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 같지 않던 황토색 어린시절 봄날

[리뷰] 극단 백수광부의 연극 <봄날>

등록 2012.04.01 17:46수정 2012.04.0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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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백수광부의 연극 '봄날'의 두 주연. 인정없지만 자식사랑뿐인 아버지(오현경 역)와 집안의 기둥인 장남(이대연 역)역을 잘 표현해 주었다. ⓒ 문성식 기자

극단 백수광부의 연극 '봄날'의 두 주연. 인정없지만 자식사랑뿐인 아버지(오현경 역)와 집안의 기둥인 장남(이대연 역)역을 잘 표현해 주었다. ⓒ 문성식 기자

"봄날은 짧다"

 

연극 <봄날>(극단 백수광부, 이성열 연출)에서 아버지(오현경 역)가 일곱 아들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명동예술극장에서 3월 16일부터 4월 2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봄날>은 겨울에서 어느새 은근슬쩍 봄이 되버린 지금 계절과 예나 지금이나 변치않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었다.

 

연극 <봄날>은 2009년 서울연극제 연출상(극단 백수광부, 연출 이성열),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기대상(오현경),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되며 관객과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았다. 2011년에는 극단 백수광부 창단 15주년 기념작으로 공연, 올해는 명동예술극장 공동 제작 공모에 선정되며 다시 무대에 오른 <봄날>은 극단 백수광부의 대표작이다.

 

고즈넉한 황토색의 시골 초가집에서 일곱형제는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산다. 아버지는 늘 아들들에게 일만 시키고 밥은 적게 주고 재산은 물려줄 생각도 안한다. 성격 좋고 엄마같은 큰형(이대연 역)은 아래로 여섯 남동생을 돌보며 늙은 아버지를 수발하며 장가도 못가고 병약한 막내동생(김현중 역)까지 챙기며 집안을 돌본다.

 

기나길고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시골생활은 말썽쟁이 뭉치인 가운데 다섯아들들이 분란을 일으키며 마감된다. "천년만년 살 것만 같은" 아버지에게 그들은 송진가루를 녹인 물로 세수를 하고 마를 때 떼어내면 얼굴이 팽팽해진다고 속여 아버지의 눈이 떠지지 않을 때, 아버지가 숨겨뒀던 돈을 한 바구니씩 나눠가지고 시골집에서 도망간다. 하지만, 그들이 이제는 도시에서 '아버님 전상서'라며 편지를 보내고 싶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그러지도 못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무대는 초가집과 마을로 가는 길목을 표현하여 여백의 미가 있고 간단하다. 하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황토색의 초가집과 마당, 그 옆으로 다섯형제가 불평을 늘어놓으며 황소처럼 일하는 뒷산의 밭은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갈등구조를 나타내기에 충분하였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지리하고 '졸린' 시골의 어린시절 안에서 추상같이 무섭고 부려먹기만 하는 아버지와의 이야기는 황토색 무대에서 집중감있게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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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봄날'의 똘똘뭉친 둘째부터 여섯째까지 다섯아들(박완규, 강진휘, 박혁민, 정훈, 유성진 역). 인정없는 아버지에게 불평하며 일하는 역할. 우화적인 대사와 노래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 문성식 기자

연극 '봄날'의 똘똘뭉친 둘째부터 여섯째까지 다섯아들(박완규, 강진휘, 박혁민, 정훈, 유성진 역). 인정없는 아버지에게 불평하며 일하는 역할. 우화적인 대사와 노래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 문성식 기자
특히, 그 이야기 전개의 힘은 무엇보다도 이강백 대본의 우화적이고 시적인 대사에 있었다. 옛 3언4구 정형시를 듣는 것 같은 낭송체의 대사는 운율적이어서 듣기에도 정감있었고, 의미전달에도 간결하고 함축적이었다. 주로 이 형태의 대사는 둘째부터 여섯째까지 형제들이 '음머~'하고 황소 흉내를 내면서 일할 때, 아버지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을 때 사용되는데 익살스러우면서 정겨운 장면을 연출해주고 있었다. 

 

반면, 아버지와 집안의 기둥인 장남의 대화는 서술적이고 구체적이다. 아버지의 대사는 옛 어른들의 꼬장꼬장함이 담겨있는 그 내용 자체 만으로도 재미있다. 특히 1984년 <봄날> 초연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았고, 지난 2009년 25년 만에 같은 역할로 무대에 선 아버지 역의 오현경은 인정머리 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자식생각밖에 없는 우리네 늙은 시골 아버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실제로 그가 살아오고 또 연극 <봄날>의 아버지로 우리 곁에 있었던 세월 만큼이나 원숙한 연기로 작품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또한 2009년에 이어 또다시 장남역으로 오현경과 호흡을 맞춘 이대연 역시 차분하고 정스럽지만 아버지를 잘 모시면서도 동생들의 답답함을 잘 대변해주는 장남 역할을 편안한 톤으로 표현해내어극의 중심을 잘 살리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를 등에 업고 동생들에게 이제는 재산을 나눠 주시라며 안 나눠 주시면 아버지 업고 있다가 떨어트릴거라며 다 큰 아들로서 순하게 협박하는 모습은 무척 훈훈하며 '저게 바로 큰아들'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는 음악 역시 극단 백수광부가 전 작품 <안티고네>에서도 보여준 특성인데, 이번 작품에서도 효과를 발휘하였다. 이번에는 생황과 가야금 등 국악기 전문 연주팀이 있었지만, 장면 연출에 필요한 중창과 효과음악은 배우들이 중간중간 직접 하였다. 병약한 막내와 스님들이 업고 온 소녀 업동이의 이야기로 지루함을 덜었으며, 오현경, 이대연 두 주연배우의 연기력과 극단 백수광부 대표인 이성열 연출의 재미있고 입체적인 연출력, 극단 백수광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뒷받침된연극 <봄날>이었다.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 출연 오현경, 이대연, 강진휘, 박완규, 유성진, 박혁민, 김현중, 정 훈, 김란희, 홍기용, 이반석, 민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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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식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KNS서울뉴스(http://www.knsseoulnews.com)에도 함께 송고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2012.04.01 17:46 ⓒ 2012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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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봄날 #극단 백수광부 #오현경 #이대연 #이강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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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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