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꿈꾸는 테러리스트, 전쟁을 시작하다

[리뷰] 빈스 플린 <집행권>

등록 2012.04.19 09:28수정 2012.04.1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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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집행권> 겉표지

<집행권> 겉표지 ⓒ 랜덤하우스

사해와 지중해 사이의 좁은 땅덩어리, 그곳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갈등이 심한 지역일 것이다. 20세기 들어서 그 갈등은 1948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점령하고나서 본격화되었다.

여러 차례의 중동전쟁이 터지고, 그 이후에도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테러-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이 분쟁이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도 답답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도무지 이 문제를 풀어낼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평화를 원한다. 대놓고 평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나. 문제는 함께 공존하는 평화가 아니라, 상대를 몰아낸 이후의 평화를 바란다는 점이다.

빈스 플린의 2003년 작품이자 '미치 랩 시리즈' 네번째 편인 <집행권>에는 팔레스타인의 분리독립을 원하는 테러리스트가 한명 등장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미국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데이비드가 바로 그 인물이다. 데이비드가 원하는 것은 현재의 영토에서 모든 이스라엘 유대인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다.

계속되는 중동의 갈등

사실 그런 바람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데이비드는 대신에 UN이 인정하는 팔레스타인 민족만의 독립국가를 세우기를 바란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데이비드는 그동안 수많은 테러를 구상하고 실행해 왔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돈 많은 왕자, 이라크의 장군, 이스라엘의 정보원,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 사이를 오가며 자금을 마련하고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며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꿈꾼다. 이제 데이비드는 중동의 정세를 변화시킬 마지막 여정의 첫걸음을 시작하려 한다. 평화를 얻기 위한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한편 주인공인 미치 랩은 얼마전 필리핀에서 있었던 미군의 작전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필리핀에서 미국인 가족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었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특수부대가 파견되었다. 그런데 어떤 경로인지 특수부대의 작전이 사전에 새어나갔고, 오히려 테러리스트들에게 특수부대원 두 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CIA 국장의 대테러 특별 보좌관인 미치 랩은 이 사실에 분노한다. 마흔살을 바라보는 랩도 데이비드처럼 젊은 시절에 국가안보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랩은 결혼과 함께 내근직으로 옮겼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애국심과 정의감은 랩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결국 랩은 자신이 직접 대통령에게 건의해서 다시 부대를 구성하고 직접 필리핀으로 날아간다.


언제 평화가 찾아올까

팔레스타인 지역이 '화약고'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곳의 갈등은 2천년 전부터 있었다. 당시 유대지역은 로마의 속주였지만 로마법보다는 유대교의 율법을 더욱 중시했다. 신약에 등장하는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로마군단의 상징인 독수리깃발을 성문에 걸자 유대인들이 '저 우상을 치워달라'며 단식농성을 했을 정도다.

결국 로마는 유대전쟁을 일으켜서 모든 유대인들을 이 지역에서 몰아냈다. 그로부터 2천 년이 지난 후에야 유대인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유대인들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한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그 땅을 지켜왔지만 아무것도 발전시키지 못했다. 반면에 돌아온 유대인들은 한 세대 만에 메마른 땅을 풍요로운 농장과 과수원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중동이나 이슬람 국가를 배경으로 미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집행권> 같은 작품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이전에 발표된 '미치 랩 시리즈' 세 편에서도 랩은 항상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을 상대한다.

등장인물들은 임무를 수행하며 '미국에게 먼저 시비를 건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때로는 적들보다 더 잔인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폭력의 악순환이다. 독자들이 작품을 읽으면서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작가가 심어놓은 트릭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집행권> 빈스 플린 지음 / 이훈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덧붙이는 글 <집행권> 빈스 플린 지음 / 이훈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집행권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5

빈스 플린 지음, 이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2012


#집행권 #빈스 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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