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도착한 엽서, 아들 표정이 심상치 않다

2015년 자주 놀지 못한 아빠가 미안... 올해는 '함께 놀자'

등록 2016.01.06 18:24수정 2016.01.0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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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엽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지난해 봄에 띄웠는데 겨울에 도착했습니다. ⓒ 황주찬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편엽서'입니다. 봄날에 보냈는데 겨울에 도착했습니다. 참 느리네요. 지난해 봄 큰애가 오동도에 있는 우체통에 던져 넣은 엽서인데 새해 이틀 앞두고 받았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편지가 제 손에 들어오니 반갑고 신기합니다. 그런데, 큰애 표정은 시큰둥합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세밑이라 늦은 귀가가 다반사였는데 오랜만에 일찍 집에 도착했습니다. 당차게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는데 큰애가 퉁명스레 한마디 던집니다. 편지가 왔답니다. 큰애 말투가 약간 귀에 거슬렸지만 편지 내용이 더 궁금합니다. 재빨리 신발 벗고 편지부터 찾았습니다.

책꽂이 옆에 엽서 두 장이 비스듬히 꽂혀 있습니다. 지난해 4월 4일 큰애와 제가 오동도에서 띄운 엽서인데 이제야 되돌아 왔습니다(관련 기사 : 큰아들에게 쓴 편지, 1년 뒤에나 도착한다네요). 엽서를 들여다보니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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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 큰애가 용돈 모아 마련한 공구들입니다. 올해 큰애의 소망은 전기드릴과 톱을 손에 넣는 일입니다. ⓒ 황주찬


'곤충관찰' '물건 분해하기' 놀이 함께하지 못한 아빠, 미안하다

을미년 한해 아이들과 재밌게 놀았던 시간을 손꼽아보니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더군요. 아쉽습니다. 특히, 큰애와 함께 한 시간이 짧습니다. 세 아들과 산에 자주 오르지도 못했고 큰애가 좋아하는 '예쁜(?) 곤충관찰'과 '멀쩡한 물건 분해하기' 놀이도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큰애가 엽서를 받고 시큰둥할 만합니다.

둘째가 좋아하는 야구공 주고받기와 레고 조립도 자주 못했습니다. 막내가 졸라대며 그려달라던 공룡과 비행기 그리고 자동차도 귀찮아서 대충 끄적거렸습니다. 이 모든 일을 반성합니다. 새해에는 세 아들이 좋아하는 놀이에 꼭 끼겠습니다. 그리고 좀 더 오래도록 아이들과 놀아야죠.


새해엔 큰애가 구입을 벼르고 있는 전동드릴과 톱도 사줄 생각입니다. 요즘 큰애는 모든 물건을 철저히 분해해 버리는 능력을 초월했거든요. 분해놀이에 지친 큰애가 드릴과 톱으로 멋진 물건을 만들 모양입니다. 그 재미있는(?) 놀이에 함께 하렵니다. 물론, 둘째와 막내가 즐기는 놀이에도 살짝 끼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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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 지난해엔 둘째가 좋아하는 야구공 주고받기와 레고 조립도 자주 못했습니다. ⓒ 황주찬


퉁명스런 큰애, 사춘기일까요?

그러고 보니, 집에 들어올 때 큰애가 던진 퉁명스런 말 한마디가 마음에 걸립니다. 혹시, 큰애에게 그 유명한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온 걸까요? 요 며칠 기억을 떠올려 보니 큰애 행동이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동생들에게 불쑥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저를 잘 안아주던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그저 큰애는 제가 집에 들어와도 자신이 하던 일에만 열중하더군요. 이 모든 반응을 종합해 보니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아들 모습이 보입니다. 덜컥 겁이 납니다. 큰애가 아빠의 말과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며 평가할 생각을 하니 많이 긴장됩니다. 때문에 새해에는 조금 더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연말에 받아든 엽서가 한해를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올 봄에는 아내와 함께 오동도 동백 숲길을 걸어야겠습니다. 붉은 동백 뚝뚝 떨어진 길을 걸으며 아내와 낭만도 즐기고 달팽이처럼 생긴 '느림보우체동'에 엽서도 넣어야지요. 그럼 올해 마지막 날 어김없이 엽서를 받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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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막내가 비행기를 그렸습니다. 제게 자동차와 공룡을 그려달라고 졸라 대곤합니다. ⓒ 황주찬


아내 잔소리는 순간... 큰애 마음은 재빨리 잡아야 합니다

엽서는 아내와 제게 한해 계획한 일들이 잘 이뤄졌는지 되돌아보게 만들 겁니다. 열두 달을 부지런히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그나저나 지난해에 비해 몸과 마음이 부쩍 커버려 민감해진 큰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늦기 전에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일단 큰애가 원하는 물건부터 챙겨야겠습니다. 아빠를 유심히 관찰할 큰애가 어떤 점수를 매길지 궁금합니다. 드릴과 톱을 손에 들고 있는 아들 보면 아내 잔소리가 드높아 지겠지만 그쯤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아내 잔소리는 순간이지만 쑥쑥 커가는 큰애 마음은 한번 달아나면 쫓아가기 힘드니까요.

오동도에 들리실 계획 있으신가요? 등대 앞에 놓인 빨간 우체통을 기억하세요. 한 해 마지막 날 받아든 엽서에는 가족과 함께 웃으며 읽을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을 테니까요.
#오동도 #엽서 #느림보우체통 #사춘기 #여수지방해양수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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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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