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후비는 아이의 '떳떳한' 이유

[다다와 함께 읽은 책33] 요시타케 신스케가 쓰고 그린 <이유가 있어요>

등록 2015.12.10 17:39수정 2015.12.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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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와 온종일 함께 있는 주말.

"텔레비전 좀 그만 봐라."
"코 파지 마라."
"긁지 마라."
"흘리고 먹지 마라."
"머리 꼬지 마라."
"다리 떨지 마라."
"의자 좀 끌지 마라."
"침대에서 뛰지 마라."
"사탕 깨물어 먹지 마라."
"집에서 뛰지 마라."
"아윽, 왜 더럽게 옷으로 입을 닦니."


그러다 멈칫. 대체 애들에게 하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거지?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일부러 "텔레비전 그만 보는 게 어떨까" 돌려서 말도 해본다. 그것도 한두 번. 버릇처럼 습관처럼 "하지 마라"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애들이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텐데...'라는 생각은 미안하지만 해보지 않았다. 요시타케 신스케가 쓰고 그린 <이유가 있어요>를 읽기 전에는.

아이는 코를 후비는 버릇이 있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화를 낸다. 예의가 없다면서. 그럴 때마다 아이는 생각한다. '떳떳한 이유가 있으면 코를 후벼도 될 것 같은데.' 그래서 엄마에게 말한다. 코를 후비는 이유에 대해.

"내 콧 속에는 스위치가 달려 있는데, 이 스위치를 누르면 머리에서 신바람 빔이 나와요. 이 빔은 사람들 마음을 즐겁게 해주거든요(그래서 내가 코를 파는 거예요)."
"아아, 그러셔. 엄마는 충분히 즐거우니, 신바람 빔은 더 이상 쏘지 말아 줄래?"

코 후비기, 다리 떨기, 밥 알 흘리기...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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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타케 신스케 글, 그림 <이유가 있어요> ⓒ 봄나무

그런데 아이는 코만 후비는 게 아니다. 손톱도 깨물고, 다리도 떨며, 밥알도 흘린다. 의자 위에서 몸을 버르적대고, 침대 위에서 방방 뛰기도 한다. 복도나 가게에서 뛰어 다니며, 빨대로 음료수를 뽀글뽀글 불거나 (빨대를) 질근질근 씹기도 한다. 더러운 손을 바지나 윗도리에 쓱쓱 문지르기도 하고. 다 이유가 있는 행동이다.


손톱을 깨무는 건 쓰레기 뒤지는 새를 쫓아내기 위한 거고, 다리를 떠는 건 지하 두더지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밥알을 흘리는 건 작고 신기한 생물들과 나눠 먹으려고 그러는 거고, 복도에서 뛰는 건 '질주 벌레'가 머리 위에서 나를 조정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

한참을 듣고 있던 엄마가 말한다. "그래도 지저분 하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건 되도록 삼가 줄 수 없을까" 이때 허를 찌르는 아이의 돌발 질문.

"엄마, 어른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만' 해 버리는 일 없어요? 엄마는 틈만 나면 그렇게 머리카락을 비비 꼬잖아요. 그건 무슨 이유가 있어요?"

혹시... 나한테 묻는 거니? 내가 틈만 나면 머리카락을 비비 꼬다가 뽑는 버릇이 있는 걸 어찌 알고. 근데 그건 말이지... 그냥 그러는 건데, 이유라는 건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이유란 게 없다. 대부분 그렇지 않나? 그러니 버릇이고 습관인 거지. 책 속 엄마는 아니었다. 놀라운 이유가 있었다. 진즉 알았다면 나도 (웃자고 한번) 써먹었을 텐데. 

이 책을 함께 본 아홉살 딸은 '정말 엉뚱하고 재미있게 지어서 말하니까 재미있었다'고 독서록에 적었다.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렇게 기발한 이야기를 '지어내기'란 불가능 하지 않을까. 작가는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뇌구조를 갖고 있는 걸지도. 아니면 엉뚱한 뇌구조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거나.

책을 읽는 내내 아이의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며 무릎을 쳤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말했으면 땅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그런 일이 생길 줄이야. 다리를 덜덜덜 떨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딸아이. 보다 못해 한 마디를 던졌다.  

"야! 다리 좀 떨지마, 왜 그런겨?"
"다리를 가만 두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다리가) 심심해 할 것 같아서."
"뭐? 엄마가 네 두 다리 멀쩡하게 잘 낳아줬으니까 더 이상 떨지 말아 줄래?"

이유가 있는 행동이라도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혹시, 우리 애들도 내가 머리카락을 비비 꼬는 게 거슬리려나?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까? 적어도 우리 엄마는 그런 것 같다. "어휴 너 그 버릇 아직도니? 제발 머리 좀 뜯지 마라, 네 옆으로 머리카락 수북한 거 좀 봐, 엄마는 그거 볼 때마다 속이 뒤집혀, 네가 그러니 둘째도 따라하잖아"라는 소리를 가끔 듣는 걸 보니.

ps. 책 커버 안 숨은 선물(?), 놓치지 말자. 책 구입한 지 한참 만에 알게 된 억울한 1인. ㅠ.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이유가 있어요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김정화 옮김,
봄나무, 2015


#그림책 #이유가 있어요 #요시타케 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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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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