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한 벨루가는 정말 '약골'이었을까?

[동물과 사람은 하나다]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를 통해 본 동물을 사랑하는 법

등록 2016.04.09 21:35수정 2016.04.0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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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인권이, 동물에겐 동물권이 있습니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명의 시대, 우린 동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인간이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요. 이 질문에 작게나마 답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편집자말]
지난 2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흰고래) '벨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벨로가 죽은 지 이틀 되던 지난 4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을 찾았다. 동료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은 벨루가 두 마리는 좁은 원통형 수조를 돌고 있었다.

아쿠아리움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관람객들로 붐볐다. 아이들은 동그란 머리 위로 물을 뿜는 벨루가를 보고 연신 '귀엽다!'를 외쳤다. 젊은 연인들은 셀카봉을 높이 들고 벨루가가 등 뒤로 지나가는 순간을 스마트폰에 담기 바빴다.


거대한 '동물사체'로 변해 냉장고에서 부검을 기다리고 있을 벨로를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젖먹이 때 엄마에게서 떨어진 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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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벨루가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폐사해 두 마리만 남았다.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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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관람객들이 벨루가의 사진을 찍고 있다. ⓒ 이형주


죽은 벨로는 다섯 살이었다. 아직 몸이 다 자라지도 않은, 사람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어린이 정도의 나이다. 롯데월드는 벨로가 '유독 면역력이 약해 평소 감기 등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했다. 벨로는 정말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을까?

2013년, 벨로는 두 살 되던 해에 러시아에서 우리나라로 수입됐다. 벨루가는 생후 20개월이 될 때까지 어미 곁에서 살며 모유수유를 한다. 즉, 벨로가 북극해에서 포획되었을 때 벨로는 어미젖을 떼지도 않은 젖먹이였던 셈이다.

수족관이 완공될 때까지 강릉에 있는 송어양식장에 1년 7개월을 갇혀있다가 2014년 '북극해'에서 '잠실'로 영구이주를 했다. 그 이후로는 높이 7.5미터의 원통형 수조에서 살았다. 야생에서 벨루가는 수온에 따라 이주하는 계절이면 시속 10킬로미터로 무려 2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헤엄친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수조를 아래 위로 자그마치 27만 번을 헤엄쳐야 하는 거리다.


게다가 이 좁은 수조에서 수컷 벨리, 암컷 벨라와 함께 살았다. 수컷 고래는 성적 성숙기가 되면 서로를 공격하는 성향을 보인다. 한 수조에서 두 마리 이상의 고래류를 사육하는 경우 개체간의 싸움으로 다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힘센 놈에게 괴롭힘을 당하는데도 몸을 피할 공간조차 없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쥐' 신세나 다름 없다.

지난해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수컷 두 마리가 암컷을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관람객의 증언이 보도되기도 했다. 여수의 수족관에서도 수컷 벨루가 두 마리가 암컷을 공격해 암컷을 격리 수용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없는 환경. 이런 환경에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동물들은 과연 몇 마리나 될까.


수족관에서 이어지는 '벨루가 줄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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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로브 레이들로 ⓒ 책공장더불어

수족관에 사는 벨루가의 폐사율이 높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여러 번 입증된 바 있다. 야생상태의 벨루가는 50년까지도 살지만 수족관의 벨루가는 30살을 넘기는 일이 거의 없다. 수족관에서 번식된 벨루가의 폐사율은 65퍼센트에 달한다.

작년 미국에서는 수족관 벨루가의 부고가 줄을 이었다. 2월 올랜도의 씨월드에서는 '나눅(Nanuq)'이라는 이름의 벨루가가 다른 벨루가와 싸우다 턱에 상처를 입었는데 염증이 생겨 죽었다. 같은 해 10월 조지아 아쿠아리움에서는 스물 한 살의 암컷 벨루가 '마리스(Maris)'가 '돌연사'했다.

아쿠아리움 측은 마리스의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11월에는 샌안토니오 씨월드에서 불과 두 살짜리 벨루가 '스텔라'가 폐사했다.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에 따르면 스텔라는 1993년부터 샌안토니오 씨월드에서 폐사한 열 세 번째 벨루가였다.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는 야생동물보호운동가인 저자가 세계 동물원을 1000번 이상 탐방한 기록이다. 알래스카에서 어미를 잃고 고아가 된 후 멕시코 동물원의 푹푹 찌는 콘크리트 방에 갇힌 북극곰. 새장 모양의 우리에 갇혀 사는 재규어. 저자는 충분한 공간도, 시간을 보내며 할 일도, 자연스러운 행동을 표출할 자유도 없는 곳에서 동물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지 되묻는다.

특히 저자는 북극곰, 코끼리, 고래류, 영장류를 동물원에서 전시하기 부적합한 종으로 꼽는다.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 광활한 공간과 외부 자극이 필요하고, 무리 안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답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저자는 다른 기후에서 온 동물 대신 원래부터 그 지역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볼 수 있는 동물원이나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번식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센터 등을 이상적인 동물원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동물원이 존재해야 한다면 '동물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장 중요히 여기는 동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도움이 필요한 야생동물들이 많다. 망해버린 동물원의 곰은 굶어 죽기 직전이고, 불법으로 사육되다 압수된 원숭이는 갈 곳이 없다. 동물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가는 동물원, 수족관 대신 야생동물보호소가 필요한 이유다. 사람에게 이용당하다 결국 갈 곳이 없어진 동물들을 보살피고, 관람객들에게는 동물을 보호하는 마음을 심어줄 수 있다.

"야만적이고 잔인한 짐승은 창살 뒤에 있지 않고 창살 앞에 있다."

스웨덴의 문호 악셀 문테의 말이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수조 앞에 서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본성은 야만적이고 잔인하지 않다. 아기 때 엄마 품에서 납치되어 좁은 수조에서 죽어간 벨로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분명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테니까.

야만적인 것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멸종위기 동물을 새끼도 낳기 전에 야생에서 포획해 씨를 말리는 대기업의 민낯이다. 잔인한 것은 '사람 먹고 살기도 바쁜데'하며 불편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어른들의 마음이다.

이번 주말, 동물원으로 수족관으로 주말 나들이를 계획했다면 집을 나서기 전에 아이와 함께 앉아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파란 유리벽 안의 벨루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값진 경험으로 남을 것임을 확신한다.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로브 레이들로 지음, 박성실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2


#동물원 #수족관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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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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