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한텐 안 준다는 생선, 이유가 있었네

[2013 전국투어 - 광주전라⑦] 전라도의 기막힌 '생선투어'

등록 2013.06.21 16:26수정 2013.06.2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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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6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광주전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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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생선 팔도 요리 중 최고인 전라도 요리는 각종 생선과 신선한 해물이 주재료다. 서대, 삼치, 노래미, 병어, 금풍생이, 전어, 홍어, 낙지를 비롯한 전라도의 맛깔난 생선들은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즐비하다. ⓒ 김학용


어느날 전라도 생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슬그머니 안주를 챙기던 꽁치, 그만 멍게한테 들켜버렸다. 멍게는 꽁치에게 "움마? 쪽팔리게 안주를 '꽁치'냐?"며 나무랐고, 무안한 꽁치는 "아따, 안주가 나하고 좀 '멍게' 그래 부렀네?"라며 둘러댔다. 가장 많이 취한 꼴뚜기는 하염없이 딸꾹질을 해댄다. "꼬올 뚝~!  니들은 시방 몇 항년인디 싸우고 난리들이냐? 꼬올 뚝~!"


이때 술 취한 홍어, 갑자기 말 많은 갈치를 보더니 소리를 지른다. 홍어는 갈치를 향해 평소의 감정을 실어 "니는 쩌어기 경상도나 충청도서도 자주 보이든디, 출신성분도 애매한 니가 요즘엔 우리를 '갈치'려고 드냐?"고 따진다.

홍어 말에 열 받은 갈치는 "오메, 만만한 게 '홍어X'이냐? 에라이, 이 '홍어X' 만도 못한 놈아!"라며 역정을 낸다.

홍어에서 나오는 전라도의 힘

흔히 도는 우스개 이야기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만만한 게 홍어X(수컷의 생식기)'이란 표현이 요즘 자주 들려온다. 종북·좌파 의미까지 더해진 '냄새나는 홍어'라는 표현은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로 종종 쓰인다. 특히 '홍어X'라는 말은, 홍어 수컷을 잡으면 아무 쓸모없는 생식기부터 먼저 떼어낸다는 데서 비롯된 말로 주로 '만만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홍어' 이름으로 사람을 무시하고 짓밟는 건, 곧 전라도의 바탕을 부정하는 행위와 다름 없다. 전라도 사람의 힘의 원천은 홍어에 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리라. 오죽하면 "홍어를 못 먹으면 전라도 사람도 아니랑께?"라는 말이 있을까. 


누가 뭐라 해도 홍어는 전라도에서 최고 귀한 대접을 받는 생선이다. 얼마나 좋은 홍어가 나왔느냐에 따라 잔치의 품격과 수준이 정해지기도 한다. 보통 홍어를 삭혀 먹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흑산도에서는 삭히지 않고 회로 먹고, 목포에서는 살짝만 삭혀서 먹기도 한다.

삭힌 홍어와 삶은 수육, 김치를 함께 먹는 '삼합'. 삼합의 풍족하고 깊은 맛을 그 어떤 음식이 따를 수 있단 말인가. 떠올리기만 해도 자꾸만 침이 고이는 강렬한 맛이다. 이렇게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합만으로도 환상적 맛을 자랑하는 삼합도 전라도에서는 '생선요리의 하나'일 뿐이다.

톡 쏘는 홍어를 자랑스럽게 먹을 만큼 독특한 식문화를 갖고 있는 전라도의 음식은 각종 생선과 신선한 해물이 주재료다. 맵지도 짜지도 않은 맛깔나는 생선요리의 탁월함과 조리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임금님 수라상에까지 오른 귀한 음식 서대회, 입 속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삼치회, 저렴한 가격으로 푸짐한 인심을 맛 볼 수 있는 게장, 시원하고 얼큰한 맛이 으뜸인 노래미탕, 담백함이 일품인 장어탕과 장어구이 등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맛있는 음식이 즐비하다.

팔도 중 최고인 전라도 음식은 푸짐한 해산물과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오는 갖가지 반찬이 특징이다. 전라도에서는 다른 구경 하나도 안 하고 생선요리만 찾아 다녀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전라도를 찾는 사람이 '볼거리'보다 '먹을거리'에 더 열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전라도 해변 여행... 생선만 찾아 나서도 좋다

먹을거리, 볼거리, 즐길거리의 3박자가 잘 어우러진 전라도 해변을 따라 발길이 머무는 데로 심신에 보약이 되는 맛있는 생선요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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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풍생이 농어목 하스돔과의 바닷물고기로, 경상남도에서는 꾸돔, 전라남도 일부 섬지방에서는 쌕쌕이라고 불린다.(자료출처:http://yeosu.grandculture.net/) ⓒ 디지탈여수문화대전


전남 목포와 신안에 홍어가 있다면 여수에는 서대와 금풍생이가 있다. 서대는 홍어회와 비슷한 방법으로 막걸리 식초를 사용해 양념과 야채를 버무려 새콤달콤한 맛으로 즐기는 생선이다. 서대는 여수 인근 광양과 순천에서도 회, 조림, 구이, 찜, 찌개 등으로 연중 즐긴다. 특히 비린내가 나지 않는 몇 안 되는 생선이어서, 탕을 끓여도 기름기가 없고 살코기가 부드러운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관련 기사 : 금풍생이-서대 등 이름만큼 특이한 '별미')

농어목 돔과의 금풍생이는 뽀얀 속살이 드러나는 구이가 일품이다. 남해안 얕은 바다에서 봄과 여름철을 보내고, 가을이면 더 남쪽으로 이동해 월동하는 회유성 어종이다. 바다 밑바닥에 서식하기 때문에 주로 그물을 끌어서 잡으며, 6~8월께에 많이 잡힌다.

살이 단단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금풍생이는 주로 양념구이로 먹으며, 내장과 대가리까지 어디 하나 버릴 게 없다. 다른 지역에서는 생소한 이름의 생선이지만, 여수에서는 본 남편한테는 아까워서 안 주고, 숨겨뒀다 다른(?) 서방에게만 몰래 준다고 해서 '샛서방 고기'라고도 불린다.

금풍생이 맛을 봤으니, 이제 무슨 맛을 보러갈까. 금풍생이와 함께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남해안 최고 별미를 꼽으라면 바로 병어다.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는 마름모꼴의 병어는 생긴 건 진짜 못 생겼어도 맛은 최고다.

바다 수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5월부터 많이 잡혀 '5월 병어'라고도 불리는데, 비늘 없는 흰살 생선이어서 비리지 않고 씹는 맛이 담백하다. 회, 무침, 조림 등 어떻게 요리해도 별미다.

5~6월에 싱싱하고 큼직한 것으로 손질해 냉동실에 넣어 두면 좋다. 얼린 병어는 흐물흐물해지기 전에 뼈째 썰어 깻잎이나 양파조각 위에 올린 뒤 마늘과 청량고추를 곁들어 먹으면 제맛이다.

오는 10월 20일까지 열리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더욱 빛내는 것은 역시 다양한 먹을거리다. 특히 청정해역을 자랑하는 순천만 갯벌에서 나는 짱뚱어탕이 그 중 유별나다. 짱뚱어는 농어목 망둑어과로 작은 눈이 머리꼭대기에 붙어 있는 납작한 모습을 지녔는데 장뚱어, 짱퉁어 등으로도 불린다.

허영만이 반한 정어리 쌈... 사실은 대멸

짱뚱어탕은 짱뚱어를 삶은 육수에 된장, 우거지 등을 넣어 추어탕처럼 걸쭉하게 끓여 내야 제맛이다. 김치를 잘게 썰어 넣어 칼칼한 맛을 자랑하는 곳도 있다. 짱뚱어는 겨울잠을 자므로, 겨울철 상에 오르는 것은 대부분 냉동 짱뚱어다. 요즘 잡히는 짱뚱어는 해장이나 더위를 달래는데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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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 <식객>의 허영만 화백이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꼽은 전라도 토종음식인 정어리 쌈의 재료가 되는 생선의 정체는 대부분 ‘대멸’(큰멸치)이다. ⓒ 김학용


여수 출신의 허영만 화백은 <식객> 27권 완간 기념 간담회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주저 없이 전어회 무침과 정어리 쌈을 꼽으며 입맛을 다셨다. 어릴 적 정어리조림을 상추쌈에 싸먹었던 그 맛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식객> 10권에도 정어리 쌈이 등장한다.

전라도 토종음식인 정어리 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찾아간 여수항. 그런데 배 위에서 털고 있는 것은 멸치가 아닌가. 정어리 쌈의 재료가 되는 생선의 정체는 대부분 '대멸'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전라도에서 즐겨 먹는 정어리 쌈에 등장하는 생선은 20㎝가 넘는 청어과의 정어리가 아닌 멸치 중에 가장 큰 '대멸'이다. 재료야 어찌되었든 정어리 사촌인 큰 멸치를 자작하게 졸여낸 후, 쌈에 얹어 뼈째 씹어 먹는 맛은 독특하다. 통통하게 살 찐 멸치를 쌉싸래한 상추에 싸 먹으면 칼슘 덩어리를 통째로 먹는 셈이니 왠지 건강해지는 느낌도 든다.

남해안의 장어 요리도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장어는 주로 네 가지 종류로 나뉜다. 흔히 우리가 장어구이로 먹는 장어가 있고, 보통 포장마차에서 꼼장어라 불리는 먹장어, 아나고라는 이름으로 회로 먹는 붕장어, 그리고 여름별미로 유명한 '하모'다.

'하모'는 갯장어를 이르는 말인데, '유비키'(팔팔 끓인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데침식 요리) 뿐만 아니라 통구이도 일품이다. 여름철 하모는 여수 국동항에서 나룻배를 타고 5분 거리에 있는 섬 경도에서 특히 유명하다.

가을이 오면 전어의 유혹이 시작된다. 전어의 맛을 가장 잘 나타낸 표현으로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는 말이 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전어는 7월 산란을 마친 후 먹이활동을 하면서 살을 찌우기 시작한다. 8월 중순이면 기름지고 살에 탄력이 붙어 추석을 전후하여 고소함이 절정을 이룬다.

특히 남해안에서 나는 가을 전어에는 지방성분이 봄, 겨울보다 최고 3배나 높아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는 속설을 뒷받침 한다. 전어는 뼈째 먹는 회가 일품이며, 매운 양념과 미나리를 섞어 만든 회 무침도 별미다. 무엇보다도 구이를 고소하게 먹으려면 등 쪽에 서너 곳 칼집을 내서 구워야 냄새에 취하고 맛에 또 취한다.

전라도 생선 여행, 풍경을 능가하네

전어는 비늘을 벗긴 뒤 뼈째로 두툼하게 회를 썰어 양념된장과 마늘을 곁들여 상추쌈을 싸 먹어야 가장 맛이 좋은데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뒷맛은 깊고 은은하다.

마지막으로 신안과 무안에서 나는 낙지를 만나보자. 낙지는 구수한 국물 맛의 연포탕과 함께 '낙지+갈비+왕새우찜'이 일품이다. 특히 기절낙지는 낙지를 바구니에 넣고 왕소금을 뿌려 흔들며 낙지 표면에 묻은 '곱'(미끈한 점액 성분)을 씻어낸 것을 말한다.

씻는 과정에서 낙지가 소금기에 기절하여 꼬들꼬들해져 쫄깃쫄깃한 맛을 더해주니 귀가 막히고 코가 다 막힌다. 죽은 것처럼 가만있던 낙지를 초장과 갖은 양념으로 버무리면 움찔하며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기절낙지'라 불린다.

사람들이 먹고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지만, 남도의 여름은 특별한 맛이 있다. 그 어느 해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 처진 몸과 마음을 깨우는 데 맛있는 음식만큼 좋은 게 또 어디 있을까?

전라도 여수부터 목포까지 해변을 따라 발길이 머무는 데로 전라도의 생선 별미를 즐겨보자. 입 안 가득 퍼지는 맛라도의 여름을 즐기다 보면 풍경은 그저 덤이랑께~.
#생선 #전국투어 #광주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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