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이 말도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참회하는 시

등록 2014.05.06 13:05수정 2014.05.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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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이후 심각한 '멘붕' 상태를 겪고 있다. 도저히 글을 쓸 수도 없었다. <대전일보>에 한 달에 한 번씩 쓰는 칼럼 한 꼭지만을 겨우 썼을 뿐이다. 그 글도 제대로 쓸 것 같지 않았는데, 내 차례를 꼭 지켜야 할 고정 칼럼이어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 아닐까>라는 제목의 그 글을 좀 더 보강해서 <오마이뉴스> 지면에 올려볼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막상은 실행할 수 없었다. 수시로 세월호가 생각나고,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나고 온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현상은 길게 계속될 것만 같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 참회미사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 주최하는 첫 번째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모든 이웃을 위한 추모 참회미사'가 4월 30일 저녁 대한문 앞 광장에서 봉헌되었다. ⓒ 정현진


지난달 20일에는 진도를 다녀왔다. 전 세계 그리스도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날이었다. 천주교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리노 주교가 진도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진도로 달려갔다.

세월호 참사로 숨지거나 실종된 단원고 학생 중 24명이 천주교 신자라고 했다. 사고 직후부터 수원교구 안산대리구 사제 3분이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 상주한다고 했다. 20일 오후 8시 진도체육관 마당의 광주대교구 천막에서 거행된 이성효 주교 집전 미사에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참례했다. 미사가 진행되는 내내 흐느끼는 실종자 가족들을 보면서 슬프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미사를 지내야 했다.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주최로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대한문 앞 광장에서 거행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모든 이웃을 위한 참회 미사'에 나도 태안에서 달려가 참례했다. 8명의 사제와 600여 명의 수도자, 신자들이 참여한 이 미사에서 많은 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얼마나 큰 아픔이 온 국민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이웃들을 위한 미사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 주최하는 두 번째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모든 이웃들을 위한 추모 참회미사' 5월 5일 저녁 대한문 앞 광장에서 봉헌되었다. ⓒ 남인우


5월 5일 저녁에도 대한문 앞 광장에서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주최로 같은 지향의 미사가 봉헌됐다. 공휴일이어서 아내도 나와 함께 참례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도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슬픔을 공유하는 모든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우리 부부는 서울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일에 이런저런 형태로 이용되었거나 일조를 한 어른으로서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날 저녁 미사에서 난 영성체 후 '참회 추모시'를 낭송했다. 여덟 분의 사제와 600여 명의 수도자, 신자들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절절하게 낭송을 하다 보니 눈물이 났다. 내 시를 들으며 눈물을 닦는 이들도 있었다.

뼈아픈 내용이지만,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가족들, 슬픔을 공유하는 모든 이웃들에게 바치려는 뜻으로 이 지면에 '참회 추모시'를 소개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미사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 주최하는 두 번째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모든 이웃들을 위한 추모 참회미사'가 5월 5일 저녁 대한문 앞 광장에서 봉헌되었다. ⓒ 남인우


세상을 깨어나게 한 우리 아들딸들아!

4월의 봄꽃들 같았던 아들딸들아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꽃피는 4월 한창에
봄을 훼방하는 검은 악귀들이 숨어 있었음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하다
조선왕국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여객선이
일본에서 사들인 노후선이라는 것을,
전임 대통령 이명박이
선령 제한 20년을 30년으로 늘여놓은 것을
까맣게 몰라서 미안하다
돈밖에 모르는 자본의 탐욕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선체를 무리하게 개조한 사실을
까맣게 몰라서 미안하다
오로지 수익만을 위해
화물을 적정량보다 세 배나 싣고
평형수를 줄여 복원력을 상실한 배가
빙판길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위태롭게 항해하는 사실을
까맣게 몰라서 미안하다
안개 때문에 늦게 출항한 배가
30분을 벌충하기 위해
위험한 지름길 항해를 감행하는 것도
까맣게 몰라서 미안하다
관제소의 늦장 연락을 받고
단 한 척 출동한 해경 경비정이
선실 안에 갇힌 너희들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사실을
뒤늦게 알아서 미안하다
저 자본의 눈 먼 탐욕과 한통속이 되어
안전점검과 관리감독의 책무를 방기해버린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타락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살아서 미안하다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소리만 주절대고
구조 시간을 다 흘려버리며 우왕좌왕하기만 한
미숙한 정부의 태만과 무능을
눈뜨고 지켜보기만 해서 미안하다
암군 선조와 이승만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듯
수많은 생명을 배 안에 가둬놓고
저만 살겠다고 배에서 빠져나온 선장과 선원들
그 비겁함과 무책임함의 토대인 대한민국의 사회구조,
오늘의 야만적인 사회를 만드는 일에
나 또한 이용당하거나 무관심하였기에,
또는 용인하였거나 직간접으로 관여하였기에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사회정의가 실종된 풍토
민족정기와 고유의 직업정신들이 소멸된 나라
4년 전 천안함 사고 때
군인정신을 내팽개치고 스스로 패장임을 증명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던 군인 아닌 군인들
패장임이 증명된 덕에 오히려 승승장구한
가치전도의 표상들
비겁함과 무능함과 무책임함이 오히려 득이 되는
혼돈의 사회구조 속에서
세월호의 야만적인 항해가 가능했기에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미안하다
대한민국의 축소판인 세월호의 위험을
눈치 채거나 미리 알았더라도
항해를 막기보다는 모른 척했을 거라는
나 자신의 비겁함과 나약함 때문에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가슴 치며 눈물 흘리는 나 자신이 바보 같아
미안하다는 이 말도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자본의 탐욕과 결탁하여 경제제일주의에 발목을 묶고
창조경제라는 거짓 주술에 빠져
필요불가결한 규제들마저도 원수라 부르고 암 덩어리로 비유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저 천박한 권력을 용인해주고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오로지 권력만을 위해 불법부정선거를 감행하고
국민이 피와 눈물로 이룩해온 민주주의를 압살하기 위해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는 신유신정권의 폭주를
두 눈 뜨고 보기만 해서 부끄럽고 미안하다
저 1970년대의 문방구 실로폰으로
주구장창 종북타령이나 읊어대며 설치는 
저 휘광이춤을 참고 보기만 해서 미안하다
개조되어야 할 대상이 국가개조를 운위하는 세상
진실을 가리고 권력의 충견 노릇에만 열중하는 공영방송들
검찰 경찰 언론 등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는 현실이
너무도 암울하고 부끄러워 더욱 미안하다 
봄꽃들이 만발하는 4월 한창에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동요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거짓 방송에 속아
선실에 갇혀 바다 속에서 숨져간 아들딸들아
우리 가엾은 아들딸들아   
이 땅의 모든 어버이들이 슬프고 참담한 마음으로
서로서로 미안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너희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너희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길은
너희들을 죽음으로 내몬
언론독재와 자본독재, 검은 권력의 쇠사슬을
이 세상에서 과감히 끊어내는 일임을
오늘 새로이 뜨겁게 되새기며
다시 한 번 너희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한 가엾은 우리 아들딸들아
세상을 깨어나게 한 아들딸들아
저 하늘에서는 영생불멸하는 꽃으로 피어나기를
두 손 모아 눈물로 축원한다!
―아멘!

*2014년 5월 5일 저녁 대한문광장에서 거행된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모든 이웃들을 위한 참회 미사에서 낭송함

추모 참회시 낭송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 주최하는 두 번째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모든 이웃들을 위한 추모 참회미사'가 5월 5일 저녁 대한문 앞 광장에서 봉헌되었다. 나는 영성체 후에 '추모 참회시'를 낭송했다. ⓒ 남인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추모 참회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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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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