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도 약하다면, 몸이라도 불살라야 할까요

[희망편지 이어쓰기③] 우리는 굴뚝을 통해 이어져 있습니다

등록 2015.01.06 18:58수정 2015.01.0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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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7일 45미터 굴뚝에 올라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농성 중인 구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 5년의 투쟁 끝에 2014년 12월 13일 평택공장 70미터 굴뚝에 오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김정욱. ‘희망편지 이어쓰기’는 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각계각층 시민들의 응원가입니다. 그들을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늘의 노동자'들에게 부치는 편지를 보내주세요. [편집자말]

2014년 12월 16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굴뚝 농성장을 찾은 밀양 청도 주민들. 굴뚝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손지은


안녕하세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잘라 말하는 이유는 제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글쓰는 것 말고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쓸 뿐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제가 쓰는 글을 '르포'라고 부르더군요. 그릇된 권력과 싸우기 위해 들고 일어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글로 옮기는 탓에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내일 저는 새로 몸담게 된 일터에 첫 하루를 보내러 갑니다. 새해를 새 일터에서 시작하게 되다니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앞날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게 부닥쳐 올 새로운 시간들을 맞이하기 전에, 지금도 굴뚝 위에서 모진 추위를 견디고 있을 분들을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무턱대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스타케미칼과 쌍용자동차. 그리고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고공농성들. 그분들이 조명탑과 크레인과 광고판과 굴뚝에 오른 이유는 아마 그 위로 더는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광호. 김정욱. 이창근. 이 세 분이 올라가 있는 굴뚝은 하늘과 맞닿은 높은 곳이기도 하지만 더는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곳이기도 합니다. 굴뚝농성은 그 모습 그대로 이 시대 노동자들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땅 위 노동자들의 삶 역시 막다른 곳으로 자꾸만 내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취재를 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노조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주로 만나게 되지만, 그에 못잖게 돈만 아는 '저질'들도 많이 접하게 됩니다. 돈 밝히는 인간들은 갖가지 서로 다른 꼼수로 돈을 긁어모으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모은 돈을 지키기 위해 하는 짓거리들은 어슷비슷합니다.

잔뜩 불린 돈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안 쓰는 것이고, 안 쓰는 것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적게 쓰는 것입니다. 돈을 안 쓰며 살 수는 없으니, 돈 밝히는 인간들은 돈을 적게 쓰려고 하지요. 적게 쓰는 대신 나머지는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메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는 법이나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 마음속에 있는 탐욕과 이기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이 탄압받는 방식도 다 어슷비슷합니다. 정규직이면 해고하고 비정규직이면 2년만 쓰다가 버립니다(그 2년은 어쩌면 곧 4년으로 되겠지요). 말 안 들으면 욕하거나 두들겨 패고, 그래도 말 안 들으면 깡패나 경찰을 불러 '정리'합니다. 노조가 생기면 아예 사업장을 없애거나 하청업체를 바꿔버립니다. 물론 노동위원회나 법원도 노동자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노조에 가서 취재를 하든 비슷한 말을 듣게 됩니다.

"우리끼리 뭉치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굴뚝 위에서 높고 커다란 '물음표'가 된 당신들

그러나 돈벌레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돈을 불리듯 노동자들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출근투쟁을 하고 집회나 문화제를 열며 천막을 치거나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기타 만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밴드를 조직해 공연을 벌였고, 코오롱 노동자들은 '코오롱 불매등산'이라는 이름으로 산을 올랐습니다.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들은 기계를 멈추고 물류를 나르는 화물노동자들은 차에서 내립니다. 막다른 곳에 몰려 이제 더는 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밥을 끊기도 합니다.


슬픈 일이지요. 노동자들은 머리를 쥐어짜 가며 새로운 싸움을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일터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더 치열하게 싸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륙 년쯤 싸워서는 '장기투쟁사업장'으로 불릴 수조차 없게 되었고, 고공농성이나 단식쯤으로는 좀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에게 더 강하게 나가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전태일처럼 몸을 불살라야 할까요? 손목을 긋거나 배를 갈라야 할까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이 왜 자꾸만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는 쪽으로 싸움의 가닥을 잡아야 할까요? 밀양 송전탑을 막기 위해 목에 쇠사슬을 걸고 경찰과 맞서던 어느 '할매'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지요.

"살기 위해 죽으려고 하는 거지."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애쓰기 위해선 어떻게든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워야 하는 것이 이 시대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입니다. 날마다 뉴스로 보니 익숙해진 셈이지만 사실 사람이 200일 넘도록 높은 곳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고공농성은 당연히 미친 짓거리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노동자가 그렇게 미친 짓거리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고용주는 그보다 훨씬 더 미친 인간이라는 소릴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친 사람이 되지 않으면 도저히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노동자들은 까마득한 하늘로 올라가거나 길거리에서 잠을 잡니다. 뉴스를 보며 점점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만 가는 저 자신도 조금씩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자꾸 사람이 내몰리고 사람이 깃듭니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고 소름 끼치도록 기괴한 일이며 멀쩡한 정신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새 이 미친 현실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모두 함께 미쳐가고 있는 셈입니다. 모두를 미치게 하는 돈벌레들의 탐욕은 그래서 더 무서운지도 모릅니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미쳐야 하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합니다. 이걸 모순이라 부르는 건 너무 점잖지요. 이건 아주 기괴하고 흉측하게 꼬인 그 무엇입니다. 너무나 기괴하고 흉측한 나머지 똬리를 틀고 있는 뱀처럼 징그럽게 보입니다.

스타케미칼과 쌍용차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분들은 그 모습 그대로 이 시대 막다른 곳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모습이자, 높고 커다란 물음표가 되어 땅 위에 있는 이들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징그럽게 꼬여 있는 삶과 죽음을 어떻게든 풀기 위해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들이 더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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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앤앰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승계 합의로, 임정균, 강성덕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비정규직지부 조합원이 2014년 12월 3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서 농성을 끝낸 뒤 크레인을 타고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 ⓒ 유성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을 들먹이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장기투쟁사업장이나 곳곳에 숨어 있는 소규모 투쟁사업장들에 비하면 쌍용차는 복 받은 줄 알아라. 쌍용차는 힘 받쳐주는 연대 단위들과 이효리, 김미화, 공지영 같은 유명 인사들이 있으니 그렇게 투쟁할 수 있는 것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복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작은 노조의 싸움이라도 그렇게 뭇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맞지요. 쌍용차 노조든 어디든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촛불을 든 이들이 새카맣게 모여들어야 하고 언론에 뻔질나게 보도돼야 하며, 유명한 이들이 1인시위에 나서거나 트위터, 페이스북에 한마디씩 해야 합니다. 지금 쌍용차 노조에게 쏠려 있는 세상의 관심은 지금도 곳곳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을 모든 노조에 마땅히 쏠려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관심일 뿐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작은 사업장들의 싸움을 제대로 알려내지 못하고 있는 기자들이나 글쟁이들에게, 쌍용차 말고는 다른 사업장엔 관심도 없는 유명인들에게, 서울의 큰 집회 판만 쫓아다니며 연대랍시고 어깨 으쓱거리는 일부 헛똑똑이 촛불시민들에게 따끔하게 쐐기를 박아야 하는 것이지요.

200일 넘도록 굴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스타케미칼 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차가운 아스팔트에 배를 밀며 광화문까지 나아갔던 기륭전자 노동자도, 10년 동안 이어온 투쟁을 마무리한 코오롱 노동자도, 얼마 전 기쁘게 전광판에서 내려온 씨앤앰 노동자도 전부 똑같습니다. 얼마나 알려져 있든 누가 응원을 하든 상관없이 모두 우리가 사는 세상 속 노동자들이 가진 수많은 얼굴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굴뚝에 올라가 있는 스타케미칼과 쌍용차 노동자들. 당신들의 싸움이 소중한 이유는 당신들이 더 많은 눈물을 흘려서도 아니고 당신들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실어주고 있어서도 아닙니다. 당신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당했고 그 결과로 당신들의 삶이 전과는 달라져버렸다는 것. 이유는 그거 하나입니다.

굴뚝 아래에서 뻗쳐질 따스한 손길들을 굴뚝 위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당신들. 당신들은 지금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사업장들 하나하나가 전부 비정규직·정리해고 투쟁의 상징이고 심장부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취재를 다니며 만나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서 굴뚝 위 당신들의 얼굴을 보고, 당신들의 얼굴에서 이 세상 속 막다른 곳으로 내몰려만 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노동자 한 사람이 굴뚝에 오른다 해도 그것은 우리 탓"

이제 두서없는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벌써 새벽이 되었으니 아침에 출근하려면 눈을 좀 붙여야 할 것 같아서요.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어느 소설가는 한창 젊었을 때 쓴 소설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걸인 한 사람이 이 겨울에 얼어 죽어도 그것은 우리의 탓이어야 한다."

이는 세상에선 윤리나 도덕이라는 딱딱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우리는 사랑이나 관심이라고 달리 부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겠지요. 40여 년 전 군부독재 시절에 한 이 말은 이제 이렇게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노동자 한 사람이 이 겨울에 굴뚝에 오른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탓이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굴뚝에 올라간 이유가 우리의 탓이 되는 순간 당신들은 우리가 되고 우리는 당신들이 됩니다. 그렇다면 높이 치솟은 굴뚝은 하늘 위에 있는 당신들과 땅 위에 있는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거대한 혈관이 되어 서로의 피돌기를 뜨겁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눈물 나도록 고마운 존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과 우리는 굴뚝을 통해 이어져 있습니다. 그 거대한 혈관을 통하여.

끝으로 위에서 말한 소설가가 소설을 끝맺으며 덧붙인 마지막 말을 저는 당신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너를 항상 기억하고 있으며, 너는 우리에게서 소외되어 버린 자가 절대로 아니니까 말야."

추위가 모질어도 몸도 마음도 지지 마십시오. 먼 거리 손 건넬 수 없어 이렇게 글 한 편이나마 전해드립니다. 머지않아 땅 위 따스한 곳에서 세 분 모두와 손 맞잡았으면 합니다.

2015년 1월 5일 새벽에 박병학 드림
덧붙이는 글 '희망편지 이어쓰기'는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스타케미칼과 쌍용자동차 고공농성 노동자들에게 부치는 편지를 보내주세요.
#쌍용자동차 #스타케미칼 #굴뚝농성 #비정규직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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