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무기, 소프트웨어 밖에 없다"

[인터뷰] 제1회 핵 코리아(Hack Korea) 개최 주도한 이민석 국민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등록 2015.12.22 12:12수정 2016.01.0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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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저녁, 서울 영등포 꿈이룸학교에서 제1회 '핵 코리아(Hack Korea)' 행사가 열렸다. 하나의 이슈를 가지고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가 한팀이 돼서 집중적으로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행사다. 한국 IT인 연합회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IT 기술로 헬조선을 구하자'라는 주제로 2박 3일간 진행됐다.

이 행사를 주도한 국민대 컴퓨터공학부 이민석 교수와 '대한민국에서 개발자로 살아가기'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민석 교수는 'NHN NEXT' 학장을 지내고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음은 이번 '핵 코리아'를 주최한 이민석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소프트웨어가 핵심, 모든 걸 한 방에 해결할 수는 없다"

a  이민석 국민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이민석 국민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 이민석 교수 제공


- 제1회 핵 코리아를 개최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행사를 주관한 '한국 IT인 연합회'는 어떤 단체인지?
"한국 IT인 연합회는 'IT와 관련된 정책이나 현황에 관해서 토론하자'는 취지로 만든 단체입니다. 이번에 핵 코리아를 개최하게 된 계기는 IT인들이 교과서 국정화, 보수언론, 노동문제, 세월호 참사 등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방식으로 싸워보자'고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 핵 코리아의 핵심 가치나 목표가 있을까요?
"바로 '소프트웨어'예요. '소프트웨어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생각이 핵심입니다. 누구나 세상에 불만을 품고 있죠. 그런데 지금까지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식은 너무 단조로웠어요.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싸워보자, 소프트웨어가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전제로 시작한 거죠.

지금까지도 이런 노력이 꽤 많이 있었죠. 하지만 그것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있는데, 모두 '플랫폼'에 집중했어요. 중요한 건 실제 사안이고, 그다음 바이럴(확산)을 만들어야 문제가 해결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플랫폼이 될 수 있는데. 이전까지는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노력만 많이 해왔죠. 한방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세상에 없어요."


- '너무 위대한 걸 하려고 하지 말자'?
"네. 그렇게 하지 말고, 특정 사안을 중심으로 일을 해나가자는 거죠. 소프트웨어는 비교적 쉽게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번 행사를 통해 '아, 소프트웨어로 이런 걸 할 수 있구나'라는 작은 성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목표예요. 이게 모이면 더 튼튼한 인프라를 갖추게 되고, 이 사람들이 모여서 소위 '통하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 여기서 그 '기본'을 만드는 거네요?
"네. 지금까지 해커톤은 상금을 걸고 하는 대회가 많았어요. 창업을 위한 해커톤, 일반 사용자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해커톤. 최근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해커톤도 있기는 했죠. 하지만 아이디어를 만들고 '프로토타이핑(시제품화)'하고 끝이 나요. 하지만 이번에는 사회, 정치적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내고 실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작동하는 것까지 볼 수 있는 거예요."


"열악한 국내 개발자 위상, 최근 변하고 있다"

- 최근에 개발자들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들은 '한국에서 개발자로 살아가기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국내의 IT 또는 개발자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나라에서 개발자 위상은 산업구조에서 발생한 문제가 커요. 초기 소프트웨어 시장은 'SI 시장(전산화 시장)'이었어요. SI 시장이 상당히 오랜 기간 소프트웨어 시장을 주도했어요. 물론 현재도 SI 시장이 유지되고 있죠. 이 시장의 본질은 각 사업장의 업무를 전산화시켜서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인데, 이때 소프트웨어는 분모에 위치해요. 분자는 기존 업무가 지니고 있던 가치가 위치하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전산화의 핵심 'KPI'는 전산화의 비용을 줄이는 것이죠. 전산화, 즉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요.

다시 말해서 개발은 단순히 '몇 명이, 얼마 동안 일했느냐'에 따라서 임금이 결정돼요. 개발자의 창의성 같은 가치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단순히 근로시간에 의해서만 임금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논리가 이어져서 개발 시장이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는 '갑·을·병·정의 구조'를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에요."

- 지금 말씀하신 것이 과거 SI 시장에 대한 이야기라면, 현재는 어떤가요?
"최근에는 이런 구조가 변하고 있어요. 이제 소프트웨어가 스스로 가치를 만드는 분자의 위치에 왔다는 것이죠. '카카오톡'과 같이 소프트웨어 자체가 가치를 창출하는 거죠. 그리고 그 가치에 의해서 평가가 돼요. 사람들은 이제 소프트웨어가 분자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예를 들면 '쿠팡'이 예전 같으면 전산화를 했겠지만, 지금은 매출을 올리는 방법으로써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는 거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고요. 그래서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해지고, 그런 소프트웨어를 잘 만드는 개발자가 중요해지는 거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소프트웨어밖에 없다는 걸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으니까요."

- 그런데도 개발자들은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건설사는 건설 노동자의 기술을 빼앗을 수가 없어요. 또 특허가 있는 기술도 역시 빼앗을 수 없는 부분이죠. 그런데 이전 시장에서 소프트웨어는 노동도 빼앗고 기술도 빼앗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더 열악한 거예요. 아직도 그런 시장은 일부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죠.

그런데 개발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일종의 허상이라고 생각해요. 개발자들은 항상 신기술 옆에 있지요? 그래서 공부해야 합니다. 신기술을 배우면 조금 더 창의적인 일을 할 기회가 생기기도 하지만, 예전 기술 역시 여전히 유효해요. 개발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체득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40대 은행원과 40대 개발자를 비교해보세요. 누가 더 불안한가요? 은행직원이에요.

개발자들은 느낌상으로는 불안한 직업인데, 현실적으로는 '직업 보장(Job security)'이 상당히 좋은 직업군에 속해요. 그리고 항상 개발자는 수가 부족해요. 상대적인 비교도 중요합니다. 상대적으로 보면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봐요."

"코딩 교육은 소통과 논리적 사고에 도움 줄 수 있어"

- 개발자에게 있어서 네이버 같은 대형 포털은 어떤 존재인가요?
"네이버는 기본적으로 개발자 회사가 아니에요. 콘텐츠 회사죠.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콘텐츠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잖아요. 소프트웨어가 분모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죠. 즉 네이버는 업의 본질이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닌 것처럼 보여요. 그렇다면 네이버에서 개발자들은 SI 시장에서처럼 일하게 돼요. 그게 전산화로 안 보일 뿐이죠. 하지만 그 안에도 '네이버랩스'처럼 소프트웨어를 위한 조직이 있긴 하죠. 나머지 부문을 보자면, 개발자의 다양성·상상력·창의력·개인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개발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훌륭한 개발자들이 네이버에 들어왔다가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왜? 개발자들의 이야기가 안 먹히기 때문이에요. 네이버에서는 기획과 콘텐츠가 중심이고, 개발자는 뒤로 밀려요."

- 문제의식이나 의사소통과 관련해서, 대한민국에서 개발자와 노동조합은 좀 거리가 있어 보여요.
"우리나라에도 2000년대 중반부터는 개발자 커뮤니티가 많이 생겨났어요. 그때 많이 나온 이야기가 '개발자도 노동조합을 만들자, 개발자는 프리랜서가 많으니까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같이 가자'는 건데요. 그런데 잘 안 돼요. 사람과 사람이 붙어야 하는데, 개발자 성향이 다른 노동자에 비해서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또 셀럽 마케팅을 해야 하는데, 셀럽에 해당하는 개발자들은 개발에 집중할 뿐 자신을 잘 노출하지 않아요."

- 최근 국내에서 '빅데이터', '데이터 과학' 열풍이 불고 있어요.
"카카오톡의 점유율이 높은 이유는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이에요. 이모티콘을 보내주거나, '바나나 우유'를 보내주는 것 등이요. 중요한 건 데이터를 모아서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뭐냐, 이걸 찾는 거예요. 결국 사람들이 어떤 기능을 원하는지, 그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내면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면 '데이터 사이언스'가 필요하게 되는 거예요.

'핀 테크'를 봅시다. 핀 테크는 사람들이 돈을 쉽게 쓰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진짜 목적은 데이터가 쌓이게 하는 것이죠. 이 데이터를 가지고 은행들은 사람들이 돈이 필요할 때 딱 맞는 대출정보를 보내주는 거죠."

- 근래에 대학에서 전공과 관계없이 필수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하는 게 대세인 것 같아요.
"대학은 자기 전공에서 이미 고유 문제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툴(도구)로서 소프트웨어를 배워야 하는 필요가 있어요. 자기가 직접 소프트웨어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소프트웨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대학에서 개발자를 양성하기 위한 코딩교육을 하는 게 아니예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코딩교육을 하는 것이죠.

작년에 '연말정산 대란'이 있었죠. 시뮬레이션 돌려보면 하루면 알 수 있는 건데,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하잖아요. 자기가 가진 문제가 '소프트웨어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 심지어 초등학생에게도 코딩교육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과잉 아닌가요?
"모든 학생들이 코딩을 잘 할 필요는 없겠죠. 그렇지만 소프트웨어가 재밌다고 느끼는 학생이 많아지면 좋은 거예요. 흥미와 재미를 느낀 학생들은 나중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공부할 겁니다. 결국은 어렸을 때 받은 코딩 교육을 통해서 소프트웨어가 추구하는 논리적 사고, 이른바 '콤퓨테이셔널 씽킹(Computational Thinking)'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봐요. 그럼 아이들이 다른 것을 이해하는 능력도 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기사 : 원하는 시간에 칼퇴근... 앱이 너를 구원할 거야]

○ 편집ㅣ김준수 기자

#HACK KOREA #이민석 교수 #핵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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