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법으로 금지할 수 있을까

[주장] '선행학습 금지법' 제정 요구가 놓친 것들

등록 2012.04.30 09:57수정 2012.05.01 16:20
0
원고료로 응원
며칠 전 학부모, 전현직 교사 등 교육에 있어 관심과 전문성 있는 이들로 구성된 한 시민단체가 '선행학습 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이들이 우리 교육 문제를 고민한 끝에 택한 대책 중 하나였다.

선행학습이 교육적 효과도 없을 뿐더러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방해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현장을 아는 이들에게 적잖이 와닿는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에서 학년과 학교급을 선행해 학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이 중학교 수학을 배우는데, 이때 우수한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수업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막상 중학교 교실에서 이들은 '이미 들어봤다'는 이유로 학습의 흥미를 잃고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아이들이 '신선도'가 낮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면 교사들 역시 수업 진행에 어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아예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은 '모든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들어왔다'는 전제하에, 중학교 1학년 영어 교사는 '모든 아이들이 기초 영문법 정도는 다 떼고 들어왔다'는 전제하에,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수학 교사는 '모든 아이들이 정석을 한 번은 보고 들어왔다'는 전제하에 수업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극소수의 선행학습 미이행 학생들을 소외시키고 결국 더 많은 아이들을 선행학습 시장으로 내몰게 된다.

이 같은 문제점들 때문에 우리 교육 현장에서 선행학습을 추방해 우리 아이들이 제 나이에 맞게 공부하고 제 나이에 맞게 뛰어놀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고자 이 시민단체는 관련법 제정이라는 다소 과감한 대안을 들고 나오게 된 것이다.

'교육적 효과' 없으면 금지해도 될까?

그런데 그 취지가 바람직하다 해도 '금지법 제정'은 좋은 대안이 아니다. "선행학습은 교육적 효과가 없다"는 주장과 "선행학습 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또는 제정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잠시 교육을 떠나 법의 영역에서 법의 논리로 선행학습 금지법 제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에 앞서 떠오르는 책 한 권이 있다. 헌법학을 전공한 김욱 서남대 교수의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개마고원, 2005년)가 바로 그것이다. 선행학습 금지법 제정 논란과 상당히 유사한 사안에 대해 이 책은 이미 깊은 수준까지 분석해 놓았다.

기성세대들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은 군부독재의 힘으로 여러 단호한 정책들을 펼쳤는데 과외전면금지법 제정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7.30 교육개혁'을 통해 재학생의 과외 교습은 물론 학교 보충수업까지 전면 금지되었다. 날로 뜨거워지는 과외 열풍과 이로 인한 부작용들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 뒤 20여 년 동안이나 과외교습이라는 사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왔다. 점차 그 규제가 완화돼 학원이나 대학생 과외, 친족이나 봉사활동을 통한 과외는 허용되기에 이르렀으나 이들을 제외한 과외교습은 엄연한 불법이었다.

그런데 컴퓨터통신을 통한 과외교습을 하는 업체인 '하누리교육' 대표는 이처럼 과외교습을 금지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과외금지법이 자신과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기 한다고 판단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만은 실현되었다고 평가받는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독재정권하에서 '정당성 여부를 떠나 제정'되었던 이 법은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김욱 교수는 '아주 상식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과외 금지법은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부모의 입장에선 자녀교육권, 아동과 청소년 입장에선 행복추구권, 그리고 과외교사나 업체 입장에선 직업의 자유권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익적 의도라도 '과잉금지의 원칙' 어기면 안 돼 

물론 이 법의 취지, 즉 입법 의도가 공익에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 국민에게 다양한 기본권이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37조 2항에 의해 '공공복리, 질서유지, 국가안전을 위해서는' 기본권이라 해도 제한이 가능하다.

그런데 과외금지법은 공공복리를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특히 고소득층이 고액과외를 통해 '공정하지 못한 경쟁'을 펴는 것을 막는 것이 공익이라는 논리가 크게 작용했다. 또 질서유지도 입법 목적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국가가 부득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과외교습에 있어 사회는 자율성을 상실하고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공복리와 질서유지라는 공익에만 주목하자면 과외금지법은 합헌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헌법재판소에서 9명의 재판관 중 6명은 위헌, 2명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김욱 교수는 위헌과 헌법불합치의 핵심적인 이유를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하여 비례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문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한다. 김욱 교수에 따르면 그 의미란 '제 아무리 공익을 목적으로 한다 해도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과잉금지의 원칙'의 확인에 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 건강'을 위해 음주 전후, 숙취 해소 등 음주를 조장하는 내용을 표시한 업체를 벌하거나, '공정선거'를 위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의 현행범으로 체포된 여자들을 유치장에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들로 하여금 경찰관에게 등을 보인 채 상의를 속옷과 함께 겨드랑이까지 올리고 하의를 속옷과 함께 무릎까지 내린 상태에서 3회에 걸쳐 앉았다 일어서게 하는 방법으로 실시한 신체 수색 등의 사안들을 언급한 뒤, "생각할수록 얼마나 목적만을 앞세운 '과잉!'한 제한이었던가?"(그는 이렇게 '과잉'이란 단어를 작은따옴표뿐 아니라 느낌표까지 사용하며 강조에 강조를 더했다)라고 반문한다.

결국 당시 헌법재판소의 분석이나 김욱 교수의 분석 모두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해도 기본권을 함부로 제한하면 안 된다"는 한 가지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와 같은 중요한 교훈을 남기며 과외금지법이 위헌 판결하에 사라진 지 십여 년 만에 지금 다시 선행학습 금지법을 만들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교육계 전문가들이 선행학습의 교육적 무효과나 부작용을 거론하며 "과외를 전부 금지하자는 게 아니라 선행학습만 금지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법의 논리로만 보자면 과외학습과 선행학습을 구분짓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금지법이 제정되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제정된다 해도 이는 과거와 같이 다시 위헌 논란을 겪고 또 위헌 판단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그런 면에서 해당 시민단체가 교육적 측면이 아닌 법적 측면의 검토에는 부족함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진짜 괴물은 입시경쟁과 학벌중심 사회

하지만 기본권의 과잉 제한 논란, 위헌 논란을 떠나 '선행학습 금지법'에 대한 목소리 자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자녀를 선행학습을 위한 보습학원에 보낼지 말지, 영어유치원에 보낼지 말지는 분명 개개인의 자율적 선택에 맡길 사적 영역이며 이에 대해서까지 국가가 제한하는 것은 '과잉'이겠지만, 금지법을 만들자고 외칠 정도로 이런 모습들은 그야말로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2000년 당시 홀로 과외금지법의 합헌을 주장한 이영모 재판관이 남긴 반대의견 말미의 여론(餘論)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과외금지법 위헌 결정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과외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학생, 학부모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힐까 걱정"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또 "대입수능의 정당성 여부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아니한 채" 개인과외교습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사교육이, 또 선행학습이 과도하게 팽창하며 우리 아이들을 힘겹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사교육이나 선행학습 그 자체가 아니라 이면에 숨어 있는 괴물에게 있다. 그 괴물의 정체는 입시경쟁이고 또 학벌위주사회다. 괴물의 정체를 알고도 없애지 못하는 한 설사 선행학습 금지법이 만들어진다 해도 우리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과도한 짐들이 어떻게 덜어질 수 있을까?

최근의 '선행학습 금지법 제정' 목소리는 이처럼 옛 판례를 떠올리며 기본권과 국가의 권력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만든다. 또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독재정권하에서 등장했던 '퇴보적인' 법 제정 요구가 나올까, 도대체 '정상적인 교육 현장'은 언제쯤 조성될 수 있을까 하는 탄식을 불러일으킨다.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
#선행학습 #선행학습 금지법 #사교육 #과외 금지법 #헌법재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