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인은 재벌 경영권 승계 도구?

계열회사 주식보유 제한해야

등록 2013.11.07 20:53수정 2013.11.0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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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재단, 문화재단, 학교법인 등은 공익법인 즉 "사회일반의 이익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학자금·장학금 또는 연구비의 보조나 지급, 학술, 자선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다. 기업과 달리 공익법인은 이익을 목표로 하지 않기에 순수하게 개인이 운영하기에 쉽지 않으며,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재산 출연으로 설립, 운영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웬만한 규모 이상의 재벌그룹들은 사회공헌 사업의 명목으로 적어도 한 개 이상의 공익법인을 운영 중이다.

재벌들이 공익법인을 운용하는 것이 전적으로 공익적인 목적일까? 재벌들이 공익법인을 운용하는 것은 물론 공익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익법인은 순수한 공익목적 이외에 매우 효과적인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이용 가능하다는 유용성도 있다.

공익법인에 주식을 증여하여 경영권 승계 완성

정부 스스로 수행해야 하지만 여력이 없거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분야에서 공익법인이 사회복지 기능을 상당 부분 대신 수행하므로, 정부는 공익법인이 사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출연 받은 재산에 대해 상속, 증여세 면제 등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이용하여 재벌그룹이 소속 공익법인을 사회공헌 목적보다 지배주주 일가가 세금 없이 경영권 승계나 강화를 위해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배주주의 자녀에게 직접 주식을 증여하는 대신 공익법인에 출연하거나 불법행위로 인해 처벌받은 재벌 총수가 사회환원을 약속하며 본인 그룹 소속 공익법인에 출연할 경우, 지배권에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물론 정부는 조세감면 혜택과 동시에, 조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상속및증여세법상 출연재산의 사용 의무, 출연자 등의 이사취임 제한, 주식 출연․취득 및 보유 제한 등의 규정을 두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증여세, 가산세 등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각종 예외조항을 통해 가산세 부과를 면제하고 있어 실제로 규제효과를 얼마나 달성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현재 상증세법에 의하면 공익법인이 계열사 주식을 발행주식총수의 5%(성실공익법인의 경우 10%)까지 증여 받는 경우 세금을 내지 않는다. 1990년 이전까지는 공익법인의 주식보유 관련 규제 자체가 없었으나 1990년 공익법인이 계열사 주식 20%를 초과하여 취득하는 경우 초과분에 대해 상속증여세를 납부하는 규제가 도입되었다. 이는 재벌들이 공익법인을 이용하여 세금 부담 없이 회사 주식을 세습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삼성그룹의 경우 고 이병철 회장의 사망 전인 1970년대부터 삼성문화재단 등 소속 공익법인이 삼성물산, 제일모직 등 핵심 계열사의 주식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1993년 상속세법 개정에서 비과세 한도를  5%로 더욱 축소하여 규제를 한층 강화하였다가 2007년 공익법인 출연 활성화를 이유로 성실공익법인의 경우 10%까지 비과세 한도를 확대하였다.

공익법인 보유 주식 중 종목수 기준 60% 이상, 총자산 평균 30%가 계열회사 주식


2013년 현재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소속 공익법인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그룹은 36개였으며, 총 55개 공익법인이 219개 종목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계열회사 주식종목은 139개, 중복되는 회사를 제외할 경우 110개 계열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재벌 공익법인이 보유한 주식 종목의 60% 이상이 계열사 주식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재벌 공익법인이 어느 정도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 중인지 확인해 보면, 주식보유 비과세 한도인 5%를 초과하여 보유 중인 계열사 주식은 23개, 전체 대상의 20.91%에 불과했다. 반면 1% 미만 지분만을 보유한 계열사는 46개, 41.82%에 달했다. 즉 대부분의 공익법인이 비과세 한도에 맞추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극히 낮은 지분만을 보유한 계열사가 전체 주식보유 계열사의 절반 가까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비계열회사의 경우 대부분 1% 이하의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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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말 현재 보유한 계열회사 지분율에 따른 공익법인 분포.


재벌소속 공익법인의 경우 총자산의 평균 33.68%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으며 주식 중 87.75%는 계열회사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주식 보유를 단순히 공익법인들이 자산운용 목적으로 보유한 주식 중 우연히 계열사 주식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공익법인이 많은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 다수가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역할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있다. 전체적으로는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이 크지 않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는 계열사의 경우 해당 회사가 그룹 지배구조상 중요한 위상을 가진 회사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중요한 위상이란 그룹의 지주회사 또는 사실상 지주회사, 즉 그룹 소유구조의 정점으로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회사와 삼성생명과 같이 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한 회사를 의미한다.

조사 결과 하나의 공익법인이 3% 이상 지분을 보유한 계열회사 주식종목 42개 중 12개 회사가 사실상 지주회사 등 그룹 지배구조에 있어 중요한 계열회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그룹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은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 주식을 각각 4.68%씩 총 9.36%를 보유 중이며, 동부그룹 동부문화재단은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3개 계열회사 지분을 모두 3~5% 보유하고 있었다.

한진그룹 양현재단과 하이트진로그룹 하이트문화재단은 법적 지주회사 지분을 5% 초과하여 보유 중이며, 이랜드그룹은 이랜드복지재단이 5.62% 보유한 이랜드월드를 통해 그룹을 지배 중이다. 그밖에 한라, 태광, 태영그룹 소속 공익법인이 역시 대표적 계열회사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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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인이 3% 이상 보유한 계열회사 중 핵심계열사.


결국 공익법인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지분율(3% 이상)을 보유한 계열회사의 약 30%가 그룹의 핵심 계열사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공익법인의 사업활동에 대해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공익법인은 보유 주식을 순수하게 공익사업을 위한 자산으로서가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혹은 소유구조와 관련된 역할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주식 매각을 통한 수익창출 거의 없고 배당도 미미한 수준

공익법인이 주식인 자산을 이용하여 수익을 얻는 방법은 주식을 매각하거나 배당을 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재벌 공익법인이 계열사 주식매각을 통해 현금수익을 얻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더욱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불과 4건에 불과한 계열사 주식매각 사례는 온전히 공익법인의 수익 목적이 아니라 그룹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예를 들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경우 지배주주 일가의 경영권 분쟁에 동원되어 원래 보유하던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팔아 다른 계열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가 하면, 박삼구 회장 가족이 보유한 주식을 매입해 주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공익법인이 배당을 통해 충분한 수익을 얻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회사 주식의 공정가액 대비 배당금 현황을 조사한 결과 115개 주식종목의 공정가액 대비 배당금 비율은 평균 1.68%에 불과하였다. 즉 계열사 주식을 계속 보유하여 배당으로 얻는 수익은 주식을 현금화했을 경우 금융자산의 1.68%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당을 전혀 하지 않은 주식도 47개, 전체 분석대상의 40.87%나 되어 다수 공익법인들에게 배당은 주된 수입원이 되지 못한다. 

공익법인 주식보유에 대한 추가적인 규제

이와 같이 재벌소속 공익법인들은 배당수익이 적지만 계열사 주식은 매각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보유만 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주식을 많이 보유한 계열사는 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가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재벌 소속 공익법인은 물론 공익적 목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겠지만 이외에도 계열회사 주식을 재단의 수익 목적보다 지배주주 일가의 그룹 지배권 유지나 승계를 위한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고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익법인 출연주식 비과세 혜택이 주식출연 활성화를 통한 공익법인 수익확대라는 목적과 무관하게 악용되고 있는 만큼 계열회사 주식보유 제한을 좀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수정 기자는 경제개혁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재벌 #공익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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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혁연대는 소액주주 권익보호,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부의 재벌·금융정책 감시 등 1997년 이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활동을 보다 전문화하고 발전시키려는 경제전문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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