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술 마시는 20년 경력 형사의 최후

[장르소설의 작가들 ⑧] 모스 경감 시리즈의 콜린 덱스터

등록 2016.01.13 08:29수정 2016.01.1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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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그중에서도 범죄소설의 역사를 장식했던 수많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 작가들을 대표작품 위주로 한 명씩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주로 영미권의 작가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왜 모스 경감을 죽였습니까?"


"내가 죽인 게 아닙니다. 모스는 자연사한 것입니다. 평생 동안 담배와 위스키를 입에 달고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나쁜 생활습관 때문에 장기적으로 건강이 나빠졌고, 그가 그렇게 찾아가기 싫어하던 병원의 의사들 만큼이나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담배와 위스키를 좋아했던 옥스퍼드의 형사, 모스 경감을 창조했던 영국 작가 콜린 덱스터(1930~ )가 오토 펜즐러가 엮은 책 <라인업>(2011년, 랜덤하우스 발간)에서 밝힌 내용이다.

동일한 인물이 계속 등장하는 시리즈 물을 읽다보면, 독자 입장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이 시리즈가 과연 어떻게 끝날까' 하는 호기심이 바로 그것. 어찌보면 이것은 작가 자신에게도 의문 거리일 것이다. 또 이것은 곧 주인공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역에서 은퇴시킬 수도 있고, 스스로 직장을 걷어차고 나오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면 더 이상의 집필없이 흐지부지 끝낼 수도 있겠다. 콜린 덱스터는 주인공인 모스 경감을 사망시키면서 이 문제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이전에 애거서 크리스티도 <커튼>에서 자신의 탐정 에르큘 포와로를 사망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옥스퍼드에서 활동하는 주임 경감 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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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 겉표지 ⓒ 동서문화사

모스 경감은 1975년에 발표된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에 처음으로 등장한 후, 1999년 13번째 작품인 <The Remorseful Day>(국내 미발간)에서 당뇨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사망한다. 콜린 덱스터도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자신이 창조하고 키워낸 캐릭터가 죽는 모습을 봐야 했으니.

콜린 덱스터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도중에 모스 경감이 등장하는 범죄소설을 구상했다. 차분하고 지적이면서 주먹보다는 머리를 쓰는 형사가 나오는 소설을 원하고 있었다.

1973년 8월의 어느날, 그는 노트 한 권과 볼펜 한 자루를 들고 부엌에 틀어박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뭘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나도 남들처럼 잘 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목표가 아니었다. 이미 대학교에서 넉넉한 월급을 받고 있었으니까.

일종의 허영심 때문인지 그냥 범죄소설의 표지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즐거워하길 바랐다. 결론적으로 콜린 덱스터는 이 모든 것을 이뤘다. 돈도 벌고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즐거워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완성된 소설이 모스 경감이 등장하는 첫 번째 장편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다. 어둠이 깔리는 옥스퍼드에서 두 여학생이 우드스톡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오지않는 버스. 여학생들은 히치하이킹을 결심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결국 다음날 한 여학생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다른 여학생의 행방은 묘연하다. 모스 경감은 동료와 함께 이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에서 모스 경감은 그의 파트너이자 부하인 루이스를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이들은 수많은 사건들을 함께 해결한다. 파트너이지만 마치 아버지와 아들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그런 관계를 보인다. 이 작품에서 모스 경감은 50세가 넘은 나이의 독신으로 등장한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스 경감은 술을 좋아한다. 아침이건 저녁이건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신다. '액체로 된 음식을 먹는 것이 두뇌활동에 좋다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대부분을 술로 섭취할 정도다.

시리즈의 9번째 편인 <옥스퍼드 운하 살인>에서는 술 때문에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다. 그래도 루이스를 시켜서 술을 반입해 와서 병실에서 밤마다 그 술을 홀짝 홀짝 마신다. 모스 경감의 상사는 '자네가 술집에서 낭비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나'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옥스퍼드 경찰청에서 해고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사건 수사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20년이 넘게 활동하고 사망한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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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겉표지 ⓒ 해문

콜린 덱스터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근무했기 때문일지 몰라도, 이 시리즈의 대부분은 런던에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옥스퍼드를 배경으로 한다. 콜린 덱스터도 인터뷰에서 옥스퍼드를 영국의 살인 수도로 만들었을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 걱정과는 달리 작품에서는 옥스퍼드의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오래전에 앤 여왕이 지은 블레넘 궁전에는 여름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대로에 늘어선 잿빛 집들은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개조되어서 선물과 골동품,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바뀌었다. 술집에서는 축구경기를 보면서 흥겹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콜린 덱스터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옥스퍼드를 간접적으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콜린 덱스터는 모스 경감을 무대에서 퇴장시켰다. 콜린 덱스터는 이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건강도 나빠지고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작품을 계속 발표할 자신이 없었다고. 그리고 모스에 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탐정이 사라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편, 콜린 덱스터는 모스 경감 시리즈로 많은 상을 받았다. 영국범죄소설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골드 대거 상을 받았고, 다이아몬드 대거 상도 수상했다. 동시에 모스 경감 시리즈는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

콜린 덱스터 지음, 문영호 옮김,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2003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 An Inspector Morse Mystery 1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
해문출판사, 2004


#모스 경감 #콜린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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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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