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에서 모든 것을 잃은 상부 쉐르파의 삶

네팔 대지진 랑탕 마을 재건 현장을 찾아서 1

등록 2016.03.22 15:13수정 2016.03.22 15:13
0
원고료로 응원
네팔 카트만두 외곽 마차포카리(Machapokari)에서 아침 8시 20분 출발한 버스는 다딩(Dhading) 인근을 경유해 8시간이 지난 오후 3시에 산마을 샤브르베시(Syabrubesi, 1460미터)에 도착했다.

긴 시간 버스의 무더위에 흠뻑 젖은 몸을 씻어낸 후 샤브르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언덕에서는 지진의 여파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흙과 크고 작은 바윗돌들이 흘러내려 산 아래 집들이 부서지고 탑(스투파, Sutupa)에도 금이 가고 부서져 있었다. 그럼에도 산마을은 고요하고 일상은 평화로웠다.

a

랑탕 마을 가는 길에 무너진 집 랑탕 마을을 가는 길에 무너진 집들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꿈은 맑았다. 멀리 산언덕에 지진 이후 일어난 산사태로 하얗게 변한 산언덕을 볼 수 있었다. ⓒ 김형효


a

샤브르베시에서 오래된 인연을 다시 만나다 샤브르베시에서 만난 인연과 지진 이후 첫 인사를 나누었다. 샤브르베시에서부터 무너져내린 길을 다시 세우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 김형효


우리가 머문 샤브르베시 티베트 게스트 하우스는 내가 2007년 처음 찾았을 때 그리고 2012년 두 번째 찾았을 때 묵은 곳이다. 주인들의 무사함에 고마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후 우리는 샤브르베시 1460미터에서 2600미터 급경사를 올라 2400미터 라마 호텔까지 가야 했다. 우리 일행은 샤브르베시에서 포터 한 사람을 고용했다. 포터 일당은 네팔 대지진 후 배 이상 올라 3일만 고용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날까지 계산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해 돌아오는 날 하루 일당을 주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6시 30분 산마을에서 야크 치즈와 커피를 마신 후 곧 걷기 시작했다. 랑탕 계곡은 길이 무너져 트레커들이 발걸음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하는 수없이 급경사로인 캄진(Khamjin)을 거쳐 쉐르파 가운(Sherpa Gaun, 2563미터)을 향해 가는 코스를 이용했다. 나는 세 번째 가는 길인데도 힘에 부친다. 함께 간 일행은 너무 힘들다며 쭈그려 안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잘 걷고 걸어서 일정을 잘 소화해 주었다.

a

캄진에서 만난 산마을 사람들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에 문상을 가는 산마을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 받았다. 멀리 툴루 샤브르베시에도 무너진 집들이 복구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 김형효


산마을 랑탕 계곡의 아침은 싸늘했다. 하지만 무너진 트레킹 코스에 길을 내는 네팔사람들에 환영을 받으며 길을 갔다. 우리는 3시간 정도를 걸어 캄진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 간식을 먹고 긴 휴식 시간을 가졌다. 산마을에 감자를 삶아 기름에 볶아낸 맛 좋은 감자와 우리가 가져간 빵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하지만 같은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에서부터 함께 한 스위스 여성 두 명이 뜻밖의 어려움이었다. 나는 초행길인 그들의 가이드 역할을 해주어야 했다. 때문에 우리의 발걸음은 자유롭지 못했고 속도 조절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어울렸다. 우리가 오르는 오르막 길 건너 멀리 거네스 히말을 보며 오르다 캄진 산언덕 고갯마루에 올랐다. 그랬더니 이제 건너편 산언덕의 툴루 샤브르베시가 눈에 들어왔고 그 위로 히말에서 가장 많은 호수를 품고 있는 코사인쿤드(Kosainkund, 4380미터)가 보였다.

우리는 길 위에서 장례식에 가는 많은 캄진과 쉐르파 가운(쉐르파족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문상 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것이 네팔 사람들에 위로가 되는 일임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지진이 난 이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기자 산마을 사람들은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워할 정도였다.


a

움막집에서 아침 차를 끓이는 산마을 사람 지진 이후 산마을에는 수많은 양철집과 안전지대에 움막집들도 즐비했다. 그들에 고초는 언제나 끝을 낼까? ⓒ 김형효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랑탕의 참상을 전해들었다. 가족을 잃고 생존기반이 무너지자 가이드에 나섰다는 사람도 있었고 짐을 나르는 일을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쉐르파 가운을 지나서 더 급하게 발걸음을 해야 했다. 짧은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일이었다.

평소 7시간에서 8시간이면 되던 길인데 10시간을 걸어 밤이 어둑해져서야 라마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태양열을 이용한 샤워시설을 이용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곧 라마 호텔 쉐르파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인 상부 타망(41)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도 지진 당시 랑탕 마을(3340미터)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랑탕 마을의 집들은 한 채도 남김없이 지진과 이어진 대형 눈사태와 거친 바람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그의 누나와 매형 그리고 조카들이 모두 사망했다.

자신이 지진 피해를 입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라마 호텔 쉐르파 게스트 하우스 전 사장이 임대를 주어 지금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전 사장과 협의해 최소한의 임대료를 주고 있다고 했다.

a

상부 타망(Sangbu Tamang, 41세)씨의 삶의 시작 다시 시작된 상부 타망씨의 삶은 가혹에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에 처지를 생각해 임대를 준 라마호텔에 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며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 김형효


절망 속에서 한 걸음 옮겨가는 듯 힘겨운 일상처럼 보였지만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소수의 트레커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삶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사람과 사회에 동시 게재 됩니다.
#샤브르베시 #랑탕 마을 가는 길 #캄진, 쉐르파 가운 #라마 호텔, 쉐르파 게스트 하우스 #상부 타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장난 우산 버리는 방법 아시나요?
  2. 2 마을회관에 나타난 뱀, 그때 들어온 집배원이 한 의외의 대처
  3. 3 삼성 유튜브에 올라온 화제의 영상... 한국은 큰일 났다
  4. 4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5. 5 "과제 개떡같이 내지 마라" "빵점"... 모욕당한 교사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