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푸른 눈의 금발머리 소녀가 집시라니...

아동 납치 논란 끝에 결국 DNA 검사로 밝혀져... 집시에 대한 편견 드러내

등록 2013.10.27 14:22수정 2013.10.2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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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리스 경찰은 무기, 마약단속을 위해 그리스 중부 지방에 위치한 로마인 집시촌을 들이닥쳤다가 '마리아'라는 이름의 한 소녀를 발견했다. 로마인들이 짙은 올리브색 피부에 검은 머리인데 반해, 마리아가 금발에 푸른 눈임을 의심해 아테네에 있는 '스마일 포 칠드런(Smile for Children)'이란 이름의 아동위탁소에 맡겼다.

곧 이어진 DNA 테스트 결과 이 로마인 부부가 마리아의 생부모가 아니란 것이 밝혀졌다. 그리스 경찰은 로마인 부부들이 아이를 납치했다고 의심하고 대대적인 친부모 찾기에 나섰다. 마리아의 사진은 SNS와 서구 언론들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마리아를 키우고 있던 로마인 부부는 다른 로마인 여성이 마리아를 낳은 직후 버리고 간 것을 자신들이 입양해 친자식처럼 키워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리스 경찰은 이들이 아동을 유괴했을 것이라고 보고 체포하고, 마리아를 로마인 부부로부터 강제 분리해 아동위탁소에 맡겼다.

이 과정에서 경찰 당국은 마리아의 백옥 같은 피부와 금발머리, 파란 눈을 이유로 들어 마리아가 북유럽에서 부모와 함께 그리스로 휴가를 왔다가 납치 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난 한 주 동안 특히 유럽과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마리아 사건은 일제히 보도됐다. 누리꾼들도 SNS를 통해 마리아의 사진을 퍼날랐다.

그리고 지난 24일 드디어 마리아의 생모를 찾았는데 놀랍게도 로마인이었다. DNA 테스트를 통해 마리아의 생모로 밝혀진 이 여인은 현재 불가리아에 사는 로마인 여성으로, 그리스에 올리브를 따는 단순노동자로 일하러 갔다가 현지에서 마리아를 낳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제적 이유로 마리아를 키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그녀는 이 지역의 로마인 부부에게 마리아를 주고 불가리아로 돌아갔다.

결국 다른 여성이 버리고 간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고 있었다며 결백을 주장한 로마인 부부의 말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북유럽에 사는 부부가 휴가 왔다가 로마인에 의해 마리아가 유괴, 납치됐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로, 마리아가 로마인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로마인 가정에서 아동이 강제 분리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아일랜드에 살던 로마인 부부가 친자식이라고 주장하는데도, 아동이 유괴됐을것이라고 의심해 강제 분리했다가 DNA 검사를 통해 친부모가 맞다고 밝혀지자 가정으로 다시 돌려보낸 사건도 있었다.


로마인들은 오랜 집시 생활로 인해 다른 민족과의 접촉이 잦아, 간혹 백인과 유사한 외모를 가진 아이들이 태어난다. 하지만 아이들이 백인과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유괴를 의심해 강제분리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인권침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제적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힘없는 소수민족을 싸잡아 아동 유괴범으로 낙인찍는 시선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각국의 취재진들이 몰려든 마리아의 생모가 사는 불가리아 집에는 10명이나 되는 자녀들이 다 허물어져가는 방 두 개짜리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나라를 가지지 못한 채 유럽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로마인들은 대부분 극빈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마리아의 생모는 도저히 마리아를 먹여 살릴 형편이 되지 않아 그리스의 로마인 부부에게 마리아를 맡기고 불가리아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마리아를 넘긴 대가로 어떠한 금전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금 경찰은 금전적 거래가 오갔는지 수사중에 있으며, 만약 금전적 거래가 오갔다는 게 밝혀지면 마리아의 생모는 6년형의 징역과 미화 1만600달러에 달하는 벌금에 처해질 것이라고 한다.

만약 마리아의 생모와 마리아를 입양한 부부사이에 금전적 거래가 오갔다면, 이는 명백한 아동 매매이므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정말 아동매매로 결론나더라도 전체 집시들을 아동 유괴범으로 낙인찍는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리아를 입양하고 길러준 부모들이 아이를 유괴한 것이 아니라고 사실을 말할 때도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금발머리, 푸른 눈, 흰 피부를 이유로 들어 집시들이 북유럽계 부모에게서 납치, 유괴한 아이일 것이라는 일방적 추측을 해댔다. 그러나 단 일 주일만에 이 금발머리의 소녀가 그들이 그렇게 멸시했던 집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동안 유럽의 각국들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가장 힘없는 약자, 소수민족, 집시란 이유를 들어, 조금만 생김새가 다르면 아이들을 집시인 친부모로부터 강제 분리하여 DNA 검사를 실시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마리아 사건은 2013년 유럽 내 소수민족, 집시들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보여는 한 예이다.
#로마 #집시 #그리스 #불가리아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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