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는 아이들', 정말 개념이 없을까?

'1분간의 기적', 말버릇이 꽝인 아이에게 통하다

등록 2012.03.31 11:58수정 2012.03.3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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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학년 여학생반 담임을 맡았다. 개학을 하고 보름 넘게 한 명도 지각 결석이 없다가 지지난주에 영주(가명)가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1교시 시작을 앞두고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왜 학교에 안 나와?"
"저 머리가 아파서요."
"그래? 지금 어디야?"
"예?"
"지금 어디냐고? 집이야?"
"그건 몰라 물어요?"
"뭐?"
"아이씨."


"영주야."
"왜요?"
"지금 선생님한데 아이씨라고 했어?"
"아이씨. 전화 끊을래요."
"영주야."
"왜요?"
"선생님한데 말버릇이 왜 그래?"
"제가 뭘요?"


"다시 물을게. 사실대로만 말해. 지금 집이야 밖이야?
"아이씨. 그런 왜 묻냐고요?
"너 지금 학교 안 나왔잖아. 왜 학교를 안 나왔는지 알아야 하잖아?"
"아프다고 말했잖아요."
"아파서 집에 있는 거야? 아니면 병원가려고 밖에 나온 거야? 그것만 말해."
"아이씨. 미치겠네. 제가 뭐 잘못이라도 했어요?"
"영주야."
"(발악하듯) 왜요? 왜 자꾸 이름을 부르고 그래요? 아이씨. 전화 끊어요."


이런 영화(?) 같은 대화를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닷새 동안이나 카메라를 들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다큐를 찍고 있던  박PD였다. 전화가 끊어진 것을 알고 다가오더니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실래요?"
"글쎄요. 기다려봐야죠."
"학교에 올까요?"
"글쎄요."
"제 생각에는 안 올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올 것 같은데요.(웃음)"
"왜 웃으세요? 화 안 나세요?"
"글쎄요. 화가 안 나네요."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병가지상사지요. 헌데 녀석 말버릇은 좀 심각하네요."
"그럼 어떻게?"
"일단 부모님께 전화를 해봐야겠어요."



잠시 후 영주의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했다. 어머니는 영주가 초등학교 다릴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괴팍스럽게 변하더라고 했다. 너무 잘해주면 말을 타지 않고 안 되겠다 싶어 무섭게 혼을 내면 집을 뛰져 나가버리는 그런 일들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는 얘기도 해주셨다. 어머니와 전화를 끊고 30분쯤 흐른 뒤에 영주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았다. 

"학교 오는 길이냐?"
"근다고 엄마한데 전화해요?"
"그럼 안 해?"
"그럼 그래요. 학교 안 나올 때마다 엄마한데 전화하세요."
"지금 어디냐?"
"그건 알아서 뭐해요? 지금 갈 거예요."



헌데 그 후로 2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이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왜 학교 안 오는 거야?"
"지금 가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언젠데 지금까지 안 와?"
"아이씨. 정말 왜 그래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고 했어요?"
"그럼 잘못 안 했어?"
"제가 뭘요?"


"너 학교에 온다고 해놓고 안 오고 있잖아. 그리고 선생님한데 하는 말버릇도 그렇고."
"학교 가기 싫은 걸 어떡해요?"
"왜 나오기 싫은데?"
"그럼 학교 나가는 게 싫지 좋아요?"

"그래도 나와야지."
"그래서 지금 가잖아요?"
"그래. 빨리 와라."


영주가 학교에 온 것은 점심시간이 끝난 뒤였다. 그날은 가정방문이 있는 날이어서 오전수업만 하고 다른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아이와 다시 영화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왜 학교 안 온 거야?"
"학교 오기 싫다고 했잖아요?"
"그동안 잘 다녔잖아.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몰라요."
"말해봐. 말을 해야 선생님이 도와주지."
"뭘 도와줘요?"

"너 어른에게 버릇없이 말하는 거 고쳐야 하잖아."

"선도부 언니들이 담배 핀다고 뭐라 했어요."
"담배 피면 당연히 뭐라 해야지."
"지네들도 피는데요?"
"그래? 그럼 선생님이 선도부 언니들 담배 못 피우게 할 테니까 너도 피지 마."

"화장도 못하게 했어요."
"화장도 하면 안 되잖아."
"지네들도 화장 하는데요?"


"그것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지금부터 선생님이 1분간만 너에게 말할게. 너 오늘 선생님한데 말 함부로 했는데 다 잊어버릴 테니까 대신 1분 동안은 말대꾸 하지 말고 선생님 말씀 들어. 알았지?"
"…"


"넌 선도부 언니들 때문에 화가 난 모양인데 그건 네가 담배를 피워서 그런 거니까 너에게도 책임이 있어. 물론 선도부 언니들도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 누구 잘못이 큰지는 몰라도 어쨌든 넌 담배를 피워서 혼이 난 거야. 근데 선생님은 뭐야? 난 사랑하는 제자가 학교를 안 나오니까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한 거야. 널 혼내려고 전화한 것이 아니야. 학교를 안 나오는데 전화도 안 하면 담임도 아니잖아. 네가 학교를 나오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길 바라는 거야? 선생님은 네 아빠보다도 나이가 더 많아. 딸도 아니고 손녀딸 같은 너에게 선생님은 아무 잘못도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한 거야. 그래도 난 네 생각을 했어. 왜 이렇게 버릇없는 아이가 되었을까? 어떻게 하면 그걸 고쳐줄 수 있을까? 너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그런 생각을 했어. 헌데 넌 네 생각만 한 거야. 그치? 이제는 그래서는 안 돼. 넌 이제 고등학생이잖아."

녀석은 입을 꼭 다문 채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전의를 상실한 전사처럼. 그것이 내게는 기적 같이만 느껴졌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늦게라도 왔으니까 결석은 잡지 않을게. 그리고 선생님도 오늘 일은 잊어버릴 거야. 너도 잊어버려. 선도부 언니들 일 말이야. 알았지? 그럼 내일보자."

영주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녀석의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내버려 두었다. 교실을 나와서 복도를 걸어가는 아이에게 이렇게만 말했다.
"인사는 하고 가야지?"

녀석은 뒤를 돌아 꾸벅 절을 하고는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이렇게 상황이 종료되자,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던 PD가 다가오더니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1분간의 기적이 또 통했네요. 아이들이 온통 감정 덩어리인 것 같지만 이성도 있어요. 개념 없는 아이들이라고 하는데 개념이 부족한 것이지 개념이 없지는 않거든요. 1분은 그 개념이나 논리 속으로 들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지요."


그 뒤 이틀이 흘렀다. 다큐를 찍는 마지막 날이 공교롭게도 내 생일이었다. 반장은 하트 모양의 빨간 상자에 편지를 가득 담아서 내게 가져왔다. 그 중에 영주의 편지도 있었다. 

TO 안준철 샘

쌤~ 안녕하세요? 저 영주에요!!
오늘 선생님 생신이시죠? 생신 축하드려요~~ ㅎㅎ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선생님은 정말 착하신 것 같아요~
영어선생님이 시 쓴다는 게 웃겼는데 선생님은 짱이에요.
제가 막 싸가지 없게 행동해서 죄송해요~
그런 성격이 잘 안 고쳐져서!!
중학교 때부터 그랬어요.
노력은 해볼게요.
(…)
제 생일날도 꼭 시 써주세요.
기대할게요. 그럼 항상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지난 3월 한 달 동안 세 명의 아이가 생일을 맞이했다. 해마다 그래왔듯이 올해도 생일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생일시를 써주고 있다. 영주의 눈에도 그것이 좋게 보였던 모양이다. 생일을 맞이한 아이들과는 편지도 주고받는다. 지난 3월 28일 생일을 맞은 채원이와는 장문의 편지를 여섯 차례나 주고받았다.

그 닷새 전인 3월 23일 생일을 맞은 다영이의 편지는 고민에서 희망으로 색조가 변해가고 있었다. 1분간의 기적, 그 틈새를 노리는 선생인 나도 늘 고민에서 희망으로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써서 두 아이에게 준 생일시를 소개한다.

♤시 하나

고민녀에서 희망녀로  

난 고민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지
내가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길을 가야할 지 모르겠는데
고민하지 않는 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니까  


간호사가 되려면 자격증도 따야 하고  
영어도 잘 해야 하는데
다 못하는 것뿐이라고 
너의 첫 편지는
고민으로 시작해서 고민으로 끝이 났지 


그런 고민녀의 편지를 읽으면서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는데
아직은 불이 가 닿지 않은  
이제 곧 활활 타오를 것 같은
통나무가 생각났기 때문일 거야  


넌 보석이 되기 직전의 원석이랄까
넌 그러니까 누군가가
누구보다도 네 자신이
아직 너를 충분히 갈지 않았을 뿐
네 안에는 빛날만한 것들이 많다는 걸
난 알고 있었던 거지 


너에게서 온 두 번째 편지에는
마치 봄 언덕에 핀 제비꽃처럼      
희망이란 단어가 하나 둘 돋아 있었지
너의 생각 속에 핀 꽃들이
참 아름다웠단다


이제 너의 삶 속에서도
예쁘고 튼실한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너를 위해 먼저 태어난 선생인 나를 딛고
꿈을 이루어가기를
꼭 그럴 수 있기를.  


2012년 3월 23일
사랑하는 다영이의 생일을 축하하며, 담임선생님이 


♤시 둘

너보다도 더 너를 사랑하는

3월 28일 새벽 4시
눈 비비며 일어나 너를 생각한다


오늘은 17년 전 네가 태어난 날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네가 이 세상으로 온 날
너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첫 울음을 터뜨린 날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왜 울음을 터뜨린 것일까?  
그 이유를 알고 싶거든
지금이라도 엄마의 배를 만져보렴
아빠의 이마에 손을 얹어보렴


만난 지 채 한 달도 못 되었는데
너와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그 깨알 같은 글자 속에도
행복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
너의 고민, 너의 불안
이런 것들도 함께 섞여 있었지


네가 태어난 춘삼월
생명이 꽃피고 세상이 다시 열리는
이 눈부신 봄날에도 
꽃샘바람 세차게 불어오듯이   
그런 게 인생이란다
그런 게 아름다움이란다


다만, 잊지 말기를
너를 너로 있게 한 사람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너 보다도 더 너를 사랑하는
그 분들의 뜨거운 응시를.       


2012년 3월 28일

사랑하는 채원이의 생일을 축하하며, 담임선생님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교육공동체 벗>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교육공동체 벗>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순천효산고등학교 #교육공동체 벗 #생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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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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