 묻히며 힘들게 살았는지 후회스럽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형은 그래도 직장을 다니고 있어 다행이었지만 일확천금의 환상에 젖어 있어서 언제 직장을 그만둘지 늘 불안하기만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나였다. 단 8개월 만에 난 빈털터리가 됐다. 1년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모아둔 돈은 예전에 바닥났고 갚아야 할 카드빚만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카드 몇 개를 가지고 돌려 막다 보니 빚은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내겐 그 험난한 상황을 감당할 만한 힘이 없었다. 무기력했다. 꼼짝하기도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태양을 보는 게 두려웠다. 고윤희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배심감 때문에 괴로워 잠도 이루지 못하고 파르르 하면서도 고윤희를 밤낮없이 그리워했다.

일하기가 싫어졌다는 것도 큰 일이었다. 배꼽친구 상구처럼 나 또한 땀 흘려 일하기가 싫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급 승용차와 비싼 양복, 기름진 음식이 소리도 없이 나를 망쳐 놓은 것이다. 


그 해 겨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사고까지 냈다. 그리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당시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고 상대가 택시 운전사였다. 또 돈이 없어서 보험도 들지 않고 차를 끌고 다니던 상황이라 꼼짝없이 택시 운전수가 달라는 대로 줘야 할 처지였다.

범퍼가 금이 갈 정도의 가벼운 추돌 사고였기에 크게 다칠 일은 없었지만 택시 운전수는 건수 하나 제대로 잡았다는 듯 병원에 누웠다. 병문안을 가보니 목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결국 월세 보증금을 빼서 해결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고시원 생활이 시작됐다.

몇 개월 후 상구한테 전화가 왔다. 이제야 피라미드의 실체를 알아차린 듯했다. 황금어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날 원망하고 있었다. 그동안 투자한 돈을 일부라도 찾을 길이 있냐고 물었다.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수중에 돈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상구에게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옷가지와 책 몇 권뿐이었다. 끌어 들여서 미안하다고, 이제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라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상구는 쉽사리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단계 사업을 그만 두고도 1년 넘게 빈둥빈둥 놀다가 어머니 눈물을 본 후에야 취직을 했다.
#하얀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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